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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편에서 말씀드리는 내용을 일반화할 수는 없으며, 각 학과와 상황에 따라서 다를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박사과정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포닥을 거쳐) 교수가 되는 과정을 내 구직자로서의 경험과 구인자로서의 경험을 종합하여 단순화하여 이야기해보면, 1) 원서 지원 -> 2) (학회 인터뷰, 경우에 따라 생략될 수 있음) -> 3) 1차 Skype Interview -> 4) Campus visit -> 5) 결과 의 절차를 따른다. 

 

전편에서 이야기를 한 바 있지만, 경영학 분야의 경우에는 보통 이르면 5월 초부터 시작하여 8월 초 AOM 학회가 시작하기 전까지 많은 수의 학교들이 Job posting을 올린다. 1차 Job market 라운드가 열린다고 보면 된다. 보통은 Job market paper라고 하는 본인의 리서치 페이퍼와 현재까지 실적을 정리한 CV, 그리고 추천인(추천서를 미리내는 학교도 있고, 나중에 내는 학교도 있다) 정도가 필요한 준비라고 이해하면 된다. 다른 전공분야와는 달리 경영학 분야는 대부분 포스닥이 필요 없는 경우가 많다.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해서 몇 가지를 미리 알 필요가 있어 먼저 설명하도록 하겠다.

 

한국 대학 vs 미국 대학

처음 고민했던 것 중에 하나가 한국으로 들어갈 것이냐, 아니면 미국에 남을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특히 가족이 있다면 지원 전에 일단 생각해야 할 것이 한국으로 들어갈 것인가, 미국에 남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물론 장단점은 있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한국 대학과 미국 대학에서 원하는 지원자의 프로파일 자체가 다르기도 하고, 미국에서 4~5년을 생활을 하다 보면 대략 나는 미국이 좋다. 아니면 한국이 좋다. 대략 선호하는 지역이 나온다. 미국에서 어린 시절부터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이방인의 삶이 녹록지 않기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우선한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가족이 있다면 나는 한국 가는 게 좋고, 가족은 미국에 남는 게 좋다거나 반대의 경우가 생기는 경우가 다반사이기에 이에 대해 미리 논의를 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유럽 국가나 중동,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도 교수를 충원하려고 하기 때문에 어느 나라까지 지원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이 필요하다. 그에 따라서 준비과정이 조금은 다를 수 있기에 이 부분에 대해 미리 이야기를 나누길 추천드린다. 

 

나의 경우에는 일단 나는 미국이 마음에 들었으나 와이프는 한국에 들어가길 원했다. 그 행복한(?) 고민은 뒤로 미루고 일단 다 지원해 보기로 한다.

 

연구중심대학 vs 티칭 중심대학

지역과 함께 또 고민해봐야 할 것이 연구중심대학이냐 티칭 중심대학이냐라는 것이다. 사실 이것을 명확하게 가르는 방법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나의 기준으로는 박사과정의 유무이다. 박사과정이 있다는 것은 그 학생들의 연구를 지원할 수 있는 교원이나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는 이야기 이므로 연구중심대학이라 볼 수 있고, 그렇지 않은 대학의 경우는 티칭 중심대학으로 분류한다. 물론 어떤 학교의 경우는 Balanced school이라고 (연구와 교육이 균형 잡힌 학교)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박사과정의 유무와 더불어 한 학기 수업이 2과목 이하인 경우는 연구중심에 가깝고, 3과목일 경우는 Balanced, 4과목 이상일 경우는 교육중심의 학교라는 내 나름의 기준이 있다. 

 

연구중심이 좋으냐 교육중심이 좋으냐는 사실 그렇게 의미 있는 논의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연구도 필요하고 좋은 교육도 필요하기에 둘 다 의미 있다고 본다. 하지만 보상 차원에서 보면 대부분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을 가진 대학들은 연구중심대학에 가깝고 연구에 대한 지원이 풍부하고 교원에 대한 연봉도 높은 편이다. 물론 그에 따라서 높은 수준의 연구결과를 내는 것이 평가의 주된 요소가 되고 그에 따라서 정년이 주어지기에 스트레스가 많은 편이다. 혹자는 박사과정 6,7,8,9년 차라고 할 만큼 생활에 큰 변화가 없다. 연봉이 훨씬 높아진다는 것 외에는. 그에 반해 교육중심의 대학은 좋은 강의평가와 수업의 질 향상을 강조하고, 학생들과의 교류에 대한 서비스 점수가 크다. 또한 교원의 평가에 있어서도 연구보다는 교육이나 서비스에 대한 평가가 높기에 정년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좋은 교육이나 서비스가 중요하다. 

 

이렇게 학교에 따라서 그 지향점이 다르기에 사실 뭐가 좋고 뭐가 나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박사과정들의 경우는 대부분 연구중심의 대학에서 연구중심의 지도교수 아래서 지도를 받기에 연구중심대학에 가는 걸 선호하는 편이긴 한다. 

 

포닥(Post-doc), 정년트랙(Tenure track), 비정년트랙(Non tenure track)

사실 학계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교수/학생 정도만 구분하는 경우가 많은데 교수도 계약 조건에 따라서 엄청나게 다양하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겸임교수, 산학협력교수, 명예교수 등등 다양한데 크게 나누어 보면 정년트랙과 비정년트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사실 의미상으로는 Retirement (정년)까지 임용을 보장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사실 그 기원을 살펴보면 그 의미가 조금 다름을 알 수 있다. Tenure는 학자가 자신의 권력자나 정부, 혹은 종교에 대립된 의견을 내더라도 자신의 자리에 대한 위협을 받지 않고 의견을 개진하게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만든 제도인데, 최근에는 오히려 이 제도를 이용하여 하나의 인사권으로 활용하는 듯한 경우를 많이 봐서 개인적으로는 별로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제도이긴 하다. 어쨌든 교수의 Job posting을 보면 정년트랙 (Tenure track 혹은 TT)으로 뽑느지 아니면 비정년트랙(Non tenure track, NTT)으로 뽑는지를 명시하고 있는데 정년트랙이라는 것은 Tenure 심사를 받을 수 있는 패스(path)에 있는 자리를 의미하고 비정년트랙이라는 것은 아예 그 기회가 없는 패스를 의미한다. 그래서 비정년트랙의 경우 몇 년 계약인지를 표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학계에 있지 않은 분들이 생각하는 교수는 정년트랙에 있는 교수를 의미한다. 정년트랙에 들어가면 조교수(Assistant Professor) -> 부교수(Associate Professor) -> 정교수(Full Professor)로 나뉜다. 이 직급과 정년보장의 유무는 별도이긴 하나 일반적으로 연계되어 같이 가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경우는 부교수 = Tenured (테뉴어 심사에 통과돼 정년이 보장된)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고, 한국의 경우는 정교수 = Tenured 가 되는 경우가 많다. 포닥은 말 그대로 박사과정 이후에 교수가 되기 전까지 연구를 하는 신분인데, 보통 공대의 경우는 박사학위를 따고 포닥으로 수년을 연구한 다음에 충분한 실적이 쌓이면 교수로 지원하여 임용이 되는 경우가 많고, 경영학 분야의 경우는 수요공급상 박사학위와 동시에 교수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대학에 지원하기

 

1) 지원 준비

경영학 분야로 미국 대학에 지원할 때, 일단 그 지원자의 잠재력을 중요시하는 것 같다. 이는 박사과정을 마치지 않았어도, 출판된 논문이 하나도 없어도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에 지원할 때는 대부분의 학교가 ABD(All but dissertation - 졸업 논문에 대한 프로포절은 끝났지만 아직 작업 중이고 1년 안에 졸업 논문 디펜스를 끝낼 것으로 예상이 되는 상태) 정도가 되는 지원자의 지원을 받아주는데, 타과에서 박사과정을 하시는 분은 '응?' 하실 수도 있지만 수요공급의 문제라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할 것이 Primary(주)연구(티칭) 분야와 Secondary(부) 연구(티칭) 분야이다. 최근 경향상 하나 이상의 전공분야를 갖는 걸 선호하는데 학교에서 올려진 잡 포스팅을 보면 "Assistant Professor in Strategic Management"라고 하고 그 포스팅을 자세히 읽어보면 "Secondary areas, such as entreprenuership or international business preferred"라는 식의 표현이 있는 포스팅이 많이 보인다. 최근의 학문분야가 융합되기도 하고 학교 입장에서는 폭넓은 과목을 소화할 수 있는 지원자가 아무래도 좋기에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데 따라서 내가 가장 강한 분야는 어떤 분야가 있고, 거기에 추가해서 확장 가능한 분야가 무엇이 있는지를 미리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나 역시 프로포절을 끝나고 본격적으로 학교에 지원을 하기 시작하는데, AOM 학회에 포스팅된 학교 중에서 내가 가볼만한 학교를 list up 했다. 일단은 연구중심대학을 위주로 했고, 그 이유는 박사과정 자체가 연구가 그 주된 잡이고 지도교수님도 연구중심대학에 가서 계속해서 논문 작업을 하길 바라시는 점도 있다. 또한 티칭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고, 티칭이 중심이 되려면 당연히 영어가 완벽에 가까워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렇다고 연구중심대학에만 지원하기에는 내 스스로의 실력을 알기에 적어도 학기당 3과목 정도 되는 수업을 하는 Balanced 된 학교도 List up 하였다. 

 

내 전공분야(주/부를 다 고려한)를 바탕으로 List up 된 학교들 중에서 내가 갈만한 곳을 선정하는데 나의 경우는 1차로 그 학교들의 최근에 임용된 Assistant Professor의 출신학교와 실적을 살펴 내가 타깃 할만한 학교를 일단 먼저 골랐고, 그다음에 다른 요소들을 - 날씨, 위치, 한인타운 유무, 직항 편 유무 등 - 고려하였다. 물론 많은 분들이 대도시에 살고 싶고 (아무래도 편리하다) 직항 편이 있는 곳이면 더할 나위 없지만, 우리가 쉽게 알다시피 한국으로의 직항 편이 있는 도시들의 학교들 대부분 엄청 좋은 학교들이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3시간 안쪽으로 대도시(한인타운)에 접할 수 있는 곳까지로 그 범위를 넓혀 두었다. 

 

2) 지원

각 학교별로 원하는 deadline이 있기에 가능하면 deadline을 맞추어 지원을 했다. 나중에 학교에 와서 사람을 직접 뽑아보니 Deadline을 맞추는 건 생각보다 훨씬 중요했다. Recruiting committee가 모여서 함께 심사를 하기에 deadline이 넘어가는 경우는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최근에는 현재 내가 있는 시골 학교도 1명의 교수를 뽑는데 대략 70~100명 정도가 지원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Deadline을 맞추는 것이 좋다. 아울러 대부분은 비슷한 수준과 위치를 가진 학교에 무조건 지원을 하고 보기 때문에 학교 이름이 헷갈리지 않도록 두 번 세 번 검증을 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일이 몰리면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 실제로 그런 지원서를 받아본 적이 있음). Cover letter에서부터 지원학교에 대한 관심이 충분히 묻어나게 작성을 해두는 것이 좋다. (내가 지원할 때는 그러지 못했지만, 심사를 해보니 그러하더라...)

 

3) 1차 학회 인터뷰

나의 경우는 그러지 못했지만, 일반적으로 AOM 등의 학회의 Career Center를 통해서 첫 번째 인터뷰를 한다. 학교에 따라서 다르지만, 여기서 1차 스크린을 하는 경우도 있고, 약간 Information session 같은 성격을 가질 수 있다. 학회에서 인터뷰는 가능한 한 많은 지원자들에게 학교에 대해 궁금증을 풀고 서로를 조금 더 알아간다는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질문은 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 왜 우리 학교를 지원하는가?

2) 본인의 연구분야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

3) 티칭 경험은 어떠한가?

4) 서비스 등의 경험이 있는가?

5) 혹시 질문이 있는가?

 

약간의 트윅이 있긴 하지만 대략은 크게 이 정도의 질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질문의 태도나 관심사 혹은 미리 학교나 교수에 대해서 얼마나 조사를 하고 알고 있는지가 사실 첫인상을 각인시키는데 큰 도움이 된다. 아울러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기도 하지만 잘 봤다고 생각하던 그렇지 못하던 감사의 노트를 인터뷰 후에 남겨주는 게 좋다. 

 

4) 2차 Skype 인터뷰

1차 학회 인터뷰의 경우는 정보전달의 목적이 강했다면 2차 Skype 인터뷰가 실질적인 첫 번째 관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보통은 1명을 뽑는 경우에 Skype 인터뷰는 대략 3~5 배수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대략 30여분의 시간을 주고 미리 시간 약속을 정하는데 가능하면 자신이 사용할 컴퓨터를 세팅을 마쳐놓는 게 좋다. 아울러 요즘은 Skype을 쓰기도 하고 Zoom이라는 것을 쓰기도 하는데 인터뷰가 진행되기 전에 조금 미리 알아 놓는 것이 좋다. 아무래도 화상으로 하는 것이라 소리 음질도 중요하고, 본인의 옷차림이나 (상반신이라도) 뒤에 배경도 신경을 쓰는 걸 추천드린다. (* 사실 미국 사람들은 안 그럴 것 같지만, 내가 면접관으로 참여할 때 몇몇 미국인 커미티 멤버가 상당히 깐깐하게 그럴 부분을 체크하는 걸 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는 누가 함께 인터뷰에 참여할지 알려주기도 하는데 이때는 대략 자신의 관심사와 맞는 교수님을 중심으로 그들의 연구분야, 내용 들을 알아 놓는 게 좋고, 티칭 중심학교의 경우에는 티칭 카탈로그 정도는 봐 두는 게 좋다. 질문은 학회에서 했던 질문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학교 분위기에 따라서 압박 형태의 인터뷰가 진행되기도 한다. 

 

1) 왜 우리 학교를 지원하는가?

2) 본인의 연구분야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

3) 티칭 경험은 어떠한가?

4) 서비스 등의 경험이 있는가?

5) 혹시 질문이 있는가?

 

모든 부분에서 자신을 어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지막 5번째에서 좋은 질문을 하면 아무래도 면접이 끝난 후에 기억에 남는다. 아울러 이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감사의 노트를 남겨주는 것이 좋다.

 

5) Campus visit 

지금까지 과정도 사실 진 빠지는데 최고봉인 Campus visit이 남았다. Skype 인터뷰에서 대략 2~3 배수 정도의 인원을 선정하여 Campus visit을 하는데, Skype 인터뷰가 끝나면 얼마 후 Campus visit을 위한 후보 날자를 주면서 그에 필요한 일정을 조율한다. 이때 Committee chair나 Admin이 도움을 주는데 일정은 그대로 정하면 되고, 나의 경우에는 항상 비행기 티켓을 가장 싼 티켓으로 구매를 했다. 물론 이것이 당락에 크게 좌우하지는 않겠지만, 학교 입장에서는 조금이나마 적은 비용으로 임용을 하길 원하는데 이것이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게 아주 큰 요소라고 보기는 어렵다). 학교에 따라서 1박 2일, 혹은 2박 3일의 일정으로 진행하는데 일반적인 경우는 전날 저녁식사부터 하루 종일 인터뷰+ 당일 저녁 정도까지 일정이 있고 다음날 돌아가는 정도로 보면 된다. 캠퍼스 비짓은 대략 캠퍼스 투어, 학교 소개, 리서치 발표, 티칭 시연(학교에 따라 다름), 각 교수들과의 1:1 혹은 1:n 면접 그리고 식사로 구성되어 있다. 

 

나의 경험으로는 학교에서는 가능하면 지원자에게 많은 정보와 많은 사람을 만나고 돌아가도록 일정을 짜주는데, 지원자 입장에서는 정말 빡빡하고 진 빠지는 하루가 될 것이다. 그래서 준비할 것들이 많은데 자신의 리서치 발표는 물론이고 만나게 될 각 교수의 면면들 그리고 식사시간에 나눌 이야깃거리를 준비하면 좋다. 아울러 해당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질문 혹은 정보를 모아 놓으면 아무래도 지역이나 학교에 관심이 많다는 인상을 주기에 좋다. 물론 이것도 돌아오자마자, 내가 좋았던 점과 각 교수와 이야기했던 내용을 짤막하게 요약을 해서 감사의 노트를 남기면 좋다.  

 

6) Negotiation

합격이 최종 결정이 되면 이제 계약을 하게 되는데 이때 AACSB와 같은 기준으로 자신의 Salary 및 package에 대한 협의를 하면 된다. 사실 이 부분도 미국에서는 꽤나 중요한 부분인데, 아무래도 뭔가 기준이 될만한 자료를 근거로 자신의 요구사항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나의 경우에는 전 편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3년 차 2학기가 끝나갈 무렵 서서히 정보를 구하기 시작하면서 준비를 했다. 사실 지금에서 보면 그것조차 참 섣부른 판단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떨어지는 돈과 체력, 그리고 가족들의 스트레스를 더 이상 감내할 수 없었다. 그렇게 3년 차가 되고 EAOM이라고 하는 지역 학회와 AOM에서 만났던 다른 학교 교수님 (내가 가고 싶은 학교의 교수님들과 전략적으로 연락을 드렸음)께 내 진행사항을 업데이트를 계속해서 드리는 등의 노력을 지속하였다. 

 

지도교수님께 말씀드려 잡마켓에 나가겠다는 의향을 전달하고 이를 위해 Field exam과 박사논문 프로포절(제안) 심사를 위한 Committee 위원 구성을 마친다. (내부 3명 + 외부 1명).

 

3년 차 2학기가 끝나고 RPI에서는 Field exam이라고 부르는 시험을 치는데 교수님께서 미리 내어준 30~40편의 논문/책을 읽고 미리 준비를 한 다음에 자신만의 논문을 일주일 안에 기준에 맞추어 develop 하는 시험을 쳤다. 나의 경우에는,

 

1. 제품이나 기술 분야를 선정하고,

2. 기존의 이론을 활용하여 가설을 만들고

3. 이를 실험할 각 회사의 매년 측정 가능한 발명이나 기술 발전을 제안하고,

4. 가상의 데이터 셋을 설명하고

5. 이를 통계적으로 분석할 분석 모델을 제시하고,

6. 예상되는 결과의 제시

 

정도가 짧게 요약한 나의 Field exam이었다. (물론 실제 내용은 훨씬 많다). 시험 시간을 일주일.. 거의 밤을 새우듯이 마무리하여 한 관문을 또 마무리한다. 

 

4년 차 1학기 (가을)가 되자 박사과정 프로포절을 준비하면서 함께 학교 지원을 준비한다. 그러나 하나의 패착은 너무 일찍 준비했다는 것인데 학교에서 ABD 상태가 되어야만 (프로포절을 마친 상태) 진지하게 고민을 해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4년 차 2학기 초 프로포절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지원이 가능했다. 사실 봄이 되면 내년 가을 임용을 학교에서는 준비할 때이라 마지막 임용 라운드라고 볼 수 있다. (거의 가능성이 없는 상황, 사실 그걸 따질 만큼의 여유도 없었고 지식도 없었다).

 

2013년 3월 6일 어렵게 프로포절을 마치고 나도 공식적으로 ABD가 되었다. 그때부터 알아보니 사실 내가 지원할 수 있는 풀 자체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 5년을 추천한다). 총 60 여 군데에 원서를 보냈고, 10여 군데에서 전화 인터뷰를 받게 되었다. 그중 한 곳은 프로포절을 하고 바로 다음날 Skype  인터뷰를 하였는데, 그때는 도서관의 1인실을 빌려 놓고 시스템 체크를 마친 후에 각 교수님의 연구분야 및 교과목, 그리고 학교에 대한 정보를 미리 준비하고 예상 질문과 답변을 미리 준비하였다. 사실 Face to face 영어도 익숙지가 않은데 Skype 인터뷰는 훨씬 어렵다. 그래서 예상 질문과 답변을 미리 스크립트를 써놓고 한 시간 전부터 미리 수십 번 되뇌었다. 한창 긴장 끝에 한 전화 인터뷰는 생각보다는 언어적으로는 나쁘진 않았지만 끝나고 나서 잘했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아쉬움...

 

전화인터뷰 준비

그렇게 안되었다고 마음을 접고 있었는데, 오히려 이 학교에서 Campus visit 요청이 왔다. 한 달이나 더 지나서... 여하튼 나에게는 Denmark이후로 처음 하는 미국 주립대학에서 하는 인터뷰라 엄청나게 준비를 많이 했다. 날자를 정하고 하루 전날 학교 근처에 도착해서 하루 종일 진 빠지는 인터뷰를 보았다. 교수님들은 대부분 굉장히 친절했으며, 그때 사실 학장이 내가 다니는 학교 출신이어서 조금은 호의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웬걸 그분이 가장 공격적으로 질문을 하셨다. 내가 인터뷰를 봤던 학교는 한 주의 메인 캠퍼스는 아니었고 대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학교였다. 학교 건물도 새로 짓고 해서 깔끔했고 내가 받은 인상은 좋았다.

 

아침 일찍 연구 발표를 진행했는데, 혼자 준비를 하려면 30여분 시간을 주었는데 그때 파일을 옮기려고 컴퓨터를 쓰다가 보니 바로 며칠 전에 누군가가 발표한 자료가 있었는데, 아마도 같은 position에 지원한 지원자였고 바로 Purdue school 출신이었다. 그때 맥이 탁 풀렸다. Purdue school은 경영학 분야도 유명하고 잘하는 학교라서 갑자기 자신감이 팍 떨어졌다. 그래서 그랬던지 최선을 다해서 했지만 아주 잘했다는 생각이 안되더라.

 

이윽고 점심때가 되자 이탈리안 음식점을 가서 교수님 네 분과 함께 점심을 먹는데 스파게티 소스가 타이에 딱 떨어졌다. 내가 눈이 휘둥그레지자 @.@ 그때 담당 교수님께서 "내가 너 깨끗하게 입고 온 거 봤으니 이야기해줄게" 하면서 웃으시는 거다. 아.. 왠지 징조가 불길하다. 그렇게 각 교수님과의 미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걸까...

 

그렇게 미국 주립대와 했던 캠퍼스 비짓은 끝이 나버렸다. 그때 정신적인 고통이 꽤나 컸는데, 그것을 잘 나타내 주는 페이스북 포스팅이 있어 공유한다.

 

"지독 시리 힘들었던 3월, 프로포절 디펜스와 같은 주에 3번의 전화 인터뷰, 그리고 그 다음주 한 번의 전화 인터뷰, 그리고 화상면접, 이제 두 번의 면접이 더 기다리고 있다. 이번 한 달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스트레스와 수십 번의 면접 준비를 해왔다. 그래도 첫 면접이 끝날 때 정말 다리에 힘이 풀리도록 주저앉고 싶었는데 넘어 갈수록, 조금씩 발전함을 느낀다. 그래야 일차 면접일뿐 아직 갈길은 멀다. 이과정을 다 넘긴 선배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기. 고생했다. 앞으로 다가올 일들이 많기에 다시 평정심을 가지고 파이팅!" (3/20/2013년 facebook에서)

 

다음 편에서는 한국 대학 지원 이야기를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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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CEO 중에 단연 독보적인 인물인 Elon Musk. Steve Jobs처럼 인간적인 호불호를 떠나서 그의 똘아이 같은 기질에 박수를 보내며, 언젠가 나도 Tesla의 Model X를 타고 말리라! 하는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으로서 그의 인생이 궁금한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이 분야 (Startup / Entrepreneurship)에 관심을 둔게 얼마 되지 않았다. 2013년 UNIST에 임용이 되고 나서 얼마 후부터 창업센터 일을 하게 되면서 이쪽 분야에 슬슬 관심을 두기 시작했으니 아직까지 5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동안 나의 인생은 몇 번의 똘아이 같은 결정이 있었지만 그 결정은 큰 틀에서 지극히 안정적인 범위 내에서였기 때문이다. 아마 Elon Musk를 간접적으로 처음 접한 것이 석사과정에 입학을 하면서 당시 교수님이 Paypal이라는 서비스에 대한 케이스를 보여주셨는데 사실 Elon이 공동 창업자였던 것을 몰랐던 관계로 크게 의미를 두지 못하였고, 사실 그 서비스에 대해서는 아직도 정확히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2008년에 '아이언맨' 영화가 나오면서 나중에 영화의 주인공인 Tony Stark이 Elon Musk와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나중에 아이언맨의 감독인 Jon Favreau가 Tony Stark이 Elon Musk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이야기를 하였었다. 그러면서 어렴풋이 그의 존재를 알게 되고 Tesla의 전기자동차인 Model S의 디자인이 내눈을 사로잡으면서 (디자인은 호불호가 있다) 그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UNIST에 강연을 오신 Startup Bible의 저자이신 배기홍 대표님 (https://www.thestartupbible.com/)의 강연에서 1958년도에 생겨서 이제 61살이 된 NASA보다 2002년에 설립된 16살이된 SpaceX가 훨씬 더 효율적인 것 같다는 강연을 듣고 이 기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중에 SpaceX가 Falcon 9 로켓을 재회수 하려고 한다는 뉴스에 꽂혀서 이 사람에게 빠지게 되었었다.

 

그런 관심에도 불구하고 다소 늦게 'Elon musk: Tesla, SpaceX, and the Quest for a Fantastic Future' (https://www.amazon.com/Elon-Musk-SpaceX-Fantastic-Future-ebook/dp/B00KVI76ZS/ref=sr_1_3?keywords=Elon+musk&qid=1579573181&s=digital-text&sr=1-3) 책을 접하면서 그가 어떻게 Zip2 -> Paypal -> SpaceX -> Tesla로 발전시켜 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의 회사 중 내 눈을 사로잡은 건 SpaceX. 많은 어린이들이 그러하듯 어릴 적부터 '은하철도 999'를 보면서 우주에 대한 동경을 꿈꿔왔고, Starwars에 그렇게 빠지지는 않았지만 그 우주를 날아다니는 우주선에 매료가 되었던 나로서는 어떻게 개인이 이런 회사를 만들 수 있을까? 가 항상 궁금했다.

 

대전 출연연구원에 근무하면서 가까이 항공우주연구원이 있었는데, 우리나라도 빨리 발사체를 만들어 달에 착륙하는 장면을 꿈꾸는 나로써는 그가 어떻게 SpaceX를 그렇게 짧은 시간에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릴 수 있는 로켓을 만들게 되고 이를 성공적으로 상용화하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졌었는데, 이 책을 듣고 SpaceX의 성장과정을 따라가 보면서 우리가 생각해볼 만한 것들을 정리해보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몇 편까지 글이 나올지도 모르겠으나 SpaceX가 우리에게 주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함께 고민해보고 싶어진다.

 

2017년 여름 학생들과 함께한 SpaceX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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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로켓이었을까?  (0) 2020.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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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차가 끝날 무렵 메일을 하나 받는다. 본인이 현재 포틀랜드에 있는데 RPI 경영학과에 박사과정으로 입학허가를 받았다며, 당시 싸이월드에 있던 경영학 박사과정 클럽에서 내 연락처를 받고 연락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전까지 건물에 한국인이라곤 교수님 두 분을 제외하곤 내가 유일했는데, 얼마나 반가웠는지는 아마 모를 것이다. 그 친구가 학교로 오는 날 Albany 공항에 마중 나가서 오는데 아주 유쾌한 친구였다. 다. 물론 내가 아이가 생기면서 생각보다 자주 만나지는 않았고 그 친구는 그 친구대로 1년 차 동기들과 함께 잘 어울리며 (미국에서 오래 살아서 그랬던지 나보다 훨씬 사회성도 좋고 영어도 잘해 보였다. 부러워), 간혹 나누는 커피 한잔에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누곤 했는데, 오래는 아니지만 잠시 만나 힘듦을 나누고 서로의 앞날을 파이팅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아무래도 같은 과에 앞으로 같은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 아주 가끔 안주도 변변치 않은 소주 한잔을 나누며, "형, 이제 몇 년만 참고 고생하면 그래도 월급은 제대로 받지 않겠습니까?" 하며 너스레 웃음을 짓는 그 모습에서 나도 많이 힘을 냈던 것 같다. 지금은 한국에서 교수님이 된 그 친구는 지금도 가끔 전화 와서 그때 그 소주 한잔을 기억하냐며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한다.

 

사실 첫째가 태어나면서 우리 부부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고 (잠을 제대로 못 자니) 하루 종일 집에서 애만 보고 있는 와이프가 안쓰러워 최대한 도와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2년 차 수업 듣는 내내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끼려고 소식하고 물도 안 마시고 (참고로 나는 물을 엄청 마신다). 학생들과 하는 점심 혹은 저녁도 전혀 참여하지 못했다.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고 숙제를 조금 하고 바로 집으로 와서 가족과 시간을 조금 보내고 저녁 8시에 다시 학교로 나와서 자정이 넘도록 공부를 하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가는 생활을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서는 참 지독하게 힘들었다 싶기도 한데, 예전에 석사 시절 나만의 책상이 있는 게 너무도 좋았어서 집에도 안 가고 책상에서 앉아 있었던 시간과 회사를 다니며 야근 후에도 영어공부를 위해서 밤잠을 설치며 공부했던 것에 비해서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루에 4~5시간 정도의 잠과 아이를 보며 공부하는 것이 그렇게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마음을 졸이기도 했지만 시간을 쓰는 것 외에 나는 다른 걸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첫째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커가고, 나도 이 년 차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Dr.Simons와 논문 작업에 들어간다. 당시 교수님은 DataSources라고 하는 전자제품 목록(directory)을 수십 년 치를 일일이 스캔하고 이를 데이터화하는 작업을 하였는데 (NSF 프로젝트), 나는 그중에 일부를 먼저 작업해서 그것을 가지고 졸업논문을 쓰기로 한다.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는 데이터는 그 중 하나의 주요한 요소가 된다. 2년 차를 마치면 수업이 없고 전부가 연구학점이 되어 본격적인 연구를 하게 된다. 즉, 다른 말로 하자면 2년 차가 끝나면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다. 수업이 없어서 조금 시간에 버퍼가 생기긴 했지만, 전반적 일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대략 나의 일과는 다음과 같았다.

 

7시 기상 : 생각보다 일찍 일어나시네? 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애기가 있는 분들은 아마 아실 것이다. 동이 트면 애가 일어나서 깨운다.'아빠~'

8시 출근 : 데이터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노트북으로 하기에는 파일이 너무 크고 이미지 작업이 있어서 교수님이 빌려 쓰고 있는 창문 없는 컴퓨터 실로 도시락을 싸서 출근

8시~4시 : 컴퓨터 앞에서 도시락을 까먹으면서 데이터 작업 (스캔한 방대한 양의 파일을, Optical Charater Recognition 프로그램을 돌려 digital 화하고, 이를 일일이 눈으로 체크하며 제대로 되었는지 다시 확인)

4시~8시 : 집으로 돌아와 집안일과 육아를 돕고 저녁을 먹고 잠시 쉰다.

8시~1시 : 데이터 작업을 제외한 논문을 읽고 정리하는 시간

1시~7시 : 피곤함에 잠들었지만, 2~3시간마다 깨는 아이를 돌아가면서 일어나서 다시 재움

 

하다 하다 안되어 아이가 목을 가누고 기어 다니기 시작하자, 옷방에 작은 매트리스를 바닥에 깔고 따로 재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울면 돌아가면서 한 명씩 그 방으로 가서 애를 다시 재우기로 한다. 적어도 그러면 다른 한 명은 계속 잘 수 있으니까. 어느 날은 인기척이 나서 눈을 떴더니 깜깜한 복도를 가로질러 이 녀석이 기어 오고 있는 게 아닌가. 깜짝이야!

 

여하튼 그렇게 3년 차 연구를 이어가고 있었다. 아마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겠지만, 이 3년차와 4년차는 첫 1~2년차와는 달리 뭔가 스스로 하는 것도 없는 것 같고 진도도 안나가는 듯하여 정신적으로 엄청나게 괴롭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이제 곧 졸업을 해야한다는 압박감이 있어서다. 사실 잡마켓에는 졸업시점에서 일년정도 일찍 나가서 시작하는데, 즉 4년차가 끝나는 여름에 졸업을 염두해 두고 있으면 (물론 그것은 지도교수의 마음이겠지만), 3년차 두번째 학기인,  봄부터 잡마켓에 나가서 원서를 쓰고 지원하는 과정을 시작한다. - 이것은 나중에 자세히 써보도록 하겠다.

 

아이도 있고, 그동안 모아놓았던 돈을 떨어져 가고 학교에서 지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학교에서 지원받는 Stipend는 한 사람 정도 겨우 살 정도이다) 도저히 5년 차를 버티기가 힘들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진도는 안나가고 답답한 마음이 이 가득했다. 그때 즈음 부터인가 와이프가 "통 잠을 제대로 못자네"하면서 자다가 소리도 지르고 괴로워 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만큼 스트레스가 컸다. 이 사정을 지도교수님께 설명을 했고 학교에서도 5년차 펀딩에 대해서 (원래는 4년 계약) 불확실하다며 누구도 확답을 해줄 수 없었기에 그렇게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참 논문을 쓰고 있는 3년 2학기에 접어들면서부터 바로 잡마켓에 나가보기로 한다. 지금에서는 정말 무모했던 것 같은데 그 당시 나로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지도교수님도 "네 사정은 이해는 하는데, 그래도 1년 정도 더 준비하는 게 더 좋은 학교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막지는 않으셨지만 아쉬운 마음을 내비쳐 주셨다. 어쨌든 그렇게 지금까지 정리된 CV와 Cover Letter를 쓰고 함께 논문을 썼던 몇몇 교수님들께 추천인이 되어 주시라 부탁을 드렸다. 이 부분은 다 지나서 하는 이야기지만, 사실 경영대에는 몇 명 앉을 만한 박사과정 라운지가 있다 (물론 5명 정도만 앉을 정도로). 그런데 일부러 여기보다는 교수님들 방이 있는 층에 컴퓨터가 몇 대 놓인 오픈공간이 있었는데 초기 2년 동안 매일 그 자리에 앉아서 숙제도 하고 책도 읽고 했었다. 그 이유는 '나 이렇게 공부 열심히 하고 있으니 잘 봐주세요'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것이 먹혔던지 교수님들은 흔쾌히 나의 추천인이 되어주시겠다 말씀을 해주셨다.

 

지도교수님은 내가 드린 CV와 Cover Letter를 앉아서 일일이 수정해 주셨고, 나가시면서 나에게 "Good luck"하셨다. 그래서 데이터 작업을 하다가 지칠 때면 AOM의 Career center, The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 웹사이트를 돌며 내가 갈만한 학교들을 뽑아서 list up 하였다. 사실 뭐 고를 정신이 없었다. 그냥 분야가 맞고 내가 노릴 만한 학교면 일단 list up을 해두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학생 신분이고 Research를 열심히 할 때라 마음적으로는 Research School을 원했지만 Teaching과 Balance가 된 스쿨도 함께 넣었다. (이 부분은 별도의 이야기를 해보겠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AOM 학회에 참여해서 Career Center를 통해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Job Market을 진행하는데 준비가 제대로 안된 채 시작한 나는 이미 그 기간을 놓치고 시작을 한 것이다. 

 

* 보통의 경영학 박사과정생 들은 AOM의 Career Center를 통해 봄에 미리 정보를 수집하고, Job posting이 올라온 학교에 지원을 하게 된다. 그러면 8월 초에 있는 AOM 학회를 통해 인터뷰를 하고 첫 번째 스크리닝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다. 그렇지만 모든 학생이 AOM 학회를 참여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 과정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닌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렇게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즉, 졸업하기 일 년 반 정도 전부터 미리 준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4년 차에 취업과 졸업을 한다는 것은 2년 차가 끝나는 봄학기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앞서 이야기했지만 2년 동안 대부분 수업을 듣는 게 전부라 논문이 진행되기 만무하고 실적이 5년 차, 6년 차 학생들에 비해서 부족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경우는 5년차가 제일 많고 top school의 경우는 6년차 이상 되는 학생들이 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준비가 섣부르게 시작은 했는데 사실 지원하는 시점이 되면 그런 부족한 부분이 보이지 않고 마치 어딘가는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8월에 AOM 학회의 인터뷰 타이밍을 놓치고, 3년 차 1학기(가을)부터 두 번째 라운드*부터 시작을 한 것이다. 

 

* AOM을 통해 인터뷰를 하지 않는 학교들이 가을에 deadline이 많이 있는 경우가 있고, 그래도 못 뽑을 경우 겨울에 세 번째 라운드가 돌긴 한다. 명시적인 시기는 아니지만 AOM으로부터 시작하는 타이밍상 대략 유사한 기간에 Job posting 많이 뜨거나 Deadline이 몰리는 경향을 보인다. 어차피 뽑는 학교 입장에서도 3월까지는 확정을 해야지 서류 작업 등을 해야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한 치 앞도 안 보이고 스트레스틑 커져만 가고 몸은 지쳐만 갈 무렵, 오랜만에 경영대 건물 (컴퓨터 작업은 별도의 컴퓨터 실에서)에서 지금은 Babson에 계시는 Dr.O'Connor교수님을 만났다. 1년 차일 때 잠시 그 교수님과 일을 하다가 진행이 잘 안되어 흐지부지 된 적이 있는데 정량적 연구를 주로 하시긴 하지만 그래도 Innovation 쪽으로 꽤 이름이 있는 교수님이었고, 나 역시 합격자 발표를 받고 교수님의 면면을 살펴보다가 이 분을 지도교수로 진지하게 고민도 했었다. 그 분과 잠시 어떻게 지내는지 이야기를 나누는데, 여차 저차 해서 잡마켓에 나간다고 하니 그 교수님이 갑자기 "I got a job for you"하시는 것이다. 나도 갑자기 반짝반짝하며 물어보니, 당시 교수님이 덴마크의 DTU (Danish Technical University)와 함께 연구를 수행하는데 Assistant Professor in Innovation Management를 뽑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관심이 있으면 이력서를 보내보라고 하신다.

 

알고 보니 Denmark의 경우는 시간이 지나면 Danish 능력을 보기도 하고 사실 쉽지 않은 곳이긴 했지만, 당시에는 일단 아무것도 몰랐다. 와이프에게 이야기를 나누고, 연구와 티칭 경력을 좀 더 쌓고 경제적인 부분도 좀더 해결한 후에 다시 다른 나라로 노려봐도 될 것 같기도 했고, 일단 지금 같으면 독이든 사과도 단숨에 먹어버릴 기세라 정리된 CV를 보내드렸더니 위의 포지션은 이미 선발이 끝났다고 하시며 다만, 다른 쪽에 나와 맞는 연구분야에 포닥 자리가 있는데 가을에 방문하겠냐며 연락이 왔다. 당연히 YES!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인터뷰 경험도 많이 하면 할수록 느는 것 같다).

 

그렇게 2012년 10월에 방문 일정을 잡고 일정은 대략 30분 정도의 미니 연구 세미나와 해당 포지션에 대한 Q&A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Albany->Newark->Brussel->Denmark / Denmark->Stockholm->Newark->Albany로 돌아오는 복잡한 일정이었다. (항상 제일 싼 티켓을 구한다. 비행기 값을 지원해 준다 하더라도). 10월 10일에 출발을 하는데 Albany에서 출발하면서부터 기상 문제로 비행기가 1시간 30분 딜레이가 된다고 한다. Connection 간 시간이 여유가 많지 않았는데, 이거 출발도 못하고 메일을 써서 못 간다고 해야 하나 고민을 할 무렵 갑작스레 탑승 Announcement가 나온다. Connection 시간이 워낙 짧아 긴가민가 하는 상황이었는데, 당시 기장님이 Albany에서 Newark까지 비행기간을 최대한 당겨보겠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진짜 30분 만에 도착을 한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50분). 두 번째 비행기를 뛰다시피 달려서 Final boarding call이 울릴 무렵 겨우 비행기에 탑승을 했는데 거기서 벨기에 까지는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던 것 같다. 그렇게 난생처음 덴마크에 도착. 덴마크에 대한 인상은 상당히 깔끔했고 아담했다 (공항에서부터) 그러고 물어물어 호텔에 도착, 당시에 감정이 페북 포스팅에 그대로 담겨있다.

 

"찬바람이 느껴진다. 갑자기 나는 왜 이리 먼 곳까지 오게 된 건가 생각이 든다. 몇 시간 눈을 감았다 뜨며, 지난 밤새 연습하고 또 고치고 하다 한잔 코피에 몸과 주린 배를 채운다. 미국의 거대하고 화려한 부는 아니지만, 초행길에 길을 물어보니 자못 당황하면서, 카운터를 돌아 나와 유창하지는 않지만 성의를 다해 길을 알려주는 빵집 아가씨에서 뭔가 소박하지만 가득 찬 정을 느낀다. 마치 오래전 지나가는 나그네에 개 물 한잔 줄 수 있는요유로 움. 우리가 발전해 나가면서 놓지는 건 뭔지 생각해 보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늦가을 문턱의 찬바람에 모르는 길이지만 버스보다는 걸으며 학교에 찾아가 봐야겠다" (Facebook, Oct/12/2012).

 

어떻게 잠이 든 건지 잠을 잔 건지 안 잔 건지 새벽에 눈이 반들반들 떠졌다. 처음 인터뷰니 당연할 것이다. 오는 비행기에서 수십 번이나 연습한 슬라이드를 다시 한번 또 보고 연습한다. 일부러 조금 일찍 호텔을 나서 학교를 향한다. 생각보다 영어가 잘 안 통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찍 나섰더니 아담한 학교가 나타났고 날씨도 꽤나 좋았다. 담당 교수를 만나려고 기다리면서 브로슈어를 보니 KAIST와 함께 연계도 하고 꽤나 유명한 학교임을 알 수 있었다. (사실 학교에 대해서는 잘 몰랐고 그럴 정신도 없었다) 면접은 아주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는데 아침시간이라 햄과 빵, 치즈 등이 테이블이 있었고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서 한쪽 화면에서 발표를 진행하였다. 나이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열정적으로 질문을 하셨고 잘 대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대답했다.

 

연구발표가 끝나자 학교에 대해서 궁금한 게 없냐고 물어봐서 포지션과 학교에 대해서 이런저런 질문을 하였다. 특별히 리서치를 따지는 형태의 압박면접은 아니었고 편안한 상태에서 질문을 주고받았다. 약 40분간의 면접이 끝날 무렵, "이제 계획은 뭐냐?"라고 물어주셨는데 "발표 준비를 하고 학교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별다른 계획을 세우진 않았다. 캠퍼스를 좀 둘러보겠다"라고 답변하니 "너 운이 좋아서 날씨가 좋으니 시내 구경을 가보라"라고 담당 교수가 말씀을 해주시면서, 중국계 교수와 함께 점심을 하는 기회를 주셨다 아무래도 동양인으로서 낯선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지는 이야기 나눠보라는 배려였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데, 결론적으로 DTU의 연봉은 그리 높지 않고 물가는 높아서 혼자 벌어서는 살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당시 그 교수님은 덴마크인과 결혼하여 함께 생활중이었는데 아이는 없고 둘이 같이 벌어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더군다나 아이까지 있으니 아무리 복지가 좋다지만 삶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물론 덴마크어도 배워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고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데 말이다. 

 

그 분과 헤어지고 정말 좋은 날씨에 호텔에서 옷을 갈아입고 시내를 한 바퀴 돌기로 한다. 사실은 한국식당을 찾으러 나섰는데,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고 주소를 찾아갔는데 한식당이 없어졌다. 밖에서는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어 그만 포기하고 맥도널드를 찾아 먹는다 (사실 덴마크에 대해서 아무런 지식이 없었다.) 도시에 대한 느낌은 참 좋고 예뻤는데 일단 삶이 너무나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을 보는 교수님들도 아마 나의 그런 느낌을 눈치채셨으리라 생각이 든다. 결국 그곳과는 좋은 인연이 되지는 못하였다.

 

그렇게 나는 첫 번째 캠퍼스 비짓과 인터뷰를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이 진 빠지는 인터뷰는 이제 시작이었으니...

 

호텔 발코니에서 바라본 덴마크의 여명
그날 따라 아침 햇살이 참 좋았는데, 담쟁이 덩쿨이 예뻤던
햇살을 바라보며 잘되어라 했던
면접을 봤던 빌딩
면접을 마치고 시내 구경 (사실 한식당을 찾아서)
백과사전에서만 보던 인어공주 상 (생각보다 작았다)
덴마크 궁
덴마크의 시그너쳐 뉘하운 운하 (정말 예뼜다)
아니나 다를까 돌아오는 길에는 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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