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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차이라기보다는 삶의 방식의 차이인 것 같았다. 4년 간의 박사과정을 마치고 UNIST로 돌아왔다. 아주 좋은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건 참으로 복된 일이다. 교수가 되었고, 이제 9시 출근시간 같은 건 없지만, 여전히 7시면 출근을 하였다. 그래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던 것이 누군가가 하라고 선을 그어 놓으면 왠지 하기 싫어지고, 내가 그냥 알아서 하면 가끔 더 오버할 때가 많다. 아마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라고 하는 것일 거다. 내가 교수가 된 다음에도 어머니는 늘 5시에 일어나셔서 6시면 일을 나가셨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부모님의 모습을 바라봤는데 어찌 내가 다를 수가 있을까. 우리 집은 새벽 5시 30분에 밥을 먹는다. 너무도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아침은 부모님과 함께 하고 싶었다. 

 

아버지는 교수가 되었으니 이제 자식이 큰 돈을 벌어오고 좋은 평생직장을 얻었다고 생각하셨다고 했다. 그 말은 두 가지 모두 틀린 말이다. 사실. 교수는 돈을 많이 버는 직업도 아닐뿐더러, 이제 교수도 평생직장이 아니다. UNIST는 너무 좋은 학교다. 복도를 따라서 교수 방이 한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다들 쟁쟁하신 분들이다. S대, K대, ... 이들과 직접적인 경쟁은 아니겠지만, 대학은 Tenure라는 제도가 있고 UNIST는 한국에서 손에 꼽을 만큼 엄격한 tenure 잣대를 가지고 있다. UNIST에 4년을 넘게 다니면서 자정 전에 집에 들어간 것이 한 손에 꼽을까 말까 이다. 물론, 그것이 매일 공부를 한 건 아니지만, 주된 이유이긴 했다. 

 

아울러 UNIST는 신생학교라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널려 있었다. 창업센터도 그렇게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을 겁내 하지 않고 일하는 걸 좋아했나 보다. Tenure를 위한 연구의 압박과 더불어 그만큼의 일을 했다. 거기에 가족은 서울에 있어서 매주 왕복을 하며 정신없는 일상을 보냈다. 그래도 젊은 동료 교수님들과 일하는 것도 좋았고, 그들과 일 끝나고 밤늦게 시작된 소주 한 잔도 좋았다. 다만,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수업에는 소홀해지기도 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를 돌아 봤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여전히 하루의 잠은 5시간을 넘지 않고 무엇인가 정신없이 하는 것 같은데 선생으로서 나의 발전은 더디기만 한 것 같다. 언제 여유롭게 앉아서 책을 읽어본 기억이 있을까? 스스로가 부끄러울 때가 많았다. 그런데 한국은 원래 그런 곳이 아닌가. 모든 게 빠르게 흘러가는

 

Salisbury University에 오고나서, 집을 바닷가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구했다. 첫 학기가 시작하기 전 그리고 아이들이 개학을 하기 전에 그 바닷가에 몇 번 찾아갔더랬다. 한 여름이지만 너무도 넓어서 사람보다 모래가 많이 보이는 낯선 광경에서 또 보이기 시작한 건 그들의 생활 방식이다. 아침에 빵과 커피 하나 그리고 책 한 권에 파라솔, 간이의자를 들고 하나둘 조용한 백사장에 자리 잡더니 그 풍경을 배경 삼아 오후 내내 책을 읽다가 돌아가는 사람이 많이 눈에 띄었다.

 

몰랐지만, 내가 사는 곳은 은퇴촌으로 유명해서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 들이 그렇게 책을 읽고, 집 앞의 조그마한 정원을 가꾸며 산다. 순간을 치열하게 살다가 무엇인가 비현실적인 곳으로 넘어온 것이다.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여유롭고 천천히 흐르는 환경을 그대로 따르듯 학교도 천천히 흘러간다. 학생들은 무엇인가 치열해 보이지 않고 여유로워 보인다.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는 수업 외에 할 일이 없다. 사실 아직까지 시민권자도 아니고 겨우 취업비자를 들고 왔기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수업 준비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주변 교수님들도 그렇게 하라고 하신다. 

 

책을 들기 시작했다. 주변에 계절의 변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연구 생각, 수업 생각, 내 인생 삶에 대한 생각, 내 가족에 대한 생각. 처음에는 막연히 나는 후진기어를 넣고 악셀을 밟는 느낌이었다. 한국에서 친구들은 날아다니는데 나는 오히려 뒤로 뛰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그렇게 첫 1년이 참으로 힘들더라 새로운 인생 환경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직 그것을 완벽히 소화하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조금 깨닫게 되었다. 삶의 방식이 다른 것이고, 이곳에서는 그렇게 살아감을 배워야 하는 것인 것을.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지는 않는다. 주변을 보고 환경의 변화를 깨닫는다. 박사과정 때 읽겠노라 사놓았던 오래된 책을 책장에서 꺼냈다. 이곳의 삶은 그런 것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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