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UNIST에 처음 들어갔을 때 첫 수업의 긴장감과 부담감은 아마 어떻게 표현해도 부족할 것인데 그만큼 준비를 정말 많이 했고, 한국에 있는 학생들에게 영어로 가르치는 것은 또 어떨까? 요즘 친구들은 영어를 잘한다던데, 여기는 학생들이 똑똑하다던데, 미국에서 울산으로 오고 나서 연구실에서 많은 시간을 들여 수업을 하였다. 당시에는 새로운 과목을 열어야 했었는데 '인터넷 비즈니스'였다. 일단 학생들이 '인비'라고 줄여서 부르는 것이 재미있었고 (사실 모든 말을 줄여서 이야기하는 문화를 처음 접해서, 학교 식당 -> 학식), 생각보다 학생 수가 많아서 고민이 근심/걱정이 많았다.

 

처음 들어갔으니 그 부담감만큼 열정도 가득했는데, 돌이켜 보면 그만큼 엄청 힘든 수업이었다. 학기 중에 학생들이 "교수님 수업 4개 듣는 것 같아요" 하면서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지만, 그래도 꽤 재미있게 수업을 잘 진행한 것 같았다. 나중에 강의 평가에서는 "수업이 너무 힘들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고, 돌이켜 보면 내 수업 하나만 듣는 게 아닌데 너무 심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걸 난이도 실패라고 하나 보다. 

 

나에게는 정말 의미있었던 UNIST 첫 수업

부담은 되었지만, 학생들과 그렇게 소통하는 게 참으로 좋았다. 지금도 그런 마음이기도 하고 항상 노력을 하지만, 수업은 함께 만들어간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나름 궁합이 잘 맞아야 역시 덜 피곤하고 오히려 많은 걸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도 든다. UNIST의 학생들은 참 똑똑했다. 열심히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몇몇 학생들이 "교수님 수업 다 들을 거예요" 하는 말이 그렇게 힘이 될 수가 없었다. 

 

미국에서 첫 수업은 Capstone 수업인 Strategy이었다. 사실 나 스스로 준비가 더 되었어야 했는데, 미국으로 가족을 이사하고 아이를 초등학교에 전학시키고 집 구하고 적응하고 한다고 뭔가 정신없이 지나갔고, 이미 수업을 한번 해봤던 거라 준비가 부족한 면도 분명히 있었는데, 결론적으로는 또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고 말았다. 사실 이 기저에는 미국 대학생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인데, UNIST의 경우 국가에서 장학금을 전체를 지원하고,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열심히 밖에 할 것이 없었지만, 미국 대학생은 대부분 full time/part time job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처음에 미국에서 누군가 이메일로 '내가 일을 해야 해서 수업을 못 갈 것 같아' 하길래. '잉? 어처구니가 없네'하는 반응이었는데 - 물론, 학생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게 주로 하는 게 맞지만, 이런 일이 부지기수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돈을 벌어 학비를 대거나, 싱글맘이거나, 나이 들어서 늦게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학생의 스테레오 타입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첫 퀴즈가 12점 만점이었는데 평균이 2점이 살짝 넘어서.. '이것들이 ㅡ.ㅡ'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어쩌랴. 내가 잘 못 가르친 탓이겠지.라고 level control의 실패를 인정해야 했다. 아울러 미국 애들이 토론을 잘한다고 일반적으로 한국에 알려져 있긴 하지만, 수업시간에 말 안 하는 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저치들의 입을 어떻게 열까 고민이다. 한 수업은 17명이고 아침 수업이라 일단 참여하는 태도부터가 다른 아이들이지만, 그다음 수업은 28명에 미국의 전형적인 백인 운동하는 애들이 반 정도 되고 이것들은 앉은 건지 누운 건지 알 수 없는 자세로 제일 앞자리에 있으니 아직도 이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이 되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수업은 그럭저럭이고 한국이나 미국이나 잘하는 친구들은 잘하고 관심 없는 애들은 딴짓한다. 그렇게 핸드폰 쓰지 말고 점수 깎는다고 이야기했는데도 말이다. 더 강하게 나갈지 접어둘지 manage 방법을 항상 고민한다. 최근에 기술의 발전은 좋지만 Airpods 같은 걸 귀에 꼽고 수업에 앉아 있으면 당황스럽다.

 

제일 힘든 부분은 사례인데, 한국에서 한국기업이나 미국의 주요 큰 기업들 몇 개는 익숙하긴 하지만, 미국의 전체적인 시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기에 적절한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참 힘들었다. 그만큼 많은 시간을 쓰긴 했고 주로 Amazon, Uber, ToysRus 같은 일반적인 사례로 접근을 시도하였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는 비즈니스 환경이라 사실 사례야 무궁무진한 편이긴 하다. 다만 그것들의 깊은 정보를 파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학교와 처해진 주변 환경이 달라서 UNIST의 경우에는 치열함을 이미 겪고 그 자리에 온 친구들 그리고 앞으로의 불확실성으로 몸부림치는 느낌이 강했다면 이곳은 훨씬 더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이곳의 학생들도 삶의 치열함은 있지만, 최근 미국 경기가 호황이고 이 넓지 않은 반도에서 그래도 인정받는 학교라 근처에 있는 기업들이 우리 학생들을 서로 데려가려고 하기에 취업 걱정을 하는 친구를 본 적이 없다. 뭐랄까 '이건 선택의 문제야' 같은 태도. 한편으로는 그것들이 부럽기도 하고 한국의 학생들이 안쓰럽기도 하다. 

 

공통적인 건 한국이던 미국이던 할 놈은 하고 안 할 놈은 안 한다.

반응형
반응형

대학의 차이라기보다는 삶의 방식의 차이인 것 같았다. 4년 간의 박사과정을 마치고 UNIST로 돌아왔다. 아주 좋은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건 참으로 복된 일이다. 교수가 되었고, 이제 9시 출근시간 같은 건 없지만, 여전히 7시면 출근을 하였다. 그래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던 것이 누군가가 하라고 선을 그어 놓으면 왠지 하기 싫어지고, 내가 그냥 알아서 하면 가끔 더 오버할 때가 많다. 아마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라고 하는 것일 거다. 내가 교수가 된 다음에도 어머니는 늘 5시에 일어나셔서 6시면 일을 나가셨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부모님의 모습을 바라봤는데 어찌 내가 다를 수가 있을까. 우리 집은 새벽 5시 30분에 밥을 먹는다. 너무도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아침은 부모님과 함께 하고 싶었다. 

 

아버지는 교수가 되었으니 이제 자식이 큰 돈을 벌어오고 좋은 평생직장을 얻었다고 생각하셨다고 했다. 그 말은 두 가지 모두 틀린 말이다. 사실. 교수는 돈을 많이 버는 직업도 아닐뿐더러, 이제 교수도 평생직장이 아니다. UNIST는 너무 좋은 학교다. 복도를 따라서 교수 방이 한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다들 쟁쟁하신 분들이다. S대, K대, ... 이들과 직접적인 경쟁은 아니겠지만, 대학은 Tenure라는 제도가 있고 UNIST는 한국에서 손에 꼽을 만큼 엄격한 tenure 잣대를 가지고 있다. UNIST에 4년을 넘게 다니면서 자정 전에 집에 들어간 것이 한 손에 꼽을까 말까 이다. 물론, 그것이 매일 공부를 한 건 아니지만, 주된 이유이긴 했다. 

 

아울러 UNIST는 신생학교라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널려 있었다. 창업센터도 그렇게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을 겁내 하지 않고 일하는 걸 좋아했나 보다. Tenure를 위한 연구의 압박과 더불어 그만큼의 일을 했다. 거기에 가족은 서울에 있어서 매주 왕복을 하며 정신없는 일상을 보냈다. 그래도 젊은 동료 교수님들과 일하는 것도 좋았고, 그들과 일 끝나고 밤늦게 시작된 소주 한 잔도 좋았다. 다만,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수업에는 소홀해지기도 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를 돌아 봤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여전히 하루의 잠은 5시간을 넘지 않고 무엇인가 정신없이 하는 것 같은데 선생으로서 나의 발전은 더디기만 한 것 같다. 언제 여유롭게 앉아서 책을 읽어본 기억이 있을까? 스스로가 부끄러울 때가 많았다. 그런데 한국은 원래 그런 곳이 아닌가. 모든 게 빠르게 흘러가는

 

Salisbury University에 오고나서, 집을 바닷가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구했다. 첫 학기가 시작하기 전 그리고 아이들이 개학을 하기 전에 그 바닷가에 몇 번 찾아갔더랬다. 한 여름이지만 너무도 넓어서 사람보다 모래가 많이 보이는 낯선 광경에서 또 보이기 시작한 건 그들의 생활 방식이다. 아침에 빵과 커피 하나 그리고 책 한 권에 파라솔, 간이의자를 들고 하나둘 조용한 백사장에 자리 잡더니 그 풍경을 배경 삼아 오후 내내 책을 읽다가 돌아가는 사람이 많이 눈에 띄었다.

 

몰랐지만, 내가 사는 곳은 은퇴촌으로 유명해서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 들이 그렇게 책을 읽고, 집 앞의 조그마한 정원을 가꾸며 산다. 순간을 치열하게 살다가 무엇인가 비현실적인 곳으로 넘어온 것이다.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여유롭고 천천히 흐르는 환경을 그대로 따르듯 학교도 천천히 흘러간다. 학생들은 무엇인가 치열해 보이지 않고 여유로워 보인다.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는 수업 외에 할 일이 없다. 사실 아직까지 시민권자도 아니고 겨우 취업비자를 들고 왔기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수업 준비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주변 교수님들도 그렇게 하라고 하신다. 

 

책을 들기 시작했다. 주변에 계절의 변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연구 생각, 수업 생각, 내 인생 삶에 대한 생각, 내 가족에 대한 생각. 처음에는 막연히 나는 후진기어를 넣고 악셀을 밟는 느낌이었다. 한국에서 친구들은 날아다니는데 나는 오히려 뒤로 뛰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그렇게 첫 1년이 참으로 힘들더라 새로운 인생 환경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직 그것을 완벽히 소화하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조금 깨닫게 되었다. 삶의 방식이 다른 것이고, 이곳에서는 그렇게 살아감을 배워야 하는 것인 것을.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지는 않는다. 주변을 보고 환경의 변화를 깨닫는다. 박사과정 때 읽겠노라 사놓았던 오래된 책을 책장에서 꺼냈다. 이곳의 삶은 그런 것인것 같다.

반응형
반응형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미국의 우주산업은 소위 'Sputnik crisis'로 알려진 사건으로 말미암아 (소련이 먼저 유인 인공위성을 발사한 사건), 미국의 즉각적인 대응으로 기존에 NACA(National Advisory Committee for Aeronautics)를 흡수하면서 1958년 NASA의 설립으로 산업이 본격적인 태동을 하게 된다. 

 

NASA는 기존의 다양한 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서 미국의 우주산업을 전체적으로 키워 왔는데, 거대 기업인 Boeing은 1993년도부터 NASA로부터 ISS(International Space Station)의 주계약자로 선정되어 NASA와 함께 일을 하고 있었고 (https://www.boeing.com/space/international-space-station/), 미국의 다른 항공대기업인 Lockheed Martin 역시 1990년대 중반부터 X-33과 같은 우주왕복선을 NASA와 함께 개발을 했었다 (https://www.space.com/11363-nasa-space-shuttle-replacement-30-years-anniversaries.html). 이 두 회사 이외에도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Northrop Grumman이라는 회사가 있는데 이 회사는 예전에 Orbital Sciences Corporation이었던 회사를 인수하였다. 이 Orbital회사는 중소형 우주 발사체 및 로켓을 디자인하고, 생산하고, 제조하는 곳인데 (https://en.wikipedia.org/wiki/Orbital_Sciences_Corporation), 이 회사 역시 1983년도에 Transfer Orbit Stage의 2단을 디자인하면서 NASA와 함께 일을 하게 된다 (https://history.nasa.gov/SP-4012/vol5/vol_v_ch_2.pdf). NASA가 초기부터 이렇게 민간기업이랑 함께 일을 하였던 부분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이를 통해 정부 주도이긴 하지만 정부가 큰 고객이 됨으로써 전반적인 산업의 생태계를 크게 확장시키는 일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여기에서 또하나 인상적인 점은 다른 회사보다 Orbital Sciences Corporation인데, 이 회사는 하바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만난 3명의 창업자가 1982년에 설립을 하게 되는데 불과 3년 뒤에 NASA와 2단 발사체 개발에 대한 계약을 맺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기관이 Orbital처럼 신기술을 가지고 있는 스타트업 기업(신생기업) 들과 계약을 맺고 일을 했다는 것은 참 부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정부기관이 많은 부담을 가지긴 하지만 이를 통해 새로운 기업들이 산업에 진입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고,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이를 통해서 자신의 기업을 급성장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니 말이다. 거꾸로 한국의 경우에 정부출연연구원이 3년차가 된 스타트업 기업을 믿고 함께 일을 수행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로 쉬운 부분이 아닐 것이다. 이 회사는 나중에 우리에게는 반도체 설립회사로 잘 알려진 Fairchild (반도체 말고 많은 분야의 비지니스가 있었다)의 Space and Defense division을 인수하고 (1994년) Fairchild의 인공위성 디자인 및 제작하는 비즈니스 부문과 합병한다. 이후 2014년에 ATK와 합병을 거쳐 2017년에 Northrop Gunmman에 $7.8 billion에 인수된다. 

 

Elon이 SpaceX를 설립할 시점인 2002년으로 돌아와 당시에 SpaceX를 시작하기 이전에 이미 NASA와 협력을 하였던 큰 골리앗(Goliath) 기업들이 존재를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단순히 자신의 관심사 혹은 꿈이나 화성에 인간을 이주 시키는 것을 떠나서 비즈니스 적으로도 가능할 것인지를 따져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미 NASA에서 Boeing, Lockheed Martin, Northrop Gunmman과 같은 회사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었으니 자신도 그런 기회를 충분히 마련할 수 있고, 오히려 몸집이 큰 Goliath보다 더 민첩하게 Silicon Valley에서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Agile 하게 일을 하는 David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이미 주판을 튕겨 봤을 것이다..

 

이러한 산업적 배경과 더불어, 개인적으로도 명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Elon은 어린 시절부터 우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U Penn 시절 경제학과 물리학을 접하며 단순히 관심에서 본격적인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대학시절에도 친구들과 가끔 다행성 (Multiplanetary) 종족이 되는 이야기를 하였다고 하니 그의 관심사를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마도 단순히 꿈만 꾸고 동경만 하였던 그의 생각을 열어준 것이 Paypal의 경험이었다고 본다. 

 

Elon이 Zip2의 성공 이후 은행에서 인턴에서 느꼈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온라인 은행을 처음 생각을 했을때, 그는 은행에 대해서 잘 몰랐다고 했다. 단순히 '기존의 루틴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지루한 곳'이라는 느낌을 가졌던 모양인데 이를 바꾸었던 것이 SpaceX를 설립하는데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이 든다. 잘 모르는 은행산업을 혁신적으로 바꾸는 Paypal도 해냈으니 그의 관심사인 우주에 관심을 돌리고 직접 벽에 부딪혀 보는데 예방주사를 맞은 셈이었을 수도 있다. 거기에 더해서 SpaceX 설립 직전에 말라리아로 죽을 고비를 넘기는 경험도 '내가 죽기 전에 진짜 하고 싶은걸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는데 일조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로켓에 대해서는 어린시절 관심으로 인해 조그마한 로켓 몇 번 만들어본 경험이 전부일 테고, 커서는 Zip2와 X.com(나중에 Paypal) 사업에 집중을 했을 테니 로켓이나 우주에 대한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막상 Paypal이 Ebay에 팔릴 시점이 되고, 경영권 분쟁 등으로 자신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자 새로운 길을 모색했을 테고 그때 즈음 우주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당시 저 Goliath 말고 한 명의 다른 미친놈이 우주산업을 문두 드리고 있었으니 그가 Jeff Bezos이고 그는 2000년에 Blue Origin을 설립을 했다. Blue Origin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고 그러한 Jeff의 도전에 자신이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무가내 정신으로 이 새로운 세계의 문을 두드렸을 것이다. 

 

이렇게 의도치 않게 역사의 한 페이지가 채워지는 것 같다. 우리에겐 승리자가 된 Goliath나 David 둘 중에 하나가 아니라 Goliath AND David 우리에겐 둘다 필요하지 않을까.

반응형

'Crazy startups > SpaceX, What we can lear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봉보다는 꿈을 주는 일자리  (0) 2020.02.07
실천베이스에 운(Luck) 한꼬집  (0) 2020.02.04
Why LA?  (0) 2020.01.30
왜 하필 로켓이었을까?  (0) 2020.01.25
들어가며  (0) 2020.01.2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