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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서 이야기를 나눈 바 있지만, Academia에는 Tenure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다. 기본적으로 학교에서 인정하는 교육과 연구의 자질을 갖춘 교수(혹은 연구자)에게 정년을 보장해 주는 제도를 의미한다. 영광스럽게도 최근 그 결과를 받아들어서 그 과정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학교에 깊숙히 들어와 있지 않은 분들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모든 사람을 '교수'로 통칭하는데 사실 그 교수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굉장히 그 분류가 많다). 그러나 간단하게 분류하자면 교수를 Tenure-track(정년 심사를 통해서 정년을 받게 되는) 교수와 그렇지 않은 교수(비정년트랙으로 통칭 - Adjuct를 비롯하여, 연구교수, 기금교수, 산학협력교수 등 필자 조차도 다 모를 정도의 이름을 가진)로 나눌 수 있다. 그 큰 차이라고 한다면 'Tenure(정년 이하 Tenure라고 부르겠다. 한국의 정년 개념과는 약간 다른듯 해서)' "심사"를 받을 수 없느냐 이다. 즉 비정년 트랙(Non-tenure Track - 위에서 언급한 '그렇지 않은 교수' 통칭)의 경우 정년심사를 받을 수 없는 교수를 의미한다. 간단하게 두 가지의 다른 길이 있다고 보면 된다. 비정년 트랙의 경우는 계약(및 재계약)을 통해서 주어진 형태의 일을 하게 된다. 

 

Tenure-track faculty로 학교에 임용이 된 경우에는 (미국의 경우) 보통 6년의 시간을 준다. 이를 tenure clock이라고 하는데 임용이 되자 마자 Tenure clock이 틱톡거리면서 가게 된다. 6년이 끝나면 그동안 했던 모든 일들을 정리해서 Tenure review package를 만들어 제출을 하게 되고, 이 Package는 Promotion&Tenure Committee (P&T Committee - 학교마다 이름은 조금씩 다를 수 있음)를 통해서 심사를 받게 되고, 그 결과가 학과장->학장의 추천서와 더해서 부총장(Provost)에게 보고가 되고, 최종적으로 부총장이 총장(President)에게 Tenure 추천을 의뢰하여 결과가 나오는 형태를 취한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package submission부터 최종 총장의 Letter를 받기 까지 나의 경우 대략 2달의 시간이 걸렸다. 

 

Tenure package는 대게 비슷한 형식을 띄는데, 크게 연구, 교육, 서비스의 분야에서 심사 기간동안 수행한 자신의 성과를 정리를 하여 포함시키게 된다. 연구의 경우 학회 발표, 참석 등을 포함하나 제일 중요한 것은 논문 실적이다. 논문 실적의 경우는 학교마다 내부적으로 평가하는 방법이 다르다. 예를 들어서, R1이라고 부르는 연구중심의 학교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미국 학교들 - Stanford, MIT, UPenn ...)의 경우는 각 분야의 Top journal 3~5개에 출판을 해야만 그 실적을 인정해 주고 학교마다 다르지만 3개에서 5개 정도의 논문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이게 사실 쉽지가 않다.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경영학 Top Journal의 경우는 심사 및 재수정이 4~5번씩 돌아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빨라도 제출부터 심사완료까지 기간이 2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어서 Tenure clock 안에 top journal에 3개 이상을 출판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래서 사실 임용이 되면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지만, 월급만 많아질 뿐 (사실 훨씬!! 많아진다) 그 부담 및 업무 분량은 박사과정때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농담삼아서 Assistant Professor 1년차 2년차 3년차 .. 를 (보통 박사과정을 5년 안에 끝냄으로) 박사과정 6년차, 7년차, 8년차 ...라고 부르기도 한다. R1 스쿨을 제외한 Balanced School(교육과 연구가 잘 균형 잡혔다고 해서)의 경우나 Teaching School (교육 중심의 학교들)의 경우는 그보다 훨씬 폭넓은 저널을 인정해 (물론 Impact factor나 각 저널의 질을 따진다) 주기에 R1 학교들 보다는 부담이 적다.

 

교육의 경우는 수업의 질을 의미하는데, 아무래도 학생들의 강의 평가가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이다. 물론 학생들의 강의 평가가 의무가 아닌 학교의 경우에는 보통 불평을 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주로 평가에 참여하기에 점수 자체가 가지는 약점 또한 P&T Committee 에서 알고 있다. 그래서 학생들의 강의 평가를 숫자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지난 과정 동안 학생들이 일관성 있는 불평을 하는지 (이는 교수가 학생들의 불평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의미임으로), 아주 기본적인 준비가 소홀하는지 등의 큰 문제점이 있는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수업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얼마만큼의 시간을 투자하고 교수가 보다 나은 교육을 위해 노력을 하는지가 주요한 요소가 된다. 보통 R1 스쿨의 경우는 학기당 1.5개 정도의 티칭을 하고, 교육 중심으로 갈수록 3개 혹은 많게는 4개의 수업을 매 학기 마다 하게 된다. 즉 다른 말로 하자면 R1의 경우는 수업의 부담을 줄여주는 대신에 아주 Top journal에 출판을 하게될 연구를 요구하게 되고, 교육 중심으로 가면 수업이 많아서 수업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연구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게 된다. 소위 Balanced School이나 Teaching School의 경우는 교육에 대해 평가 방점을 두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노력을 꾸준히 해야한다. 저자의 경우 첫번째 학기에 미국학생들을 대상으로 처음하는 강의에 학생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강의평가가 아주 안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지속적으로 개선되어 평가 마지막 학기의 경우 학과에서 최고의 강의 평가를 받아서 그 부분이 P&T Committee에서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 서비스의 경우, Teaching 으로 갈수록 아무래도 학생들에 대한 서비스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임용이 된 교수들이라도 어느정도의 부담은 있게 마련이다. 저자가 있는 학교의 경우에는 Faculty handbook에 Tenure심사에서 서비스를 딱히 규정하고 있지 않지만, 학과에서 필요한 일들을 적정한 선에서 도와준다면 서비스가 발목을 잡는 경우는 드물다. 

 

이외에 주요한 요소는 아니지만, 학교행사(입학식, 졸업식, 교수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지, 학교에 얼굴을 자주 비치는지 (좀 웃긴 부분인데, 좀 멀리서 사는 교수들의 경우는 수업을 제외하고는 학교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음) 등의 Impression management가 필요하다.

 

저자의 경우 원래 계약 당시에는 6년째 Tenure심사를 받는 것으로 계약을 했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자리를 옮기는거라 불확실성이 높고 학교의 평가 시스템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었기에 구지 Tenure Clock을 당겨서 계약을 하게 되어 부담을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했다. 아 그리고 정년을 받지 못한 경우는 (미국에서는) 학교를 떠나야 하기에 더더욱 부담감이 있었다. 다행히 임용 이후에 연구 성과가 잘 나오고 교육의 경우도 첫 학기에 낮은 강의 평가를 점차 회복하는 긍정적인 방향을 보이기에 학과장과 이야기를 나눠서 Tenure Clock을 2년 당겨서 진행하자고 이야기를 나눴고, 지난 학교의 교육/활동 경력을 인정해 주어 P&T Committee~부총장까지의 승인을 얻어 이번에 Tenure 심사를 올리게 되었다. 

 

저자가 근무하는 Salisbury University의 경우에는 작년부터 Tenure 심사에 Digital화를 추진하여 예전처럼 큰 바인더로 묶인 Tenure package를 제출할 필요가 없이 바로 그동안 했던 논문실적들, 학회참여 실적들, 각종 수업에 대한 강의계획서, 학생들의 강의평가 등이 일부 자동으로 입력이 되거나 본인이 직접 확인하고 Upload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인상적인 것은 P&T Committee로부터, 학과장, 학장, 부총장에 이르기 까지 각 평가과정 및 결과 Letter를 심사요구자가 단계별로 보고 혹시 이의를 제기할 사항이 있으면 제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다행히 나의 경우는 별 문제는 없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지난 12월 17일 코로나가 한창인 2020년의 마무리를 뜻깊게 할 수 있었다. 

 

그동안 박사과정을 포함하여 10년이 넘는 노력의 결과를 받아들게 되어 감동적인 순간이자, 이제 편안하게 내가 원하는 연구와 일을 하면서 가족들과의 안정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더 컸다. 물론 개인적으로 Tenure 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그리 반기지 않은 편이다. 원래 Tenure의 취지 자체가 권력이나 외부 영향에 휘둘리지 않고 순수하게 과학적 연구의 결과를 발표하고 의견을 개진하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는데, 한국이나 미국이나 Tenure를 받았던 말았던간에 그리 강단있게 의견을 개진하는 경우도 거의 없는 것 같고 학교에서 이를 빌미로 젊은 주니어 교수들의 목숨줄을 쥐고 권력화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모든 학교가 다 그런건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연구자들이 이를 위해서 긴 시간동안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에서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그리고 코로나로 우울했던 2020년을 그래도 기쁜 소식으로 마무리를 했다는 의미에서 독자들과 정보와 기쁨을 나누고 싶어 정리해 보았다. 다만, 학교마다 그 평가방법이나 구체적인 내용의 경우 다를 수 있기에 일반화하기는 어려운 부분도 있음을 다시한번 말씀드린다.

 

올 한해 본 블로그를 방문해 주시고 구독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며,

한해 마무리 잘 하시고, 2021년에는 코로나 없는 희망찬 새해로 만나뵙길 기대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Maryland에서 강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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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를 계기로 가장 크게 타격을 맞은 곳 중에 하나가 바로 대학이지 싶다. 한국도 마찬 가지겠지만 미국 대학의 경우 COVID19 자체도 그러하지만, 이를 계기로 트럼프 정부의 유학생에 대한 정책 변화 등으로 상당히 고통스러운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아마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그 여파가 지속되리라고 본다. 

 

물론 비지니스 스쿨의 일부 프로그램 (MBA)의 경우는 오히려 지원자가 느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경기가 나쁘면 나쁠수록 학생 신분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싶긴 하다. 더군다나 COVID19으로 인해서 온라인 수업의 확대 등으로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수업에 접근할 수 있는 것도 한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www.wsj.com/articles/applicants-flock-to-elite-business-schools-to-ride-out-the-coronavirus-pandemic-11601409456)

 

다행히 내가 있는 Salisbury University는 유학생 수가 적고, 지역에서 터줏대감(?) 같은 역할을 하는 터라 약간의 영향이 있긴 했지만, 다른 학교의 아주 horrible 한 소식들에 비해서는 얌전히 이 난관을 겪어 나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앞으로 오랜 기간 지켜봐야겠지만 말이다. 내가 2017년 임용이 된 뒤로 계속적으로 노교수님들이 은퇴를 하고 있고, 그 자리를 새로운 교원들로 자리를 메우고 있다. 올 때만 해도 과 전체에 약 20여 명의 교수 중에 나 혼자 한국 사람이었는데 (중국계 1명, 인도계 1명, 나머지 다 미국인), 이제는 한국 교수님이 과에만 해도 나를 포함해 4명이 되어 다수가 되어 버렸다. (다수가 되어 버린 ㅎ)

 

그렇게 지속해서 일종의 물갈이가 되고 있는데, 어려운 COVID19 상황에서도 신규 임용을 추진하는 몇 안 되는 학교 중에 하나였고, 그 중에 실제로 Candidate를 캠퍼스로 직접 불러서 인터뷰하는 정말 몇 안되는 학교 중에 하나였다. 최근 Campus visit(임용 과정 중에 제일 마지막 과정)을 오는 지원자들을 보면 '참 잘한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자극을 받는 건 항상 행복하면서 두려운 일이긴 하다.

 

이번 주 내내 3명의 Candidate이  Campus visit을 하였고, 하루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직접 발표도 듣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봤는데... 모든 지원자가 그러하지 않겠지만, 대부분 약간이라도 직장경험을 가지다가 Academia로 온 사람이 많았다. 그러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발표를 들어 보면, 연구 주제의 선정에서부터 수업에서도 굉장히 실무적인 방법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오늘 온 지원자의 경우는 본인이 직접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박사과정에서부터 수업에서 실제 프로젝트를 가지고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을 이야기해주어서 이제는 박사과정생들이 연구뿐만 아니라 (물론 연구 주제를 현업에서 가져오는 경우도 많이 있다) 수업에서도 실제 프로젝트를 접목하는 노력을 많이 한다는 느낌을 받아 상당히 신선했다. 

 

개인적으로도 바로 연구자가 되기보다는 약간이라도 경험을 가지고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그것을 일부러 그렇게 한건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약간 detour한 나의 경험은 연구뿐만 아니라 수업이 아주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사실 말이 좋아 Project-based teaching이지만, 이를 위해서 교수는 Teacher 이전에 Project manager의 롤을 해야 한다. (그 외에 학교 서비스와 연구를 제외하더라도) 그것이 사실 쉽지 않은 일이고, 기업 입장에서도 시간과 돈, 데이터를 공유해 가면서 불확실성이 높은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프로그램을 도전해봤었고, 사실 한국에서는 Service에 대한 명확한 Scope definition이 불분명하고 이러한 컨설팅 서비스에 대해서 그냥 돈 낭비라고 (많은 경우 그냥 학교랑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아니면 지인의 부탁이니 없는 샘 치고 하는) 참여하다 보니, 이러한 프로젝트에서는 Client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느냐가 주요한 관건인데 '나는 바쁘니 그리고 내가 돈을 내었으니 알아서 결과만 다오' 하는 식의 접근법이 많다. 어떤 분들은 학생팀을 막내 직원 부리듯 잡히는 단순 일을 던져주는 경우도 보았다. 2년 동안 그 중간 역할이 너무나 힘들었고, 고통스러웠는데 결론은 좋은 프로젝트/컨설팅 결과를 위해서는 갑과 을 모두의 교육과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그나마 조금 나은 것이 인건비가 워낙 비싸기도 하고, 법적 문제가 항상 귀결되다 보니 Project의 Scope이 명확한 편이고 기업들의 참여 또한 적극적인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들도 학생들의 수준이 높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다만 커뮤니티에서 함께 교육하고 결과도 함께 만들어간다는 느낌을 받는 적이 많았다. 그들이 부담하는 비용 또한 적지 않은 편이기도 하고,

 

오늘 지원자의 발표와 수업 방식에 대한 설명을 묻고 답하며, 앞으로는 이러한 실질적인 교육이 더욱더 살아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것이 지금 사회가 가지고 있는 대학의 불신을 없앨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보면, 연구 또한 실제로 활용이 가능한 연구가 많이 될 것이고 실제로 이를 활용하는 모습을 본다면 더욱더 만족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지방대의 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 대학 교육이 어떻게 변해갈지 몸담고 있는 나도 모르겠다.

 

하나 확실한 건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일 것이고 그것이 무엇 일지에 대한 고민을 앞으로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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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예전 박사과정 때 알게 된 지인과 우연히 연락이 닿았다. 잠시 그때로 돌아갔다. 박사과정 간 초기에는 적응하느라 정신을 못 차렸지만, 곧 졸업과 졸업 후 진로에 대한 걱정으로 아주 조그마한 정보도 얻을까 싶어 학회에서 유명한 교수의 꽁무니를 쫓아서 어떻게든 말 한번 붙여보려고 하거나, 다른 박사과정 생들과 동병상련의 마음을 공유하며 정보를 주고받기도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알게 되기도 하고 상황이 상황인지라 마치 전장의 동료처럼 친해지기 마련이다. 그분도 그렇게 알게 된 분 중에 한 분이었다.

 

반가운 소식 가운데 본인이 학자감인지 고민이 있었다며, 지금은 한국에서 업계에서 일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학자감...

 

이 단어는 사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상당히 많은 박사를 하고자 하는 분들이 가지는 고민 중에 하나이다. 물론 그 단어 자체에 박사과정이나 앞으로 연구자로서의 삶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 걱정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군대를 갔다 왔다면 조금 늦은 나이이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인생의 젊은 나날들을 도서관에 갇혀서 책에 묻혀서 살아야 하기에 그런 고민을 안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학자감인가?

 

사전에 따르면 학자는 "학문에 통달하거나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어릴 적부터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가 "공부 다했냐?" 하는 부모님의 끊임없는 질문에 어느 날 "예!"라고 하면 "어떻게 공부를 다하냐?"며 되물어 보는 아버지의 말씀에 왠지 억울하기도 하고, 왜 나는 열심히 했는데 안 알아주시는 거냐며 속상해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 트라우마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자라오면서 들었던 공자, 맹자의 사상가 들이나 칸트,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같은 위대한 철학자(학문가) 들 때문인지? 공부, 학문이라는 건 무엇인가 대단한 것인 것 같고, 무형의 그것이지만 왠지 나를 주눅 들게 만드는 게 사실이다. 한국사회가 공부로 학생을 줄 세우고 공부를 잘하면 뭔가 면제부를 받는 듯한 분위기 때문인지,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무엇인가 엄청난 '무형의 룰' 혹은 '무엇의 그것'임은 분명한 것 같다. 사실 그것 때문에 한국이 작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유학생을 미국으로 보내는 이유 이리라 생각한다. 

 

사람마다 저마다 다른 기준이 있고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이 있지만, 나의 경우를 이야기해보자면,

 

07701.tistory.com/category/한국교수%2C%20미국교수%20되기 에서도 이미 충분히 이야기를 했지만, 못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동네에서 소문날 만큼 공부를 잘하여 모든 학부모들의 입에 오를만한 학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학부를 마칠 때 즈음만 하더라도 더 이상 공부는 안 한다고 마음먹을 정도였으니, 대략 어떤 상황일지 독자들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학자의 길을 가야겠다'라고 마음먹고 지금 그 길을 가고 있는 건 공부와 학문이라기보다는 그 직업이 가지는 특성 때문이었는데, 어릴 적부터 내가 좋아하는 책 읽는 게 좋았고, 호기심이 있는 편이었던 것 같고, 어른이 되어서는 돈 적당히 벌면서 일 년에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게 어디 있어!!)라는 생각을 하다 교수라는 직업을 알게 된 덕분이다.

 

물론 박사과정을 하면서 '나는 학자 감인가?'에 대한 고민을 안 해본 건 아니다. 박사과정에 입학을 하면 큰 산을 넘은 것 같지만, 사실 그 뒤에 에베레스트 산을 마주하기 이전에 동네 뒷동산을 넘었을 뿐인데도, 어깨에 잔뜩 뽕이 들어가 미국 대학에 '나는 박사과정 유학생이야'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가득 찬 채 시작하기 때문인데. 곧 엄청난 대가들과 세계에서 난다 긴다 하는 공부 잘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은 온데간데없기 십상이다.

그 자괴감이 사실 꽤나 큰데, 그때마다 나는 나에게 이런 주문을 하였다. "뭐, 한국에서 직장 생활하는 친구들도 이 정도의 스트레스는 받잖아? 내가 돈은 못 벌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혹은 것을) 하고 있잖아?"라는 생각을 되뇌었다. 또 이런 말이 위안이 되는 게 박사과정을 하기 전에 다녔던 회사의 일들이 상당히 힘들고 누구를 위해서 일하는가 하는 질문을 수백 번도 더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평범한 능력에도 조금씩 조금씩 해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UNIST는 참 좋은 학교이다.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그렇다. 좋은 학생들과 소박하지만 예쁜 캠퍼스 열정 있는 젊은 교수들,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내가 그곳에 소속해 있다는 생각에 부담도 있었지만 뿌듯함으로 열심히 하기도 했었다. 다만, 연구에 대한 부담감이 큰 학교라 연구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고, 저널에서 리젝 레터를 받을 때마다 저 학자감인가? 하는 질문을 계속하게ㄹ 되고, 한국 특유의 스피디한 속도에 따라서 몰려오는 성과에 대한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지금 미국의 학교 역시 참 좋은 학교이다. 다만, UNIST와 성격이 다를 뿐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 사회를 그대로 담고 있는 대학이었다면, 이곳은 동네의 여유로움과 느린 속도처럼 완전히 정반대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년에 대한 부담(Tenure track 교수들은 Tenure를 받지 않으면 학교를 옮겨야 한다, 그 기준은 학교의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다르다)이 적고, 한국처럼 부수적인 일을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아직 미국을 잘 몰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도 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한국에 있을 때에 비해서 나의 삶의 속도 또한 아주 많이 느려졌다. 그러면서 가족들과의 시간, 그동안 할 줄 몰랐던 집안일이라던지, 한국에서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던 집안팎 관리 라던지 등등 새로운 것들을 매일매일 배우며 살고 있다.

 

물론 그러다 보니, 진짜 연구(혹은 공부)라고 생각하는 것 - 논문 쓰기, 학문분야 관련된 책 쓰기, 읽기 등등 -에 대한 속도는 현저하게 떨어지고 꽤 멀리 떠나온 것 같다. 그것이 초기 미국에 전혀 다른 분위기 도시와 학교에 왔을 때 꽤나 상실감을 주기도 했고, 지금도 완벽히 떨치지는 못했다. 하지만, 연구(혹은 공부)라는 것이 꼭 전공 분야에 국한될 필요는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새가 어떻게 집을 짓고, 알을 까고, 새끼가 커가고 둥지를 떠나는지, 집에 전기가 나갔을 때는 어디를 체크해봐야 하고, 언제 씨앗을 뿌리고, 식물이 잘 자라는지, 등등 새로운 것에 대한 공부(혹은 연구)를 계속해나가고 있는 내 자신을 본다. 물론, 그리고 직업이 교수인지라 전공 분야에 대한 공부는 계속하지만 그 형태나 동기부여가 해야 해서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연스레 하고 싶어서 한다는 느낌과 새롭게 무엇인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되었고, 그 연장 선상에서 '조강의 4 cents'라는 팟캐스트도 진행을 하면서 매번 새로운 사람들과 소식을 가지고 고민하고 공부를 하고 연구 아이디어를 얻고,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생기면 연구를 천천히 진행해가고 있다.

 

나 역시 아직 진행하는 과정이고 한 획을 그은 대단한 학자가 아니라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템포로 훨씬 더 길게 보고 돌을 하나하나 오랜 시간 올려 돌탑을 쌓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나도 좀 알아주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오늘도 이것저것 지식 방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상이 달라서 그렇지 누구나 학자감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게임이 궁금하고, 어떤 사람은 해외에서의 삶이 궁금하고, 어떤 사람은 연애를 잘 하는 방법이 궁금하고... 자신이 무엇인가에 궁금하거나 호기심이 있다면 그 자질은 다 있다고 생각한다. 학자감 이라는 부담스러운 단어가 아니라 '나는 이것이 궁금하고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가능성은 열려있고 또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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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달리 표현하기 보다, 백년에 한번 나타날까 말까하는 일들을 우리는 지금 경험을 하고 있고, 전 세계, 국가, 조직, 개인들이 아마도 이만큼이나마 Unprecedented (전례없는) 라는 단어를 잊지 못할 정도로 자주 쓰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앞으로도 얼마나 이 사태가 장기화가 되고 우리 인류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갈 것인지 많은 우려와 함께 희망찬 기대를 갖는 것도 사실이다.

 

모든 조직이 다 그렇겠지만, 상당한 충격을 받은 곳 중에 하나가 바로 대학이다. 미국의 경우 학기제(Semester)를 시행하는 경우는 짧은 겨울방학으로 1월 마지막주부터 수업이 진행이 되어 중간 봄방학이 될 때 즈음 사태가 심각해져, 처음에는 봄방학을 마치고 2주 정도 여유를 두고 개강을 하자고 (그전까지는 온라인 수업) 시작을 했으나, 알다시피 2020년 봄학기 후반기는 전부 온라인 수업으로 이루어진 상태이다. 한국의 경우 3월 개강이 한참 피크를 칠 때라 개강을 늦추다 온라인으로 변화하여 지금 2020년 1학기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급작스런 온라인으로 변화를 시도하다보니, 준비가 안되었다던지, 시스템이 다운된다던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학생들이 환불을 요청하고, 불만을 나타내는 기사를 본 적이 있고, 또 이렇게 '전례없는' 사태를 이해를 해달라고 하는 대학의 입장, 학생의 입장이 모두 이해가 되는 상황이다. 

 

어려운 과정을 겪으면서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나에게는 또다른 아주 '전례없는' 경험이었는데, 학교마다 접근하는 방법이 다르겠지만, 이 과정을 겪으면서 한결 더 든든한 마음을 가지게 된 Salisbury University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처음 중국과 한국에서 사례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전체 미국이 그러했듯이 강건너 불구경 같은 느낌이었다. 간혹 세계 뉴스에 관심이 있는 동료교수들이 방문 앞을 지나갈 때 "너의 식구는 잘지내냐?" "별일없지?" 같은 안부를 묻곤 했고, 나역시 약간의 긴장감은 있었으나 사실 별 다른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도 사실이었다. 봄 방학을 맞이 할때 얼마전부터 미국의 사례가 증가속도가 빨라졌고, 봄 방학에 대한 논의가 학교내부 그리고 University System of Maryland 전체적으로 협의가 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일단 봄방학이후 2주 동안 캠퍼스를 닫기로 하고 학생들에게 관련하여 짐을 미리 준비하라는 공지가 먼저 나갔었고, 이 과정에서 앞으로의 상황에 따라 변화가 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 이후 2주에 대한 온라인 강의 준비가 봄방학 기간 동안 진행이 되었고, 곧 나머지 학기가 전면적으로 온라인화 되면서 가속화 되었다.

 

학교에서는 ID&D (Instructional Design and Delivery)라고 한국에서는 교수학습지원센터 (Center for Teaching and Learning)로 알려진 조직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여기서 수업의 온라인화를 지원하고 있었고, 지금 내가 있는 Perdue School은 온라인으로 MBA가 진행이 기존에 되어 왔던터라 또 이것을 지원하는 스탭이 따로 교수들의 온라인 화를 지원하였다. 

 

그때부터 매주 Zoom을 통하여 전체 교수 회의를 진행하였고, 이런 전례없는 수업의 온라인화에 그럭저럭 잘 따라온 교수들도 많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교수를 위해서 Best Practice나 Lessons learned를 공유하는 장이 펼쳐졌고, 놀랍게도 매주 거의 80% 이상의 교수들이 미팅에 참여하여 논의에 참여를 하였다. 다양한 주제가 나눠졌지만 대부분의 주제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학습의 경험을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학교 또한 이러한 것을 지원하기 위해서 노트북이 없는 학생들에게 크롬북을 지원해 주기도 하고, 학교 주차장의 와이파이를 설치하여 인터넷 접속이 잘 안되는 학생들이 차안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었으며, 학생들에게 Pass / Non pass의 성적을 선택할 수 있도록 열어주기도 하고, 내부적으로 이 상황을 되도록 함께 이겨나갈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인상적이 었다. 특히 오늘 같은 경우는 한 교수님께서는 아마 학생들의 가족이 코로나로 고통을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실제로 내 수업의 한 학생의 경우 할머님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심정적으로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교수가 될 수도 있다는 말에서 많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교수들도 온라인화 하면서 힘든 상황이고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근무시간이 따로 없는 상황이 되는 경우도 많았고, 가족을 지켜야하거나 나의 경우처럼 신분이 불안함 (영주권 등의 절차가 미뤄짐)이 있는 경우도 사실이었다. 거기다가 학생들에게는 또 학생들 상황을 이해해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다. 그래서 매주 만나는 전체 교수회의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듣고 공유하면서 서로가 또 의지하고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도왔던 것 같다. 특히, 산전수전을 다겪어본 노교수님들이 솔선수범해서 노력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가 좋았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움을 청하라고 주니어 교수들에게 이야기를 나눠주는 모습도 보기가 좋았다. 

 

나역시 Associate Chair로써 학생들의 각종 드라마틱한 상황에 가끔은 짜증이 나고, 힘들기도 했는데 그런 모습이 나도 모르게 표출할 때 마다 Chair 교수님을 비롯한 다른 노교수님들이 이메일을 보낸다던지 전화를 한다던지 해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하는 모습에서 누군가가 뒤에서 서포트를 든든히 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마지막 전체 교수 회의를 했는데, 지금까지 버텨온 상황과 아직까지 잘 보이지 않는 앞날, 그렇지만 서로 의지하면서 도와주려고 하는 모습 그리고 학생들이 가장 즐거워해야할 시기에 오히려 큰 고통을 받는 모습이 짠해서 그랬던지 감정이 북받쳐 올라 Dean이 결국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해마다 평가를 받아보면, 평가는 참으로 냉정하다 싶을 때도 있지만, 항상 발전을 향하는 커멘트임에는 분명하고,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나이와 지위를 막론하고 서로 도와주고 의지하고 공유하는 모습에서 오늘 따라 큰 소속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 짧은 시간에 예상치 못한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면서 정말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동지애를 느낀다고나 할까. 학교의 명성이나 크기나 다른 학교에 비해 크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는 내부 문화가 사람을 한걸음 더 나아가게 만들고, 또 그것이 어려운 시기에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 같다. 마치 스타트업들이 매일 겪는 일처럼 말이다. 

 

오늘은 학교와 우리 스쿨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감사와 응원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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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 (COVID19) 바이러스로 온 지구가 고통 스러워 하고 있는 요즘인 것 같다. 지구상에서 살고 있는 인간 중에 한명으로 바이러스와 함께 공존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줌과 동시에 모든 시설들이 도시화되고 사람들이 집적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들게 만드는 시점인 것 같다. 모쪼록 하루 빨리 해결의 실마리가 잡히길 바란다.

 

한국은 중국이외에 가장 많은 수의 확진자를 보이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한국시간 3월 4일 최신 자료에 따르면 총 136,707명을 검사하여 5,328 명이 확진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급격히 늘어나는 환자와 코로나 19의 특징인 빠른 전파로 인해서 엄청난 사회 혼란을 야기 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중에 학교 또한 빼놓을 수 없는데, 어린이집, 유치원을 포함한 초중고등학교도 물론이지만, 대학 사회도 아주 큰 어려움을 맞닥드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일단 1~2주씩 개강을 미루었는데, 사태가 점차 장기화될 양상을 보임에 따라서 온라인 강의로 대체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기저기 기사에서 교수들이 예정에 없던 온라인 강의를 준비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여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싶다. 

 

UNIST에 처음 들어갔을때 Flipped Leanring 이라는 개념을 교수지원센터에서 도입하여 적극적으로 LMS(Learning Management System)을 활용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았고, 이를 위해서 미리 강의는 온라인화 한다던지 하여 학생들은 미리 수업에 대한 자료를 학습하고, 수업에서는 토론 중심의 학습을 하겠다는 전반적인 철학 자체가 재미있게 다가왔었다. 누군가는 대학의 학습환경이 세상이 변하는 만큼 따라가주지 못한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사실 이러한 개념적인 발전은 있어왔지만, 실질적으로 이를 활용하는 부분에서는 많은 어려움을 느꼈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현장의 학습 여건 및 방법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사실 각 교수님별로 접근하는 방법이 다르기도 하고 이를 개개인화된 형태로 지원하기에는 비효율성이 존재하기에 표준화에 어려움이 따른다. 

 

나 역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았지만, 일단 영상화 하는 것 부터 시작해서, 수업할때 어려가지 기술들을 활용하는 부분 조차도 활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이는 기술적으로 접근이 어려움도 존재하겠지만, 기술적 완성도가 떨어지고 (약간의 세팅만 바뀌어도 잘 안되는 현상) 그리고 학습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면도 있다. 여기에 더불어 자신만의 학습노트나 수업을 공개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큰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한국의 대학교에서 이러한 노력은 하고 있지만, 이게 생각보다 활발히 사용되지 않고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미국의 경우는 일찍히 이러한 방법을 도입을 하고 있는데, 미국에 대단히 미래지향적인 나라라서 그러기 보다는 학생들이 한국의 대학생과는 달리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기도 하고, 병원 등의 약속을 잡기 어려운 점, 많은 부분 일과 학습을 병행하고, 장애가 있는 학생들에게 대체방안을 마련해주고자 하는 등의 환경적인 영향이 컸으리라 생각한다. 거기에 University of Phoenix 처럼 아예 online 중심의 학위를 제공하는 학교가 생기고 이후 MIT나 Stanford에서 수업을 온라인화 하고, Coursera, edX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이 생기면서 온라인 중심의 속도를 가속화 시키고 있는 추세이다. 최근에는 학부, 석사 뿐만이 아니라 박사과정까지 Online으로 진행하고 있는 학교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 점차 이 추세는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반대학교도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려고 하는데, 새로운 교수를 임용을 하고자 할때 Online 수업이나, Hybrid 수업에 대한 경험은 빠지지 않고 묻는 단골 질문 중에 하나이다. 개인적으로는 제대로만 할 수 있다면 Flipped Learning이나 Hybrid 형의 수업 - 즉 온라인으로 미리 필요한 컨텐츠에 대한 공부를 하고 수업에는 모르는 부분이나 토론 중심의 수업이 되게 하는 것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는 미리 수업자료를 올려 놓아도, 읽는 학생이 없고 (겨우 프린트 정도만 해옴), 관련된 자료를 올려도 활용하지 않은 학생이 대부분이라 이를 또 강제하기도 그렇고 해서 나름 방안을 찾고 있는 과정이다.

 

전반적으로 모바일 세대로 전환이 되었고, 오프라인의 활동보다는 온라인의 활동이 더 익숙한 밀레니얼들에게 어떠한 새로운 학습의 방법을 제공할지는 앞으로 고민해봐야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대학의 온라인화 추세에 어느정도는 활용함과 동시에 오프라인에서 어떠한 학습의 경험을 줄 수 있는지 또한 큰 숙제라고 보인다. 그래서 나 스스로도 관련된 Podcast도 해보는 등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공부를 확장시키겨고 하는 중이다.

 

미국에 비해서 한국의 경우 이러한 변화에 다소 늦게 발맞추고 있다고 느껴졌었는데, 이번 코로나 19 를 계기로 이러한 변화가 앞당겨 질 것이라 생각이 되는데, 어떤 효율적인 방법들이 교육환경에 소개가 될 지 기대가 되기도 우려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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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제목을 보고, 톰행크스와 맥라이언의 영화가 떠올랐다면 아마 당신의 연식을 인증하는 셈인데, 혹시 처음 본다고 생각이 들었다면 톰행크스와 맥라이언 (한때 인기가 엄청 많았는데 어떻게 지내시는지 모르겠다)의 풋풋한 로맨틱 코미디를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예전에는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정성스레 고르고, 거기에 혹시나 틀릴새라 한자한자 정성들여 비뚤어지지 않게 글을 써가며, 다 쓴 편지지를 누군가가 가르쳐준 예쁘게 편지지를 접는 방법을 따라해가며 편지봉투가 구겨질까 정성스레 풀칠하여 봉투를 봉하고, 거기에 또 다시 정성스레 주소를 쓰고, 우표를 붙이고 가까운 우체통으로 가 이 편지가 누군가에게 잘 전달되길 바라는 그 경험은 이제는 하기 어려운 것 같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카카오톡을 비롯한 각종 메신저에 대부분의 공식적인 업무도 이메일로 주고 받는 시대에 톰행크스와 맥라이언이 주연한 You've got mail 영화 (1998년작)는 당시 막 전자우편이 활성화 되는 시기에 앞으로 닥치게 될 새로운 형태의 메세징 수단을 암시하는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돌이켜보면 최근에 한국에서 새로온 편지가 없지 뚫어져라 우체통을 한국에서 보지는 않았던 것 같고, 그나마 기억나는 순간이 박사과정 합격자 발표 통지가 날 때 즈음이었나 보다. 대부분 쌓여있는 각종 고지서나 광고 전단지 속에 하얀색 봉투에 내가 지원했던 학교이름이 써있으면 그 편지를 받아들고는 가슴이 두근두근하며 열었던 기억이 있다. 

 

미국에 오면서, 한편으로는 참 구식이다 라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우편 문화이다. 아직 대부분의 공적인 문서를 우편으로 보내고 있는데, 그래서 한국에서는 신경도 안썼던 우체통이 미국에서는 2020년 아직까지 아주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된다. 미국에 와서, 한쪽에서는 세계 최고수준의 각종 테크 기업들 아마존, Apple, Microsoft가 시가총액 1 trillion (1200조)을 넘어가고 있는데 반해 다른 한쪽에서는 아직 우편으로 공식적인 문서를 주고 받는다니 참 아이러니 하게 느껴졌다. 

 

오늘 이번주 수업을 끝내고, 최근 재미있게 보고 있는 (그리고 주인공에 정말 몰입되어 있는) Better Call Saul 이라는 Breaking Bad의 spinoff 쇼를 Netflix를 통해서 보고 있는데, 주인공이 어렵게 변호사 시험을 결과를 우편으로 받아들고 이거 내가 못보겠다며, 동료에게 대신 뜯어달라고 하는 장면을 보면서, 내가 박사과정 지원을 할 때, 매일 같이 우체통을 뒤지며 가슴졸이면서 뜯어봤던 그 때가 떠올랐다. 그러면서, 그 때의 그 설레임과 감동이 다시금 다가 왔다. 

 

이곳에서는 나의 인사에 관련된 서류들 (평가, 승진, 등등)이 캠퍼스 메일이긴 하지만, 가끔 내 우편함에 와 있기도 한다. 연애편지 처럼 손으로 꾹꾹 눌러쓴 건 아니지만, 내가 어떻게 평가를 받는지를 아주 상세하게 써서 정성스럽게 출력을 하고 평가위원들이 모두 자필 사인을 해서 나에게 보내온 것이다. 물론 그 내용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지만, 그 편지 봉투를 뜯으며 어떠한 내용이 있는지 손으로 정성스럽게 편지봉투를 찢으며 확인하기 까지 걸리는 마치 시간이 멈춘것 같은 그 순간은 이제 한국에서는 느끼기 어렵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모든게 정신없이 빠르게 변화하고 심지어 이제는 편리함에 취해 지구 반대편에서 보낸 이메일 하나가 거의 실시간으로 내 아이폰 알림으로 가볍게 진동을 주며, 또 화면을 슬쩍 쳐다보기만 해도 간단한 내용을 바로 확인해 버리는 그런 세상에서 아직 이러한 아날로그적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오늘따라 감사하게 느껴졌다.

 

한때 You've got mail 영화를 보면서 새로운 이메일이 왔을때 지금으로 보면 구형 핸드폰 보다 느린 성능의 커다란 데스크탑에 깔린 윈도우 한구석에서 "You've got mail"이라고 어설픈 소리를 질러대는 스피커에 열광한 적이 있는데, 이제는 오히려 반대로 누군가의 손으로 정성스럽게 쓰여진 내 주소와 내 이름을 보고 여기에는 어떤 내용이 있는지 궁금해 하며 조심스레 편지봉투를 열어보는 그것이 그립다니. 그리고 한편으로는 또 지금 세대들은 이제 영원히 그런 경험이 없겠구나 라는 생각에 서글픔 마저 느껴지는 것 같다. 

 

(https://www.amazon.com/Youve-Got-Mail-Tom-Hanks/dp/6305368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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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Academy awards의 4관왕을 휩쓸었다. 페북으로 그 소식을 전해듣고 참 한국인으로써 미국에 살며 참으로 뿌듯한 마음이 퍽차 올랐던 것 같다. 거기다가 국제영화상, 감독상, 각본상, 그리고 작품상 4관왕에 작품상까지 휩쓸다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국제적으로 highlight를 받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으면 학교에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 한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Youtube에서 2억뷰를 넘어가며 온 세계가 그 춤을 따라하는 비디오가 넘쳐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때는 한국에 있었다.). 그러한 국뽕이 빠져들면서도 항상 조심스러운건 내가 한국인이기에 너무 또 한국 이야기에 빠지거나 하면 학생들에게 안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아무래도 내가 가르치고 있는 Salisbury University는 대도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특히 Maryland에서도 동쪽 외진곳 Eastern Shore에 위치하기에 내가 상대하는 학생들이 그렇게 국제화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항상 발목을 잡는다. 다만 최근 한국 회사들 Samsung, LG, Hyundai, Kia 의 선전으로 많은 학생들이 이 브랜드를 알긴 한데 사실 이 회사들이 한국에 본사를 두고 있다는 걸 아는 친구도 그리 많지 않다. (뭐랄까 관심의 차이랄까)

 

대도시 가면 한국 음식(비빔밥, 불고기) 정도는 그래도 아는 친구들도 많이 있고, 요즘 한인식당에 가면 한국식 BBQ를 즐기려는 외국 아이들이 많은 걸보면 BTS, 한국 드라마 등의 역할이 꽤나 컸던것 같은데 이곳은 그 손이 닿지 않은 청정구역(?)에다가 한국 식당도 그나마 하나 있던게 없어져서 한국분이 하시는 스시집에 가서 비빔밥을 시켜 먹는 동네이니 어느정도인지 알만 하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가끔씩 "내가 말이야 싸이 닮았다는 이야길 들었어"하면 종종 빵 터지고 하는걸 보면 이곳 미국에서도 기업이나 복잡한 국제 정세 보다도 가벼운 연예 뉴스에 관심을 가지는건 마찬가지 인 것 같다. 다만, 종종 북한 이야기가 뉴스에서 나오기 때문에 North Korea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부분이 있기에 Korea 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그리 낯선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어제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식에 커뮤니티에서 다들 이제 "두유노 싸이?"에서 "두유노 봉준호?"로 바꾸어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많이 하길래 오늘 아침 수업에 들어가서 학생들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두유노 봉준호?"하니 눈이 @.@ 이렇게 되면서 무슨소릴 하는거냐는 표정을 짓길래, 그리고 한참 국뽕이 빠져 '오늘은 기여코 한국이야기를 한번하고 가리라'는 생각에 빠져 다시 한번 물어본다. "두유노 패러사이트?"하니 한 친구가 그나마 어제 시상식을 보았는지 끄덕거린다. ㅎ

 

외국에 나오면 애국자가 된다고 하고, 한국이 국위선양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곤 하는데, 어제가 그런날이 아닐까. 다만, 아직은 그런 외국문화를 많이 접하지 못한 시골사람들이 사는 시골에서 오늘도 열심히 가르쳐야 겠다는 동기부여 가득한 오늘인 것 같다. 

 

축하합니다. 봉준호 감독!

"두유노 봉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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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열심히 밀린 학교일을 하고 있는데 "띵!"하고 메일이 날라온다. 애플 와치의 작은 화면에서 내용은 잘 볼 수는 없었지만, 보내는 이 이름에 일본어가 섞여 있기에 혼자서 "스팸인가?"하며 아이폰 화면을 보니 메일의 첫 두줄이 나와 있는데 반가운 한국말로 시작하는 글이었다. 일본에 사시는 한 교수님께서 인터넷에 올린 나의 글을 보고 궁금한 것이 있으셔서 물어보는 메일이었다.

 

물론 인터넷에 나의 인생에 대한 글을 올리면서 한켠으로는 창피하기도 하고, 마치 무엇인가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기도 하여 심숭생숭 할 때가 있는데, 그래도 그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정보가 조금이나마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서 일본에 계시는 한 한국교수님의 메일이 반가우면서도 의외로 학생의 메일이 아니라 교수님의 메일이라 신기하기도 했다.

 

내가 그 분의 속속들이 인생은 모르지만, 아마도 나처럼 한국에서 태어나 우여곡절 끝에 낯설은 일본에 가셨을 것이고, 거기서 또 누구 못지 않게 힘든 과정을 이겨내면서 지금의 위치에 계신 것이리라. 아마 지금도 그러겠지만, 한 때 각종 커뮤니티에서 한국의 답답한 현실을 보고 "이민가야겠다"는 글이 많이 올라왔는데, 이러한 글에 어김없이 달리는 답변 중에 하나는 "이민가서 성공할 정도의 노력이면 한국에서 하는게 훨씬 유리하다"는 글이었다. 일본에 계신 그 교수님, 나, 그리고 수많은 외국에 계시는 한국 분들이 같은 어려움을 겪고 그 자리에 계시지 않을까 싶다.

 

그 교수님의 이런저런 질문 와중에 하나 느끼게 된 건, "아 이 분 나와 같은 감정선을 공유하고 계시구나" 였다.

 

이제 본격적인 이 글의 주제가 나온다. 바로 '외로움' 이다. 미국교수, 제일 힘이 드는 것은 바로 '외로움'이다. 아마 나의 박사과정과 한국교수, 미국교수 되는 과정의 지나난 글을 꾹 참고 읽어주신 분이면 이런 질문을 하실텐데 "가족 전체가 함께 미국에서 이민가서 사시는데 외로움이 가장 힘든건가요?" 라고..

 

외로움은 간단하게는 주변에 사람이 없거나 연인과의 관계가 끝나거나 해서 홀로 남겨진 기분으로 많이 들 인식하지만, 익숙한 모든 것에서 떨어지게 되면 모든 것에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 2년 반이 지난 미국 이민자의 삶을 살지만, 그 전에 4년 박사과정 그리고 그 이전에 10개월 인도 생활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나의 인생은 한국에서 그리지 않았던가.

 

나의 첫 마디 언어도 "엄마"였을 것이고, 첫 걸음도 한국이었고, 첫 학교생활, 첫 싸움, 첫 만남, 첫 헤어짐,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먹고싶은 것, 먹기싫은 것, 가고싶은 곳, 가기싫은 곳.. 등 이 모든 것들이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던가. 그 익숙한 모든 것에서 떨어짐.. 그것이 바로 외로움 그것이 제일 힘든 것이 아닌가.

 

매일 눈을 뜨면 변변치 않은 반찬이나 빵으로 아침을 떼운다. 아침 어머니가 끓여주시는 구수한 된장국이나 귀차니즘이 발동할때면 세수도 안한채 떡진 머리를 감추고자 모자를 풀 눌러쓰고 바로 집앞에 김밥천국이나, 편의점을 가거나, 아니면 해장국 집 생각이 나는 외로움,

 

운전을 하며 학교를 갈때 쭉 뻗은 길 양옆으로 높게 뻗은 나무들이 늘어선 사이 길을 지나며 가끔씩 스쳐 지나가는 영어 표지판을 보면서, 빵빵대기도 하고, 길이 막히기도 하지만, 굳이 열심히 읽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내 눈에 들어오는 교통표지판과 그 곳에 mile 대신 쓰여진 km에 대한 외로움,

 

학교에 도착해 아메리카노 텀블러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가며 가끔 만나는 동료교수나 스탭에게 "Hi"나 "How are you?" 정도의 안부를 전하면서 , 한국에서 아침에 출근해 동료 교수님과 함께 맥심 믹스커피를 무심히 입으로 물어 뜯고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부으며 나머지 믹스커피 부분으로 휙휙 저으며 "이거 이렇게 하면 환경호르몬 먹는걸텐데 껄껄.."하며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한 수다를 떨던 것에 대한 외로움,

 

수업준비 하면서, news.google.com에 들어가서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영어 신문 비즈니스 섹션에서 오늘은 어떠한 기사로 수업을 시작해볼까 하며 모르는 단어를 찾는 나의 모습에, 한국에서 한국 신문을 재빠르게 휙휙 넘기며 '아! 이 기사가 좋겠군'하며 능숙하게 찾던 내 모습에 대한 외로움

 

수업준비가 끝나고 잠시 틈을 이용해 Facebook에 들어가니, 시차때문에 저녁시간을 맞이한 한국에서 친구들이 올리는 다양한 저녁식사 메뉴 자랑글에 아침에 먹은 변변치 않은 반찬의 아침이나 빵 한조각으로 꼬르륵 거리는 배를 부여잡으며 느끼는 외로움,

 

포스팅을 스크롤 하다보니, 어제 모임을 했다면서 어느 고기집에서 삼겹살을 구으며 소주 한 잔을 기울이는 사진 한 장에,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자는 듯 고기냄새와 담배냄새가 배인 그 고깃집과 지독한 직장생활에 대한 푸념을 늘어 놓는 것에 대한 외로움.

 

남겨 두고 온 가족이 주말 간 풍경 좋은 곳에 식사를 하고 커피한잔을 한다며 올려 놓은 사진 아래 쓰여진 왠지 모를 미안함이 담긴 글을 보면서 나때문에 오히려 미안해 하는 가족을 또 미안해 하는 것에 대한 외로움

 

수업시간 나와는 다른 문화를 살아간 젊은 미국 친구들의 낯선 이름들과 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의 대학생활 이야기를 해줘도 선배가 없다며 나의 모든 것이 궁금한 것처럼 호기심 어린 얼굴로 쳐다 보던 나의 스무살 시절과 같은 학생들에 대한 외로움

 

수업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내가 전화번호가 있기나 한 건가 라는 생각이 드는 전화기를 바라볼때면, 한 시간이 멀다하고 짜증내면서 받았던 스팸전화나, 가끔 오는 친구들의 안부목소리, 그리고 카톡메세지들에 대한 외로움

 

집으로 돌아와 텅빈 냉장고를 열어보며, '아 이제 한국장이 떨어졌군' 다음주 즈음에는 3시간을 운전해서 Hmart에서 장을 봐야지 하는 생각을 떠올리며, 집앞에 경쟁하듯 마주보고 있었던 롯데마트와 홈플러스에서 팔고 있던 한국 음식에 대한 외로움

 

등등,

 

그 일본에 계신 교수님께서도 오랜시간 일본에서 생활을 하셨지만 그 짧은 글에서도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그대로 들어났고, 나 역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이곳의 장점도 있지만 한국에 대한 그리움과 그것으로 기인한 외로움이 제일 힘든점 인 것 같다. 마치 그 복잡한 사회에서 정말 열심히 나의 톱니바퀴를 굴리면서 살다가, 내가 없는데도 그렇게 잘 굴러가는 사회에 대한 외로움이 제일 큰 것이 아닐까.

 

어느새 그 사회에서 사라져버린 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오늘은 오랜만에 한동안 죽어 있던 동기들의 카톡방에 안부인사 하나 남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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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하다보니, 어떠한 검색어로 블로그에 접근하는지를 알 수가 있는데 좀 재미있었던 검색어가 "교수는 방학때 뭐하나요?" 였다. 한국과 미국은 약간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한 학기가 대부분 16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총 32주가 수업이 있고, 나머지 20주가 방학이라고 보면된다. 

 

나의 친구는 물론이고 모든 직장인 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방!학인데, 사실 한국교수, 미국교수 되기 편에서 이야기를 했지만, 이 방학은 내가 교수를 하게된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20주면 1달을 4주로 고려할 때 5개월이 되는데, 과연 교수들은 이 기간동안 무엇을 할까?

 

물론 교수는 연구를 하는 직업이다. 그것이 논문으로 결과가 나오는 직접적인 연구 이외에도 보다 나은 티칭을 하기 위해 고민을 하거나 새로운 교수법을 시도하고, 새로운 수업 컨텐츠를 만드는 것 역시 일종의 연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이 직업의 가장 큰 단점은 바로 '머리가 쉬지 않는다' 이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신문을 보거나 뉴스를 보더라도 자신의 연구와 빗대어 생각의 줄기를 뻗어 나가게 하기 때문에 정말 아무 생각없이 있는 시간이 많지 않는다. 하물며 학교나 사무실에서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막혀 있는 연구에 대한 생각을 하거나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를 생각하거나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가끔은 그래서 퇴근을 하면 on/off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학생들의 경우 보통 4~5과목을 전적으로 수업을 듣기 때문에 항상 벅차다고 생각을 하고, 그런 반면에 한 학기에 1~4과목 (연구중심대학의 경우는 학기에 1과목을 가르치기도 하고, 교육중심의 학교 같은 경우에는 4과목 혹은 그 이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때론 '좋겠다' 혹은 '편하겠다'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이 가르친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한 주에 두세과목 가르치는 것도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든데 하루종일 교육하시는 선생님들은 어떨지 감히 상상이 안간다. 이렇게 학기 중에 강의가 일어나면 강의 준비와 채점, 새로운 자료 수집 등으로 사실 정신이 없다 (물론 나 역시 그런 교수님을 만난적이 있지만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강의 자료를 그냥 읽는 교수님도 있다). 그렇기에 학기 중에는 사실 다른 것을 할 심적인 여유가 없다. 특히, 연구라는 것이 내 일정 중간에 30분이 있다고 뭔가 반짝 30분을 하면 결과가 또 그만큼 나오고 하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방학이 되면 대부분의 교수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연구활동에 많은 시간을 쓰게 된다. 미국에서는 교육/연구/서비스 외에 다른 활동을 강요받지는 아니한데, 한국의 경우에는 외부에서 연구과제 수주 활동도 하나의 큰 활동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방학 때 주로 연구활동과 연구과제 수주 및 수행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 연구과제가 중요한 것이 교수가 연구과제를 수주하면 그 연구비의 일부를 간접비 형태로 학교에 내게 되는데 학교입장에서도 재정이 상당한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를 장려하는 경우가 많고 평가에 직접적으로 반영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생각보다 할 것들이 많이 있다. 교수 본인에게도 이러한 활동은 자신의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하거나 과외 소득이 될 수 있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이다. (사실 학교에서도 이 점을 고려해서인지 교수 연봉 자체는 그리 높지 않은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도 물론 이를 장려하는데 그래도 기본적인 연구는 할 수 있을 정도는 지원하는데 한국은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아서 이 연구과제를 많이 하시게 된다. 그래서 방학이 되도 사실은 꽤나 분주하다.

 

미국은 조금 특이한 것이 대부분 학교들이 여름을 제외하고 9개월 혹은 10개월 계약을 한다. 즉 나머지 2~3개월은 자신이 원하는 걸 할 수가 있다. 그래서 여름이 되면 학교가 텅텅비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별도의 연구과제를 따오면 자신에게 좋긴 하지만,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도 않고 대부분의 교수들이 하려는 생각도 안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지금 현재 다니는 학교만의 분위기 일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이들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여행을 다니거나 하는 경우가 많이 있고, 계절학기를 강의하여 연봉 외에 부수입을 꾀하는 교수들도 있다. 초기  Tenure-track의 교수들의 경우는 사실 방학때 연구를 집중적으로 수행해야 Tenure를 받을 수 있기에 대부분 자신의 연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학기시작이 다가오면 수업준비를 하게 된다. 계약에 따라서 이 방학동안 연구비를 지원받고 연구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학교내부의 펀드를 이용하여)

 

좀 일반적인 이야기를 나눴는데, 나의 경우는 대부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특히 Ocean city라는 Maryland의 '해운대'정도 되는 곳이라 아이들과 바다에 가서 시간을 많이 보냈고, 리디북스로 엄청 쌓아두었던 책을 읽는다던지, Netflix를 본다던지, 요리를 배운다던지, 주변 산책을 하던지, 운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물론 연구와 티칭 준비도 하기도 하지만.

 

지난 겨울방학에는 블로그를 다시 살리기 시작하여 책을 쓰고 있다. 무엇인가 좀더 생산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 최근에 고민은 여기저기서 교육(특히 대학 교육)이 다른 세상 변화에 비해서 너무 느리다는 비평을 많이 받고 있어서, 어떻게 하면 보다 나은 대학교육을 할 수 있을지 이런저런 고민과 자료를 수집하는데 시간을 보냈고, 앞으로도 아마 계속 이 분야에 대해 공부를 할 예정이다.

 

올해 이와 더불어 특히, 여름방학때 교과서를 한번 써보려고 한다. 잘 지켜질지는 모르겠지만,

 

이렇다보니 아주 많은 side projects 들이 생기는 것 같다. 정원가꾸기, 작은가족농장가꾸기, 초보 집수리공, 팟캐스트 진행자, 초보작가지망생, 백종원요리따라하기, Netflix & Ridibooks binge watcher, ... 또 앞으로 어떠한 일이 늘어날지,

 

올 여름 방학이 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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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부분은 학교마다의 문화적/절차적 차이가 있어서 일반화하기는 어렵고, 따라서 한국의 학교와 미국의 학교를 직접적으로 비교하고 차이를 논하기는 문제가 있으나, 겪은 바에 따라 이야기를 해보겠다.

 

한국에 있을 때는 초기 3년인가 (벌써 가물가물하다)는 평가가 면제가 되어 결국 나는 마지막 1년에 대한 평가를 받고 두번째 평가를 받기 위한 실적요청을 할 때 즈음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실질적인 한번의 평가결과를 받은 적이 있는데, 사실 어떠한 기준으로 어떻게 순위를 매기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별로 좋지 않은 결과를 받은 건 사실이다. 아마도, 평가 대상자가 실적을 내면 그걸 본부 인사에서 평가를 해서 등급을 매겨 결과를 알려주는 방식이고, 특별히 어떤면이 어떻게 해서 이 결과를 받아들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던 걸로 기억을 한다. 아무래도 공대 중심의 학교이다 보니 공대 교수님들과 사회과학을 하는 우리는 비교대상이 좀 아니긴 한데, 느낌상 대략 출판된 논문과 (학회 참석 등은 아예 안들어가는 듯), 연구과제 수주금액이 평가에 대부분을 차지하고, 강의 평가는 어떠한 식으로 반영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연구중심의 대학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박사과정 전에 기계연구원에 다닐때도 해당년도 동안 한 일들을 정리해서 인사과로 제출을 하면 해당 고과(ABCD)로 구분하여 결과를 받았던 것 같다.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왜 그 평가를 받았는지에 대한 설명은 기억나지 않는다. 한국의 두 기관에서는 이러한 평가를 바탕으로 (공공기관) 인센티브의 차등지급 목적이 대부분이지 실제 어떠한 것을 잘 수행했고, 어떠한 것이 부족한 지에 대해 알 수는 없고 평가를 받아들면 그걸로 끝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한국에서 평가를 설명하는 것은 미국에 와서 상당히 다른 느낌을 받았기 때문인데, SU는 매년 겨울에 학과장(Chair) 평가를 받고, 매년 가을에 학장(Dean) 평가를 받는다. 즉 피평가자 입장에서는 6개월 사이클로 평가를 받는데 생각보다 자주 받는 느낌이 든다. 학과장 평가는 지난 일년동안 어땠는지를 전반적으로 평가하고, 학장 평가는 Progress toward tenure evaluation이라고 해서 tenure-track에 있는 교수들이 tenure를 받기 위해 잘하고 있는지를 전반적으로 평가한다. (Tenure이후에는 학장 평가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학과장 평가만 있는 듯 하다).

 

Faculty는 공통적으로 Teaching, Research, and Service의 3가지 큰 틀에서 평가를 받게 되는데, 어제 진행항 평가는 내가 제출한 그동안의 정량적/정성적 성과표를 바탕으로 chair가 평가를 하여 함께 리뷰를 하는 절차인것이다. 많은 부분에서 정량적인 결과를 제외하고 정성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에 내가 각 분야별로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고, 어떠한 곳에 시간을 많이 썼는지를 Narrative로 써서 강조를 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는 결과만 제출한 경향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그 과정에 대한 아주 상세한 기술을 통한 어필이 가능하다). 한국에서 나름 평가는 큰 일인데, 처음 Chair평가를 받을 때 어느날 불쑥 들어와 "너 오늘 나랑 평가하자"라길래 순간적으로 잔뜩 쫄았으나, 한국에서 많이 일어난것 처럼 뭔가를 '까'려고 하는것보다는 지금까지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특히 'junior' faculty로써 문제점은 없는지 어떤면에서 함께 발전시킬만한 부분이 있는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Chair는 내가 제출한 정량적/정성적 성과표를 바탕으로 미리 평가표를 작성한다. 각 분야별로 매우잘함 부터 매우못함 까지 5 단계 스케일로 된 평가를 하고 그 뒤에 정성적인 커멘트를 달아 평가표를 만들고 그 평가표를 나에게 직접 보여주고, 그것을 바탕으로 약 30여분 난상토론 하는 형태로 진행하였다. teaching의 경우, 학생들의 강의평가는 물론, 강의 준비를 위해서 내가 어떤 준비를 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기술하는데, 주목할만한 부분은 '수업을 얼마나 개선하였는지?'도 하나의 주요한 평가 항목이었다. 학교의 특성 때문일수도 있으나 이 점을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Research의 경우에는 당연히 출판된 논문이 주가 되고, 이 분야에서 주목할만한 부분은 한국의 경우 publish된 것만 인정해 주는 경향이 있다면, 이곳에서는 논문뿐만 아니라 학회발표/활동, work-in-progress에 대한 것도 실적으로 인정해 준다. 한국에 비해서 더 다양한 면을 살펴 보는 것 같다. 마지막 Service의 경우는 학교에서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를 작성하고, 심지어 졸업식/입학식 등의 참석도 작성하고 고려한다. Chair는 이 평가결과를 보여주고 나에게 이의가 없는지 물어본 다음 자신의 커멘트를 읽어보라고 하고, 더 추가할 것이 없는지 물어보았다. 나에게는 마치 '네가 혹시 빼먹고 안쓴게 있다면 지금이라도 이야기 해주렴' 하는 느낌이었다. 그것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리고 난 다음에 혹시 미흡한 분야가 있다면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 Department에서 어떠한 도움을 줄지를 물어는 점이었다. 만일 Teaching의 평가가 부족하다면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학교에 어떠한 교육관련 프로그램이 있는지, 학과에서는 어떠한 도움을 줄 지 물어보고, Research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래도 Teaching과  Research가 큰 두 가지 요소라 혹시 두 가지가 다 부족하다면 Service의 부담을 덜어주고 Teaching과 Research에 중점을 둘 수 있게 Chair 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도움을 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Dean과 하는 Progress toward tenure 평가도 마찬가지였다. 이 평가를 위해서는 먼저 내가 지난 일년동안 한 일을 마찬가지로 정리해서 각 Department마다 있는 Promotion and Tenure Committee에서 먼저 심사를 한다. 이 평가 위원회는 정년보장을 받은 (Tenured) 교수님들이 참여하여 Tenure-track (아직 테뉴어 심사를 받지 못한 교수들)에 있는 교수를 평가한다. 이들의 평가 결과를 서면으로 Chair에게 제출을 한다. 이 평가 결과도 마찬가지로 공유가 되는데 위에서 언급한 3가지 분야에 대해서 보다 심도깊은 평가와 발전시켜야 할 것들에 대한 피드백을 준다. Chair는 이를 보고 다시 자신의 의견을 달아 Dean에게 제출하는데 이 평가에서도 마찬가지고 이 결과를 가지고 Dean, Chair,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서 앉아서 토론을 또 한다. 그럼 Dean은 성공적인 Tenure를 받기 위해서 Dean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을 물어본다. 그러면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대략 내가 어디즈음 있는지 알게 된다. Chair 평가결과는 5단계 스케일에 표시가 된 반면, Dean과 하는 평가는 주로 정성적인 결과를 가지고 진행한다.

 

이러한 평가 사이클을 두번째 돌다보니, 한국에 비해서 상당히 체계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이렇게 자주 평가를 하고 리뷰 시간을 갖는 것은 tenure-track faculty로써 (개인적으로는 싫어하지만 어쨌든) tenure를 잘 받을 수 있도록 중간점검을 하는 절차인 것이고, 예를들어서 research가 tenure를 받기에 부족할 것 같으면 매년 그 정도를 평가하고 일의 경중을 조절해 주어 tenure를 받도록 하기 위함인 것이라고 했다. 즉 나중에 6년차때 tenure를 평가를 하게 되는데 "Surprise!! (i.e., 너짤렸어!)"를 없게 하기 위함이고 미리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절차인 것이다. 실제로 tenure system을 도입중인 많은 학교에서 년차 평가를 통해서 direction을 잡아주는걸로 알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인사권을 각 school별로 가지고 있고 본부에서는 각 school별로 진행하는 평가절차를 믿고 이를 승인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게 맞는것 같은게 각 학문별로 특성이 너무 다른데 비 전공자가 전공자의 평가를 한다는 것이 사실 말이 안된다.

 

한국의 경우 물론 역사가 길고 체계가 적립된 학교의 경우는 아마도 저런 시스템을 따를 것 같지만, 사실 년차평가가 위에서 일괄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고 그 결정에 대해서 함께 앉아서 논의를 한다거나 그를 바탕으로 주어진 일에 대해서 함께 조정을 한다는지 등의 절차를 기대하기 어렵다. 수업/연구 말고도 해야할 service일들이 많기 때문에 사실 본연의 임무(수업/연구)가 소홀히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는 것이 안타까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tenure 등의 주요한 인사권도 각 school보다는 본부에서 좌지우지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실 그러한 조정 (있다 하더라도)이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물론 centralization vs decentralization의 장단점은 있지만 대학교가 다양한 학문을 다루고 각 학문별로 주어진 상황이 다른데 본부에서 일괄적인 잣대를 가지고 평가하거나 인사를 하는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좀 더 나아가 보자면 미국의 경우 같은 교수라 하더라도 admin과 일반 교수의 선이 명확한 편이다. 그래서 행정을 담당하는 본부와 faculty senate 사이에서 서로의 견제가 작동하는 편인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은 편이기도 하다.

 

지금의 돌아가는 상황을 보자면, 한국의 대학들은 그 경쟁력을 많이 잃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이는 외부에서의 평가보다는 학생들과 교수들 (내부자)에게 물어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구를 강조하는 많은 학교들 앞으로 중국/미국의 학교들과의 경쟁력이 있을지 돌이켜 봐야할 것 같고 (연구비의 투자나 효율성 차원에서), 연구에 약점이 있는 학교들의 경우 과연 교육의 질 측면에서 경쟁력이 있는지 살펴봐야할 것 같다. 어느 교수의 칼럼에서 교수의 삶을 살면서 사실 '교육학'에 대해서 고민하거나 배워본적도 없이 학생들을 교육 했다는 메세지는 고민할 만한 부분이 많다. 위에서 '수업의 개선을 위해서 얼만큼 노력을 했는가?'가 눈에 띄는 평가항목으로 보였던 부분도 이같은 생각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을 맞이 하는 한국에서 교육의 혁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대학에서 이러한 평가 제도(정량+정성), tenure 시스템에 대한 고민, decentralized 된 조직의 자율성/책임성 강화 등을 고민해봐야하지 않을까 결국 교육의 질을 높이는 방법을 많이 고민해봐야할 것 같다. 연구야 알아서들 잘 하시니까. 아울러 학교에서 교수에 대한 평가이든, 기업에서 근로자들에 대한 평가이든, 연구과제에 대한 평가이든 (이 3가지를 모두 경험해본 사람으로) 평가자체도 중요하지만 이 결과에 대해서 리뷰하고 토론하는 절차를 사실 한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은 큰 문제이다. 한국에서의 평가는 성과급을 나누어 주기 위한 등급표시제의 의미인것이지 (마치 소고기의 질을 평가하는 것처럼), 그 평가를 함께 고민하고 발전시키는 절차가 없다는게 본질적인 차이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암암리에 밀어주기나 평가자체가 객관성을 가질 수가 없고, 평가를 이용하여 권력으로 사용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너는 B이니까 조용이해! 이만큼만 성과급 받아!). 우리는 평가를 왜하는지 고민을 해봐야하는 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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