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활동
박사를 지원하기 전에 연구라는 것을 나름 흉내는 내봤던 적이 있어서, 약간의 데이터를 들고 있었기에 1년 차에 Dr.Abetti 교수와 연구하나를 출판할 수 있었고, 첫 해에 냈다는 것 외에는 부족함이 많은 연구였다. 학기를 더해 가면서 자신만의 연구에 대해 욕심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아마 이때가 가장 활발히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부족하지만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학기가 아닐까 한다. 특히 1년 차 말 Qualifying exam을 통과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논문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기 시작하는데, 수업도 이에 발맞추어 각 분야별로 맞는 수업을 교수님들께 들을 수 있다.
3학기 들은 수업들;
- Strategic Management of Technology Innovation
- Empirial Issues in Management Research
- Seminar in Innovation Management and Entrepreneurship
- Data Analysis for Doctoral Student
다만, 3학기에 접어든다고 영어가 나아지는 건 결코 아니고, 오히려 더 어렵게 느껴진다. 전공분야가 깊어지고 그에 심도깊은 논문을 쓰려고 노력하다 보니 더욱더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논문이 점점 포커스가 되어 좋을 것도 같지만, 부족한 영어는 한층 나를 괴롭게 한다. 여전히 논문 하나를 소화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1년 차 봄학기 (두 번째 학기) 때 들은 IT & Organization Design 박사 세미나 텀페이퍼를 냈던 논문을 교수님께서 함께 발전시켜 HICSS라는 하와이에서 하는 학회에 제출하자고 하셨고 봄학기가 끝나고 얼마 후 제출을 하여 결국 Accept을 받게 되어 2011년 1월에 첫 학회를 참석하게 된다. 박사과정은 학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약간의 Conference 참여 비용을 지원해 주는데 RPI의 경우는 $500불 정도로 기억한다. 동부에서 하와이까지는 비행기 비용, 호텔 비용, 학회 등록비 하면 그 돈으로 부족했는데 교수님께서 $1,000불을 지원해 주시고 나머지는 내가 부담해서 참석하기로 하였다. 난생처음 가보는 하와이였는데, 첫 째가 태어나자마자 집을 떠나야 해서 어떻게 보내고 왔는지는 가물할 정도이다. 다만 그간의 스트레스는 약간 날려버릴 수 있긴 했는데, 이 학회의 경우는 좀 특이했던 게 발표하러 양복을 입고 갔더니 나만 양복을 입고 온 것이다 (다들 하와이 특유의 반바지에 꽃 프린트 티를 입고 오셨다). 이 때는 워낙 정신이 없어서 발표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지금에서는 기억이 전혀 안 난다.
그즈음부터 경영학 분야에 박사과정을 하는 학생들이면 아마 비슷한 조언을 받겠지만, 2년 차가 되는 시점부터 해서 교수님들이 AOM(Academy of Management)에 멤버가 되어 리뷰어로 참여하라는 조언을 받는다. 이는 AOM annual meeting에 제출하는 논문의 수가 어머어마하여 이를 심사할 리뷰어가 필요한 것도 있겠지만, 리뷰어로 참여하는 3개 정도까지 최신의 논문 흐름을 파악할 수 있고, 리뷰를 하면서 또 배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매년 AOM은 겨울에 논문을 제출하여 8월 초에 학회가 진행되고 전 세계에서 참여하는 가장 큰 학회라고 보면 될 것이다. 대부분 경영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참여를 하고 특히 북미에 있는 사람은 웬만하면 참여하는 학회이다.
HICSS에 발표했던 논문과 마찬가지로 1학년 2번째 학기인 봄학기 때 들었던 Seminar in Organzation Theory 박사 세미나에서 한국기업의 지배구조와 연구개발 투자에 대한 논문 (Kim, Kim, Lee 2009 Organization Science)을 접하게 되고, 그 논문을 그대로 replicate 하기로 한다 (기존에 출판된 좋은 논문을 그대로 따라가 보는 것은 데이터 처리나 방법론 학습에 아주 도움이 된다). 그래서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한국기업의 데이터를 구해 그 논문과 비슷한 결과를 도출해 내는데 그다음 한 학기의 대부분을 써버렸다. (데이터셋이 똑같지 않아 같은 결과는 아니었음). 이왕 데이터가 모이고 결과를 돌려본 김에 AOM에 논문을 제출해보기로 한다.
첫째가 태어나고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안고 한 손으로는 쓴 논문을 보며 눈물겹게 한줄한줄을 더해가며 마무리했는데, 리뷰어들이 잘 봐줘서 그런지 혼자서 작성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Accept을 해줘서 2011년 여름 불같이 뜨거운 한여름에 San Antonio를 경험해 볼 수 있었다. 세션에는 많은 분이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세션 체어 분이 지금은 기억을 못 하는 교수님이었는데, 처음 발표이며, 박사과정 2년 차라고 하자, "열심히 했네"하시면서 이런저런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이렇게 우연히 만난 분들에게서도 이런저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AOM은 학회가 너무 커서 사실 학문적으로 도움을 받기보다는 네트워크의 효과가 크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Recuiting도 이 학회에서 주로 이루어지니 안 찾을 수가 없긴 하다. AOM 이후 나는 AOM(전미 학회) + EAOM(동부지역 AOM)이나 West Coast Research Symposium 등 지역이나 분야에 특화된 학회를 함께 참였는데, 이런 특화된 곳으로 가면 사람 수가 적어서 보다 긴밀한 관계와 논문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특히 West Coast Research Symposium은 박사과정이 지원할 경우 교통비 일부를 지원해 주기도 하였다. AOM이나 WCRS 등 각 학회에서는 Doctoral student workshop 같은 게 있는데 박사과정이 성공적인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에서 논문의 최신 흐름이나 주요 저널들의 에디터가 나와서 어떤 부분을 조심하면 되는지, 그리고 초기 교수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었고, 또한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를 만날 수도 있다. 다만, 학회 때 reception이나 networking dinner가 있는데 사실 아주 중요한 자리이긴 하나, 영어가 짧고 대화를 길게 이어가지도 못하며 낯도 많이 가리는 나는 좌절의 연속인 자리였다. 거기서 유명 교수님을 사이에 두고 박사과정들의 치열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 자체도 진 빠지는 일이거니와 정말 똑똑한 친구들이 많은데 여기서 살아날 수 있을까 하는 동기부여와 좌절이 한꺼번에 찾아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아직까지도 이 자리는 익숙지가 않다).
특히 서로 대화를 하는데 뻘쭘이 서 있다가, 끼고 싶은데 어찌할 바를 몰라, 지도교수님(미국분)께 물어봤더니.
"아, 그건 미국 사람도 어려운 일이야. 다만 일단 그 사람들 서클 옆에서 서있다가 한 발을 내딛으면 그 사람들이 자리를 만들어 줄 거야. 그러면 그 사람들 사이에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그중 누군가가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질문을 할 것이야. 그때부터는 자연스럽게 대화에 들어가면 되지"라고 아주 간단히 말씀해 주셨지만,
실제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대화를 하고, 못하는 영어로 끼어드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지금도 어려운 일이니 언제쯤이야 영화에서 보듯 자연스레 와인 한잔을 들고 그 대화의 무리 안에 들어가게 될지 모를 일이다. 다만, 거의 말년 차가 다가오자 나도 급했던지, 내가 원하는 학교의 교수님들을 찾아가서 이런저런 말을 던지는 무리수(?)를 뒀던걸 생각하면 맞다. 닥치면 다 하게 되는 것이다.
지도교수 선정
사실 한국, 미국을 막론하고 박사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꼽으라면 지도교수이다. 한국에 많은 언론에서 지도교수의 갑질이 뉴스에 종종 나오는 걸 보면서, '어떻게 저런 일이?'라고 하지만, 사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만큼 지도교수의 영향력은 박사과정 학생에게는 막강하다. 생활은 물론이고 졸업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어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야기를 이어가기 전에 졸업 요건에 대해서 좀 알아보자. 한국의 경우는 대부분의 석사/박사 과정에 대한 졸업 요건이 있다. 영어점수 얼마 이상, 그리고 SSCI 논문 2편 이상 등등 학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이러한 정해진 기준이 있다 (물론 그 기준은 학교에 따라 다르다). 석사를 한국에서 하고 미국으로 온터라 그 부분을 모르지 않았지만, 미국에서 가장 신기했던 것 중에 하나가 그런 졸업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이게 좋지만은 않은 게 다른 말로 하자면, 지도교수 마음이라는 거다. 지도교수가 생각하기에 아 이 친구의 졸업논문은 졸업할 만하다고 판단된다고 생각이 들어야 하기에 그만큼 주관적이고 그 기준이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식선에서 엄청나게 동떨어진 기준은 아니기도 하다.
앞서 이야기를 한 바가 있지만, 공대의 경우 펀딩 등의 문제로 지도교수를 미리 선정하고 입학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인문 사회계열 같은 경우는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RPI의 경우도 Qualifying exam이 지나면 지도교수를 서서히 알아보기 시작하는데, 1년 차 2학기, 2년 차 1학기 정도에 다양한 과목을 들으면서 본인이 원하는 연구분야를 선택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받는다. 본인이 박사과정 이전에 학문분야에 대해서 명확한 이해가 있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아는 경우는 이 접근법이 의미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인 경우가 많아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접근법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2년차 첫 학기가 되자 그동안 들었던 수업과 지금 듣고 있는 수업을 바탕으로 지도교수가 되실 몇 분을 마음에 두기 시작한다. 전략하는 분과 IS(Information System), 그리고 산업생태학을 전공하는 분이었다. 많은 부분을 고민을 했는데, 일단은 경력이 좀 있었으면 좋겠고, 아무래도 좋은 곳에 논문을 많이 출간하신 분, 그리고 수업을 들으면서 내 핏에 맞다고 생각이 되는 분, 아울러 나의 경우는 가족과 아이가 있는 관계로 그것을 조금 이해해 주실 만한 분이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박사과정생 모두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고, 하나둘 지도교수를 정하기 시작했다. 다른 동기들보다 상대적으로 조금 빨리 학회 논문을 발전시키면서 다행히 몇 분의 교수님들과 일을 할 수 있었고, 그러는 동안 어떤 교수님이 나와 맞을지 한참을 고민을 하다가, 사실 생뚱맞게 경제학과에 계시는 Kenneth L. Simons 교수님께 찾아가 지도교수가 되어 달라고 했다. 이 교수님은 방법론 수업을 하셨었고, 첫 학기 때 내가 1등을 했던 수업을 가르치셨던 분이었다. 아울러 여름방학 때 (일반적으로 미국의 대학은 여름에는 계약이 안되어 있음 = 월급이 없음) 본인이 NSF를 통해서 큰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셨는데 그 프로젝트에 들어가면서 여름 인건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그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나는 이 분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와 대략의 연구분야를 알 수 있었고, Disruptive innovation에 대해 연구해보자는 교수님의 관심과 나의 관심이 맞아서 선택을 하였었다.
그런데, 그분이 경제학과 교수님이시고 (경영학과에도 일부 소속하셨으나 주는 경제학과였음) 해서 마지막까지 고민을 했던 것이다. 이 분을 선택했다고 하자, 박사 코디네이터였던 교수님이 좀 마땅치 않아하셨던 것 같다. 아무래도 경영학과에도 교수가 많은데 왜 경제학과 교수를 선택했냐는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내가 마지막까지 그분을 고민했던 것은 경제학과 교수님일 뿐만 아니라, 나중에 Job을 잡을 때 아무래도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주로 가시는 학회가 경제학회 이셨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경영학 주요 탑 저널에도 출판을 하시기도 하여서 경제학 중심은 또 아니시기도 했다. (사실 중간 즈음?)
그래도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 제일 가깝고, 그 교수님이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계시고, 방법론에 뛰어나셔서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나중에 그 교수님을 선택했다고 와이프에게 이야기하니 "아! 그분 되게 엄격하실 것 같은데.." 하면서 걱정을 하는 게 아닌가. 사실 그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고, 다들 의외의 선택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지금에서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 누구보다도 친절히 Open door policy로 언제든지 찾아가면 앉아서 몇 시간이든 시간을 보내주셨고 (이메일 연락은 잘 안되지만, 오피스에 주로 계셨음), 논문을 써가면 일일이 한 줄, 한 줄 읽어가며 수정해 주셨다. 본인이 나중에 Jobs을 잡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하시며, 이력서, Cover letter 쓰는 것도 하나하나 봐주시기도 하셨다. 아울러 나중에 졸업 시점이 되자 일 년 더 준비를 해서 제대로 잡마켓에 나가길 원하셨는데 (사실 대부분의 교수님이 그러하다), 나는 경제적 상황도 그렇고 일 년을 더 버틸 수가 없게 되었다. 그걸 이해해 주시고 또 적극적으로 졸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도 하셨다.
우리 가족에게는 고맙기 그지없으신 분이라. 나중에 UNIST에 임용되고 난 후 미국 출장 나올 때마다 교수님을 찾아뵜었고, 한 번은 과제의 지원을 받아서 한국으로 초대를 드렸다. 사실 지도교수, 박사과정 학생이라고 해서 한국처럼 개인적인 시간을 보낸 적이 거의 없고 4년을 함께 지내는 동안 한 번은 박승호 연구원이 돌아갈 때 저녁 한번, 그리고 내가 졸업 디펜스를 하고 박사가 된 후에 점심 한번 이렇게 두 번 식사를 하였으니 그분도 나도 어지간히 관계가 사무적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그렇게 한국으로 오셔서 서울에서부터 카이스트에서 강연하시고 (석사 때 지도교수님이 초대해 주심) 그리고 울산에 오셔서 UNIST에서 특강도 해주시고 내 학생/다른 교수님과도 함께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좋은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떠나기 직전 경주 불국사를 구경시켜 드렸는데, 불국사가 참 좋았다고 말씀해 주시기도 하셨다. 미국에 돌아오고 나서 연락이 뜸했는데 이 글을 쓰다 보니 연락을 한번 드려야겠다 싶다.
그렇게 2년 차가 마무리되고, 이제 본격적으로 논문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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