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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Academic year가 시작되면 (SU의 경우 8월 마지막 주) 앞서 이야기 했던 Provost's welcome meeting에 이어 각 School 별로 전체 Faculty meeting이 진행된다. 이 교수회의에 참석을 하며 한국에서의 회의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많이 받아서 이번 편에는 그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들어가기 전에 먼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일반교수와 보직교수의 분리이다. 좀 의아하실 수 있겠지만, 교수는 기본적인 구분을 해보자면 Tenure-track 혹은 Tenured faculty와 Non tenure track faculty로 나뉜다. Tenure-track/tenured faculty는 대부분 Ph.D.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특히 AACSB 인증을 받은 학교는 AACSB 인증을 받은 학교에서 학위 받은 사람을 선호한다) 학교의 성격에 따라 연구, 교육, 서비스에 각각 정해진 비중을 두고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원으로 Tenure-track으로 보통 임용이 되어 학교에서 정하는 절차에 따라 평가를 받고 (미국의 경우 대략 6년의 시간 이후) Tenured(정년보장) 교원이 되는 교원을 의미한다. 또한 Non tenure track faculty는 Job requirement에 따라 연구나 혹은 교육에 집중된 근무를 주로 하며 정해진 계약 기간 동안 학교에서 교원으로 일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Tenure-track/tenured faculty는 조교수(Assistant Professor), 부교수(Associate Professor), 정교수(Full Professor)로 그 직급이 올라가고, 미국의 경우에는 대부분 부교수로 승진을 할 때 Tenure 심사와 함께 평가를 받고 Tenured(정년보장)가 되면 부교수 직급이 된다 (한국의 경우 학교마다 다르긴 하지만 듣기론 정교수 심사를 하면서 Tenure 평가를 한다고 들었다. UNIST는 그렇지 않고 별도로 심사했다). 이 Tenure-track/tenured faculty 들이 보통 학과장(Department chair)나 학장(Dean)이나 기타 필요에 따라 설립되는 기타 조직의 장이 되는 직책을 맡기도 한다. 

 

미국에서 하나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것이 이렇게 학과장이나 학장 등의 직책을 맡은 교수와 그렇지 않은 일반 교수의 일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즉 학장이나 학과장은 아무래도 담당하는 School이나 Department에서 일어나는 행정적 일들의 책임을 맡고 있고, 이를 집중하라는 의미에서 연구나 교육에 대한 의무시수 (계약상 해야하는 연구나 교육에 대한 의무)를 줄여주는 대신 행정적인 일을 책임을 지고, 일반 교수들은 그렇지 않은 반면에 계약 상에서 명시는 연구나 교육에 대한 의무시수를 수행하게 된다. 사실 한국에서도 이것이 어느정도 분리는 되어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연공서열이 그대로 적용이 되어서 직책을 맡고있지는 않지만 행정적인 일을 하는 경우도 많이 있기도 했다. 처음 미국대학에서 교수회의를 참여하면서 느낀 생각이 이 둘 간의 분리가 확실하다는 점이었다. 

 

물론 아무래 직책을 맡은 교수가 행정일에 대한 책임을 맡는다고 하더라도 일반교수의 의견이 필수적이기에 위원회(Committee) 제도를 운영해서 교수들이 직접적으로 관련이 되어 있는 일들에 대한 결정을 맡기는 모양새였다. 예를 들어, 새로운 교수를 뽑는다고 하면 일단 Department chair가 충원 요청을 Dean에게 하고 Dean은 Provost 등에게 보고하여 충원을 승인받는다 (이는 연봉 등의 자금을 집행해야하기 때문이다). 승인이 나면 다시 Department chair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Chair는 임용을 위한 Hiring committee를 구성한다. 임용과정 간 Chair가 약간의 지원 및 참고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전반적인 절차는 전적으로 Committee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최종 선발이 끝나면 Chair에게 선발된 인원을 추천하고, Chair는 다시 Dean에게 추천하고 다시 Provost에게 승인 받는 형태를 따른다. 하나 재미있었던 점은 그 모든 결정의 권한이 Decentralize 되어 있다는 것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이상은 Committee의견이 그대로 반영이 된다는 것이고 학장이라고 해서 그 결정과정에 영향을 행사하지 않는다. 이는 Tenure 평가 절차나 기타 다른 위원회의 결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는 그 경계가 모호하고 각 의사결정에 소위 "위에서 내려오는 의견"이 중요한 요인이었어서 이러한 절차들이 신선하게 보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교수회의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데, Dean이나 Chair가 보통 리딩을 하긴 하지만, 대부분 각 교수들의 의견을 듣고, 교수들이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거나, 필요한 경우 투표에 붙이는 등의 중재의 역할을 하지 자신의 의견을 크게 피력하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특정 사안이 필요한 경우에는 그것을 해당 위원회를 중심으로 교수들이 결정을 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대학본부나 필요한 자원을 찾고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나에게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오고 나서 얼마 안되었을 때 창업관련한 (UNIST에서 창업교육센터를 했던 버릇으로) 이벤트에 대한 아이디어를 상의하러 Dean을 만난적이 있는데, 내가 아이디어를 한참을 설명하니 "그거 괜찮은 아이디어인 것 같은데, 무엇을 도와줄까?"라고 되묻기에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이런 정도의 금액이 필요한데 아직 미국에 온지 얼마 안되어 어떻게 해야할지 전혀 아이디어가 없다고 하자. Dean은 "그건 네가 걱정할께 아니야. 내가 알아볼테니 너는 그 아이디어를 구체화 시켜봐"라고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어찌보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 그 아이디어에 대한 자금조달을 비롯한 수행도 보통 아이디어를 낸 사람의 몫이었는데, 그런 경험을 하다가 이곳에 와서 그 말을 들으니 엄청 새롭게 느껴졌다. 

 

상황에 따라서 시간이 길어질 수 밖에 없겠지만, 회의에서 상충되는 의사결정을 해야했을 때도 찬성의견, 반대의견을 충분히 듣게 하고, 필요하면 추가시간을 마련해서도 더이상 의견이 안나올 때 까지 듣고 투표를 하는 광경도 나에게는 상당히 낯설었다. 나이가 많은 노교수님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하고, 이제 막 들어온 젊은 교수는 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하기도 한다. 물론 어디나 모든 사람이 만족할만한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과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때로는 빨리빨리가 익숙한 나에겐 어색하기도 했지만, 한국에서 "결과"만을 주로 느끼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배워야겠지만, 그렇게 또 하나의 새로운 문화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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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수, 미국 교수되기 편에서 이야기했지만, 나는 지방에서 자라서 서울로 그리고 미국으로 넘어왔다. 사실 그만큼 미국을 몰랐던 말도 된다. 막연히 알게 된 미국은 형식보다는 실리를 중히 여긴다고 알고 있었다. 실제로 연구소 다닐 때 제일 힘든 것 중에 하나는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예쁘게(!) 만드는 것인데, 그 예쁘다는 것이 무척이나 주관적인 개념이라, 한 사람이 마음에 들어도 다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고 그래서 꽤나 고생을 했는데, 이곳에서는 그냥 흰 바탕에 검은 글씨, 끝! 물론 중에는 예쁘게 꾸민 슬라이도 볼 수 있지만, 그걸 크게 중요시 여기지 않는 인상을 받는다. (물론 빨간색 바탕이라면 조금 문제가 있겠지만).

 

UNIST 그리고 SU에서도 하나 지키고 있는 것이 수업시간에는 가능하면 정장 혹은 비지니스 케쥬얼을 입는다는 것인데, 스스로도 옷을 잘 차려입으면 자신감도 더 나는 것 같고 일도 잘되는 것 같은 착각이 있기도 하지만, 비즈니스 스쿨이니 학생들에게도 비즈니스 환경에 맞추어야 한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있었다. 한국은 아무래도 '보여지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그래도 신경 써서 옷을 입는 친구도 많았지만, 삼선 슬리퍼에 체육복인지 잠옷인지 입고 오는 친구가 가끔 있긴 했고,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후드티에 늘어진 체육복이 무슨 대학 교복처럼 입고 다니지만, 적어도 앞에서는 나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게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길 바랬다. (강요하진 않았다).

 

미국에 오고나서 다른 동료 교수님을 보니, 이곳의 교수님들도 수업시간에는 항상 정장이나 비즈니스 케쥬얼을 입고 하신다. 물론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평균 이상의 교수님들이 정장을 갖추어 입으신다. 그래서 한번 물어봤더니 "우리는 프로페셔널 스쿨로, 비즈니스 환경에서 일하는 학생을 교육하는 사람이 아니냐. 정장을 입고 격식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한 노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이 꽤나 나에게는 충격적이었는데, UNIST가 다소 젊은 교수들이 많아서 더 그럴 수도 있는데, 한국보다 오히려 더 격식을 차린다는 생각이 들어 나에게는 재미있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곳에 오자마자 부터 신규채용을 담당하여 Hiring committee에 몇 학기 연속해서 들어가 있었는데 (앞서 이야기했지만, 지금 내가 소속한 학교는 노교수님들이 은퇴하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을 뽑고 있었다), 거기에서 미국인 교수님 2분, 중국계 교수님 1분, 그리고 나 이렇게 4명 정도가 채용 심사를 담당했는데, 서류 검토를 하고 Skype 인터뷰를 하고 최종 Campus visit을 하게 되는데, Skype interview 그리고 Campus visit을 할 때, 어떻게 옷차람을 하는지 중국계 교수와 나보다 훨씬 더 보수적으로 깐깐하게 살펴보시는 거다. 그래서 중국계 교수와 "우리가 아시아인인데 오히려 미국 사람들이 옷차림도 더 신경 쓰는구나"하면서 웃었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Skype Interview는 보통 연구실이나 지원자의 집에서 하게 되는데 그럴 때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배경이 좋지, 무엇인가 시야를 방해할 만한 것들이 있는 것을 캐주얼한 옷차림만큼이나 상당히 싫어하셨다.

 

그러고 돌이켜 보니 미국 동부는 서부와는 그 분위기가 다르고, 오히려 그런 Formality를 중시 여긴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진짜 그렇다. 

 

오늘도 나는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출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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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ST에 처음 들어갔을 때 첫 수업의 긴장감과 부담감은 아마 어떻게 표현해도 부족할 것인데 그만큼 준비를 정말 많이 했고, 한국에 있는 학생들에게 영어로 가르치는 것은 또 어떨까? 요즘 친구들은 영어를 잘한다던데, 여기는 학생들이 똑똑하다던데, 미국에서 울산으로 오고 나서 연구실에서 많은 시간을 들여 수업을 하였다. 당시에는 새로운 과목을 열어야 했었는데 '인터넷 비즈니스'였다. 일단 학생들이 '인비'라고 줄여서 부르는 것이 재미있었고 (사실 모든 말을 줄여서 이야기하는 문화를 처음 접해서, 학교 식당 -> 학식), 생각보다 학생 수가 많아서 고민이 근심/걱정이 많았다.

 

처음 들어갔으니 그 부담감만큼 열정도 가득했는데, 돌이켜 보면 그만큼 엄청 힘든 수업이었다. 학기 중에 학생들이 "교수님 수업 4개 듣는 것 같아요" 하면서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지만, 그래도 꽤 재미있게 수업을 잘 진행한 것 같았다. 나중에 강의 평가에서는 "수업이 너무 힘들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고, 돌이켜 보면 내 수업 하나만 듣는 게 아닌데 너무 심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걸 난이도 실패라고 하나 보다. 

 

나에게는 정말 의미있었던 UNIST 첫 수업

부담은 되었지만, 학생들과 그렇게 소통하는 게 참으로 좋았다. 지금도 그런 마음이기도 하고 항상 노력을 하지만, 수업은 함께 만들어간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나름 궁합이 잘 맞아야 역시 덜 피곤하고 오히려 많은 걸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도 든다. UNIST의 학생들은 참 똑똑했다. 열심히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몇몇 학생들이 "교수님 수업 다 들을 거예요" 하는 말이 그렇게 힘이 될 수가 없었다. 

 

미국에서 첫 수업은 Capstone 수업인 Strategy이었다. 사실 나 스스로 준비가 더 되었어야 했는데, 미국으로 가족을 이사하고 아이를 초등학교에 전학시키고 집 구하고 적응하고 한다고 뭔가 정신없이 지나갔고, 이미 수업을 한번 해봤던 거라 준비가 부족한 면도 분명히 있었는데, 결론적으로는 또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고 말았다. 사실 이 기저에는 미국 대학생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인데, UNIST의 경우 국가에서 장학금을 전체를 지원하고,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열심히 밖에 할 것이 없었지만, 미국 대학생은 대부분 full time/part time job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처음에 미국에서 누군가 이메일로 '내가 일을 해야 해서 수업을 못 갈 것 같아' 하길래. '잉? 어처구니가 없네'하는 반응이었는데 - 물론, 학생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게 주로 하는 게 맞지만, 이런 일이 부지기수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돈을 벌어 학비를 대거나, 싱글맘이거나, 나이 들어서 늦게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학생의 스테레오 타입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첫 퀴즈가 12점 만점이었는데 평균이 2점이 살짝 넘어서.. '이것들이 ㅡ.ㅡ'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어쩌랴. 내가 잘 못 가르친 탓이겠지.라고 level control의 실패를 인정해야 했다. 아울러 미국 애들이 토론을 잘한다고 일반적으로 한국에 알려져 있긴 하지만, 수업시간에 말 안 하는 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저치들의 입을 어떻게 열까 고민이다. 한 수업은 17명이고 아침 수업이라 일단 참여하는 태도부터가 다른 아이들이지만, 그다음 수업은 28명에 미국의 전형적인 백인 운동하는 애들이 반 정도 되고 이것들은 앉은 건지 누운 건지 알 수 없는 자세로 제일 앞자리에 있으니 아직도 이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이 되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수업은 그럭저럭이고 한국이나 미국이나 잘하는 친구들은 잘하고 관심 없는 애들은 딴짓한다. 그렇게 핸드폰 쓰지 말고 점수 깎는다고 이야기했는데도 말이다. 더 강하게 나갈지 접어둘지 manage 방법을 항상 고민한다. 최근에 기술의 발전은 좋지만 Airpods 같은 걸 귀에 꼽고 수업에 앉아 있으면 당황스럽다.

 

제일 힘든 부분은 사례인데, 한국에서 한국기업이나 미국의 주요 큰 기업들 몇 개는 익숙하긴 하지만, 미국의 전체적인 시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기에 적절한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참 힘들었다. 그만큼 많은 시간을 쓰긴 했고 주로 Amazon, Uber, ToysRus 같은 일반적인 사례로 접근을 시도하였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는 비즈니스 환경이라 사실 사례야 무궁무진한 편이긴 하다. 다만 그것들의 깊은 정보를 파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학교와 처해진 주변 환경이 달라서 UNIST의 경우에는 치열함을 이미 겪고 그 자리에 온 친구들 그리고 앞으로의 불확실성으로 몸부림치는 느낌이 강했다면 이곳은 훨씬 더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이곳의 학생들도 삶의 치열함은 있지만, 최근 미국 경기가 호황이고 이 넓지 않은 반도에서 그래도 인정받는 학교라 근처에 있는 기업들이 우리 학생들을 서로 데려가려고 하기에 취업 걱정을 하는 친구를 본 적이 없다. 뭐랄까 '이건 선택의 문제야' 같은 태도. 한편으로는 그것들이 부럽기도 하고 한국의 학생들이 안쓰럽기도 하다. 

 

공통적인 건 한국이던 미국이던 할 놈은 하고 안 할 놈은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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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차이라기보다는 삶의 방식의 차이인 것 같았다. 4년 간의 박사과정을 마치고 UNIST로 돌아왔다. 아주 좋은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건 참으로 복된 일이다. 교수가 되었고, 이제 9시 출근시간 같은 건 없지만, 여전히 7시면 출근을 하였다. 그래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던 것이 누군가가 하라고 선을 그어 놓으면 왠지 하기 싫어지고, 내가 그냥 알아서 하면 가끔 더 오버할 때가 많다. 아마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라고 하는 것일 거다. 내가 교수가 된 다음에도 어머니는 늘 5시에 일어나셔서 6시면 일을 나가셨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부모님의 모습을 바라봤는데 어찌 내가 다를 수가 있을까. 우리 집은 새벽 5시 30분에 밥을 먹는다. 너무도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아침은 부모님과 함께 하고 싶었다. 

 

아버지는 교수가 되었으니 이제 자식이 큰 돈을 벌어오고 좋은 평생직장을 얻었다고 생각하셨다고 했다. 그 말은 두 가지 모두 틀린 말이다. 사실. 교수는 돈을 많이 버는 직업도 아닐뿐더러, 이제 교수도 평생직장이 아니다. UNIST는 너무 좋은 학교다. 복도를 따라서 교수 방이 한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다들 쟁쟁하신 분들이다. S대, K대, ... 이들과 직접적인 경쟁은 아니겠지만, 대학은 Tenure라는 제도가 있고 UNIST는 한국에서 손에 꼽을 만큼 엄격한 tenure 잣대를 가지고 있다. UNIST에 4년을 넘게 다니면서 자정 전에 집에 들어간 것이 한 손에 꼽을까 말까 이다. 물론, 그것이 매일 공부를 한 건 아니지만, 주된 이유이긴 했다. 

 

아울러 UNIST는 신생학교라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널려 있었다. 창업센터도 그렇게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을 겁내 하지 않고 일하는 걸 좋아했나 보다. Tenure를 위한 연구의 압박과 더불어 그만큼의 일을 했다. 거기에 가족은 서울에 있어서 매주 왕복을 하며 정신없는 일상을 보냈다. 그래도 젊은 동료 교수님들과 일하는 것도 좋았고, 그들과 일 끝나고 밤늦게 시작된 소주 한 잔도 좋았다. 다만,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수업에는 소홀해지기도 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를 돌아 봤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여전히 하루의 잠은 5시간을 넘지 않고 무엇인가 정신없이 하는 것 같은데 선생으로서 나의 발전은 더디기만 한 것 같다. 언제 여유롭게 앉아서 책을 읽어본 기억이 있을까? 스스로가 부끄러울 때가 많았다. 그런데 한국은 원래 그런 곳이 아닌가. 모든 게 빠르게 흘러가는

 

Salisbury University에 오고나서, 집을 바닷가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구했다. 첫 학기가 시작하기 전 그리고 아이들이 개학을 하기 전에 그 바닷가에 몇 번 찾아갔더랬다. 한 여름이지만 너무도 넓어서 사람보다 모래가 많이 보이는 낯선 광경에서 또 보이기 시작한 건 그들의 생활 방식이다. 아침에 빵과 커피 하나 그리고 책 한 권에 파라솔, 간이의자를 들고 하나둘 조용한 백사장에 자리 잡더니 그 풍경을 배경 삼아 오후 내내 책을 읽다가 돌아가는 사람이 많이 눈에 띄었다.

 

몰랐지만, 내가 사는 곳은 은퇴촌으로 유명해서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 들이 그렇게 책을 읽고, 집 앞의 조그마한 정원을 가꾸며 산다. 순간을 치열하게 살다가 무엇인가 비현실적인 곳으로 넘어온 것이다.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여유롭고 천천히 흐르는 환경을 그대로 따르듯 학교도 천천히 흘러간다. 학생들은 무엇인가 치열해 보이지 않고 여유로워 보인다.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는 수업 외에 할 일이 없다. 사실 아직까지 시민권자도 아니고 겨우 취업비자를 들고 왔기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수업 준비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주변 교수님들도 그렇게 하라고 하신다. 

 

책을 들기 시작했다. 주변에 계절의 변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연구 생각, 수업 생각, 내 인생 삶에 대한 생각, 내 가족에 대한 생각. 처음에는 막연히 나는 후진기어를 넣고 악셀을 밟는 느낌이었다. 한국에서 친구들은 날아다니는데 나는 오히려 뒤로 뛰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그렇게 첫 1년이 참으로 힘들더라 새로운 인생 환경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직 그것을 완벽히 소화하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조금 깨닫게 되었다. 삶의 방식이 다른 것이고, 이곳에서는 그렇게 살아감을 배워야 하는 것인 것을.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지는 않는다. 주변을 보고 환경의 변화를 깨닫는다. 박사과정 때 읽겠노라 사놓았던 오래된 책을 책장에서 꺼냈다. 이곳의 삶은 그런 것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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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수, 미국 교수되기' 편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박사과정은 연구자를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지 교육자를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학교마다 다를 수는 있지만 적어도 95% 이상은 연구자를 교육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다른 말로 하자면 좋은 연구자라고 좋은 교육자가 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사실 거꾸로도 그 등식은 성립한다.

 

학교마다 학교에 잘 적응을 하기 위한 오리엔테이션은 있다. 다만 UNIST의 경우는 대부분 한국인인 반면에, Salisbury University (SU)의 경우에는 정말 다양한 나라에서 온 교수들이 임용이 된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미국의 학교가 훨씬 더 많은 시간의 오리엔테이션이 필요하다. 비자 문제, 의료보험 문제, 등등

 

물론 UNIST가 연구중심학교이고 SU가 교육중심학교라 오리엔테이션의 주요 요지 또한 차이점이 크다. 미국에 오니 한국에서 느끼지 못했던 학생들의 다양한 면에 대해서 많은 시간을 들여 교육을 시키는 인상을 받는다. 최근 들어, 학생들의 정서적 문제라던지, 인종차별, 장애인에 대한 차별 등 워낙 소송의 나라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제공하였다. SU에 임용이 되었을 때는 전체 420명 정도의 교원 중에서 55명이 새롭게 임용이 되어서 한꺼번에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어 아무래도 소규모로 진행되었던 UNIST에 비해 좀 더 체계적인 느낌을 받았다. 특히, 각 부서별로 책임자가 나와서 교수들이 알아야 할 사항을 자세히 설명하고 질의응답을 통해 이해를 시켜나가는 게 의미 있게 보였다. 

 

하나 특이한 점은 매년 새로운 Academic year가 시작될 때 SU의 경우 'Provost's welcome back meeting'을 하는데 이 자리에 학교 전체의 교수가 모여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며 새로 임용된 교수를 소개함과 동시에 학교의 주요 어젠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사실 이러한 공식 석상에서도 항상 눈이 띄는건 '유머'이다. 어떻게 보면 아주 포멀한 자리이지만 거기서도 청중의 주의를 끌고 분위기를 환기하는데 유머를 참 잘 사용한다는 느낌을 항상 받는다. UNIST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미팅이 있긴 했는데, 분위기는 자못 달랐다. 

 

개인적으로 수업을 준비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 역시 유머를 많이 쓰려고 자료를 준비한다. 그리고 다음은 주요개념도 중요하지만, '왜 우리가 이걸 논의하고 이해하려고 하는지?'의 답이 되는 자료를 많이 준비한다. 나 역시도 대학생 때 어지간히 공부를 안 했던 사람인데,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수업을 준비함에 있어서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미국 학생들에게 맞는 사례나 자료를 준비해야 하는데 일단은 내가 그 지식이 부족하다. 아울러 이름 중심의 사회인 미국에서 이름을 외우는 게 여간 곤욕스러운 게 아니다.

 

이제 나는 타이틀 사회에서 네임 사회로 넘어온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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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2월 14일)은 94번째 Salisbury Unviersity Commencement가 있는 날이다. 몇 번 이야기 한 바가 있지만, 나 스스로의 졸업식도 잘 챙기지 않았던 죄(?)로 나의 학생들의 졸업식을 가능하면 빠짐없이 참석하려고 한다. 물론 학교에서 MGMT 492 Strategic Management라는 Capstone 과목을 가르치기 때문에 (졸업 전 반드시 들어야 하는 수업) 반가운 얼굴들이 많이 있어 더 그런 면도 있다.

 

그동안 4년간의 노력을 마무리 하는 느낌이라 학생들 입장 그리고 그를 지원하는 가족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축하할 일들이고 선생의 입장으로써도 축하의 마음을 항상 담고 뭉클한 느낌이 있다. 비록 나의 졸업은 아니지만 (https://www.salisbury.edu/administration/academic-affairs/commencement/live/index.aspx) 

 

Commencement Live Video

Commencement Live Video

www.salisbury.edu

이제 나도 몇 번 참여를 하니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한다. 

 

1. 내가 가지고 있던 미국에 대한 편견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이었는데, 사실 이러한 행사를 보면 상당히 격식을 차린다는데 의외의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때론 경건하고 때론 활발한 느낌 - 질서와 비질서가 묘하게 어우러진 느낌은 이런저런 행사를 참여하면서 느껴진다. 졸업식에서 교수들이 입장을 할 때 학생들과 학부모의 박수를 받으면서 꽤 장엄하게 입장을 하지만 각각의 교수들의 차림새를 보면 각 학교의 개성 어린 Regalia에서 모자를 가지고 온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후드를 가진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등 제각각이다. 이 느낌이 꽤 역설적인데, 그러면서도 격식과 장엄/엄숙이 느껴지는 것은 그 격식을 차린다는 것일 것이리라.

 

2. 내가 근무하는 Salisbury University는 Honors College를 제외하고 5개의 College가 있는데 각 졸업생들의 인종을 살펴보면 각 단과대학의 특징이 들어난다. 예를 들어 College of Health and Human Services의 졸업생들이 흑인들의 비율이 꽤 높음을 알 수 있고, 백인이 많았던 Fulton School of Liberal Arts, 그리고 동양계가 좀 많았고 여학생들의 비중이 작았던 Henson School of Science & Technology. 그래 봤자 700여 명의 졸업생 중에 대부분을 차지하는 백인이라 정확한 통계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단과대가 각 인종이 쳐해져 있는 상황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로운 관찰이었다.

 

3. 학생들 그리고 축하해주러온 가족/친구들의 반응 - 졸업식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각 졸업생 각 개인의 이름을 부르며 졸업장을 전달하는 순서인데, 각 학생들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축하해주러 온 가족/친구들의 반응이 재미있다. (사실되도록 개인에 대한 반응은 하지 말라고 한다. 진행상)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흑인 학생들의 가족/친구들의 반응이 남다르다는 점이다. 단상에서 약간의 춤을 추기도 하거나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 노교수님들이 싫어하기도 한다) 소리를 지르는데 흑인 학생일 경우 호응이 크다. 아마도 아직까지 흑인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도가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다는 것이 가족 자체에서도 상당히 큰 투자이고 앞으로 미래를 과거의 세대와는 달리 새롭게 만들어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더욱더 열혈이 축하해주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해가 지날수록 더 많은 것들이 보이겠지만, 이번 졸업식에서는 이러한 관찰/생각이 든 시점이었다. 

여튼 이놈들..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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