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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에서는 유학과는 조금 떨어진 그 당시 즈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겠다. 나의 경우는 그때가 인생에서 중요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 시기였는데, 아마 일반적인 인생의 패턴을 따르는 분들이라면 이런 것들이 때론 유학을 고민하게 하기도 하기 때문에 다뤄보기로 한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2004년 12월에 한국기계연구원에 들어갔을때 내 나이가 한국 나이로 29세였던 걸로 기억한다. 연구소에 들어오시는 연구원 분들은 대부분 박사를 마치기 때문에 연배가 좀 있는 편이 많은데, 아예 병역특례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어 상황에 따라서 천차만별이기도 했다. 원래 어릴 적 꿈이 과학자였는데, 물론 흰가운을 입고 이상한 액체가 담긴 플라스크를 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국가에서 지원하는 연구소에서 일을 하니 일종의 과학자가 아니던가 - 물론 사회과학자도 과학자이긴 하지만. 연구소에 들어갔을 때 주변에서도 그렇고 아주 많이 좋아해 주셨다 특히 부모님의 경우 말할 나위가 없었다. 생각해보라 시골에서 공부에 그리 취미가 없이 취업문턱에서 번번이 좌절을 하던 아들이 우연히 (*지난 편 참조) 석사를 하게 되고 마치자마자 연구소에 들어갔던 것도 그렇지만 연구단지 주변의 좋은 환경이 부모님들에게는 좋은 곳에서 좋은 직장을 얻은 아들이 되었으니 당연히 좋아해 주셨었다. 나도 좋긴 했지만, 며칠이 지나자, '내가 여기서 30년을 근무한다는 거지?'라는 생각과 '어릴 적 꿈을 이뤘는데 뭔가 허탈한데?'라는 두 가지 생각이 많았다.

 

아마 가족들은 거기서 평생을 다닐 것으로 생각했고 ('평생직장이긴 하다') 빨리 집을 사서 이제 결혼을 하라고 종용하기도 하셨으니 특별할 것없는 우리네 부모님 들이었다. 그 당시 테크노밸리라고 하는 대단위 단지가 1차, 2차 이렇게 개발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석사 때 선배형이 분양받은 전셋집 (36평)을 싸게 주셔서 혼자서 그 넓은 집에서 살며 일하는 삶도 나쁘진 않았고, 그런 내 모습을 보는 부모님의 마음도 흡족하셨고 다음 단계를 내심 기대하시지 않으셨던가 싶다. 내 마음속도 일단 잘해야지 하는 생각도 많았지만, '일단 뭔가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조금은 자리 잡았던 것 같다. 1년 즈음이 지나자 주변의 많은 박사님 들과 나름 자신의 한계를 느껴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기 시작했고, 2006년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일부분 유학을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자신의 스펙을 잘 알기에 미래는 불투명했고, 지금 맡은 일은 망쳐가면서 준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일도 열심히 하고 틈틈이 유학을 준비하는 일상이 계속되었다.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며 공부를 하는 걸 알게 되신 부모님은 "왜 사서 고생을 하고 그러냐"며 말씀을 하시고 명절 때 집에 찾아가 피곤해하면 "고등학교 때 그렇게 공부를 했으면 하바드를 가지 않았겠냐며" 안타까운 마음을 농담으로 표현하시곤 했다. 이제 정착하고 덜 피곤하게 살았으면 하는 아들이 일 끝나고 공부하며 피곤해하는 모습이 부모님으로 그리 달갑진 않으셨을 것 같다.

 

그렇게 첫 번째 지원을 한참 진행하고 그것들이 마무리 될 무렵, 여자 친구가 생기게 되는데 (현, 와이프), 그리고 전 편에서 0.5승이라고 그간의 결과로 첫번째 합격증을 받아 든 순간이 한참 만날 시점이라 나 스스로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여자 친구였던 와이프는 그렇게 노력한 결과인데 가라고 했지만, 금전적 부담과 꿈 그리고 연애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다가 결국 입학을 포기하고 바로 결혼을 하게 된다. 그때 와이프나 처가 식구들은 결혼을 준비하고 있지 않았는데, 오랜 유학을 꿈을 접는 모습이 짠해 보이셨던지 결혼을 서두르게 된다. 혼자와 둘은 유학에 있어서 큰 차이를 나타낸다. 실제로 유학을 나왔을 때 나를 제외하고 다른 학생들 (공대 중심이라 주로 남학생 들이었음)의 경우 아주 극심한 외로움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겨울의 날씨가 어둡고 우울하고 많은 눈이 내리는 곳에 가게 된다면 더욱더 그러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때 그 친구들이 나를 참 부러워했다. "형은 외롭지는 않으시잖아요" 하면서. 그런데 결혼을 한 후 같이 오게 되면 외로움은 덜하지만 다른 어려움이 있는데 일단은 돈문제, 학교에서 생활비가 1인이 생활할 정도의 생활비가 지원된다. 그리고 한 명은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발전하는 유학생의 모습이지만,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이 엄청 노력하지 않는 이상은 그냥 따라온 사람이 되어 그 자괴감이 크다. 아울러 영어도 잘 안되고 친구도 가족도 없이 공부에 바쁜 다른 한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길이 맞을까? 그런 건 없는 것 같다. 두 가지 중 어떤 길을 가던 내가 할 수 있는 조언은 '가능하면 날씨 좋은 곳으로 가라'이다. - 나중에 유학생활을 이야기할 때 이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해보겠다.

 

그렇게 2007년 말 결혼을 하고 결혼이 끝나자마자 바로 다시 2차 유학 준비를 하게 된다. (나중에 와이프는 이 일을 두고 배신감에 부들부들했다며 아직도 놀린다). 이제 가족이 있고 혹시나 새로운 가족이 태어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에 금전적인 부분이 더욱더 조심스러운 부분이 생긴다. 전 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2차 유학 준비의 결과와 학교 선택에 주요한 요인을 제공한다.

 

   1.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S&T Policy에 펀딩 없이 합격 - GIT는 학교도 아주 좋은뿐더러 이 학교가 위치한 애틀랜타는 도시도 크고 한국 커뮤니티가 미국에서 4번째로 크고, 한국 직항편도 있고, 집 가격도 싼 편이다. 여름에 더운 것만 빼면 아주 좋은 조건

   2. Stevens Institute of Technology, 경영학과 펀딩 $20,000불 합격 - SIT는 GIT에 비해서 학교의 인지도가 떨어지나 위치가 맨해튼이 내려다 보이는 허드슨 강변에 위치해 맨하튼으로의 접근이 용이하고 월가 등의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겠다는 장점이 있으나.. 맨하튼이 내려다 보이는 곳인 만큼 집값이 살벌함

   3. Rensselaer Polytechnic Institute, 경영학과 펀딩 $17,000불 합격 - SIT를 고민하면서 결국 수락을 하지 못한 건 살벌한 집값과 생활비 때문이었는데, 이에 비해 뉴욕 주도인 Albany에서 20여분 떨어진 Troy라는 시골(?)에 위치한 학교라 렌트비 (당시 2 베드가 대략 1000불 가량)를 제외하고 약간이 생활비라면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아놓은 돈을 보태 부부가 살 수도 혹시나 아이가 태어나더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음. 아울러 학교도 SIT처럼 나 역시 처음 들어 봤지만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학교이기도 하고 역사가 200년이 조금 안 되는 학교라 왠지 믿음이 갔지만 결국 주요한 요인은 생활이 가능하냐 여부.

 

SIT 합격을 받고 나서 와이프와 둘이 엄청나게 자료를 찾아보고 고민을 하고 논의를 한 끝에 결론은 현재 재정상태면 어렵겠다는 결과를 내고, 쓰디쓴 소주 한잔을 마시며 포기를 하게 되었고 때마침 전셋집 주인 (앞서 이야기한 선배네 집 아님)이 말도 안 되게 전세금을 올려 달라는 바람에 집을 사버리고 말았고, 6월이 지나고 마음이 안정되었을 무렵 RPI에서 합격자 통지가 왔을 때는 SIT를 고민했던 적이 있던 터라 맨해튼 바로 옆보다 $3,000 불 차이인데 시골이라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유학을 결정했으나 결혼을 하고 나면 생각할 것이 배로 늘어난다. 나의 나의 부모님이 허락을 하더라도 와이프와 그의 부모님도 이야기를 나눠봐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경우는 그 간의 노력을 아셨기에 아쉬움은 감추지 않으셨지만 반대를 하시진 않으셨다. 결국 결혼하고 집도 사서 이제는 평범하게 여생을 살겠구나 하는 나의 부모님의 바람이 산산이 부서지고 지구 반대편으로 보내야 하는 섭섭함은 나가는 날까지 감추지 못하셨다. 연구원에서는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주셨다. '너, 일도 못했는데 잘되었다'는 반응은 다행히 아니셨고 -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나름 일을 열심히 했다 -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그만두는 거니 잘해보라며 많은 분들이 응원을 해주셨다. 물론 아쉬워하시는 분들도 계셨고..

 

이제 아주 작디작은 문을 하나 열고 큰 문 앞에 섰을 뿐인데, 독자들도 느끼시겠지만 이미 지치는 것 같다. 만일 유학을 안 가는 이유를 찾자면 아마도 쉽게 백 개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면에 가야 한다는 건, 단 한 가지 이기에 이 결정을 하고 수행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나 나의 경우처럼 가족에 이러한 길을 간 사람이 없어 어떤 길인지 아무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경우이고,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결혼까지 했다면 안 되는 이유만을 나도 모르게 늘리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인생을 지금 시점에서 결론적으로 돌아보면 잘 한 결정이라고 쉽게 이야기 하지만 당시만 해도 나 역시 어떻게 될지 몰랐다. 그래서 유학 나오기 직전에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결정이 나은 미래를 보장해 준다고 자신할 수는 없어. 일단 나는 죽어라 할 테지만 결과가 지금보다 나빠질 수도 있어, 만일 그런 일이 있더라도 막노동을 해서라도 가족들 먹여 살릴 테니 걱정하지 말자"라고 호기롭게 말했다. 사실 박사가 끝날 무렵 나의 모습은 이런 호기로움을 찾을 수 없었다. 이 시리즈를 끝까지 읽어보신다면 그것을 보실 수 있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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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microsoft.com/2019/01/07/kroger-and-microsoft-partner-to-redefine-customer-experience-introduce-digital-solutions-for-retail-industry/

 

Kroger and Microsoft partner to redefine the customer experience and introduce digital solutions for the retail industry - Stori

America’s largest grocery retailer and global technology company partnering to pilot two connected experience stores Companies will jointly bring to market Retail as a Service product for retailers and present the solution at NRF 2019: Retail’s Big Show CI

news.microsoft.com

지난 1월 7일 미국 최대의 식료품 판매점인 Kroger와 Microsoft가 파트너십을 맺고 새로운 형태의 스마트 선반을 포함한 새로운 User Experience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험한다고 한다. 먼저 Kroger는 나 역시 생소한 회사인데 미국 최대의 식료품 판매점이자 Walmart에 이은 두 번째로 큰 Retailer인데. 2019년 총수익이 $121 Bill (순수입 $3.1 Bill)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의 기업이다. 이 회사는 1883년 오하이오 신시내티에서 시작하여 현재 137년 된 회사로 총 3,014개의 스토어를 보유 중에 있다 (2,758 슈퍼마켓, 256 보석상 - https://www.thekrogerco.com/about-kroger/our-business/). 총 종업원수는 2019년 현재 453,000 명으로 종업원 수로는 미국에서 4~5번째 정도 된다 (Walmart는 2017년 미국 기준 1.5 million 임).

 

왜 Kroger는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하였나?

- 기사에서는 한정된 정보를 보여주고 있어 자세한 내막은 알기 힘드나, 아마도 Amazon의 적극적인 Offline 진출 전략 (Amazon Go와 Whole Foods 인수)으로 인해 미국 최대의 식료품 판매점으로써 혁신적인 시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을 것으로 판단된다. 기사에서도 EDGE (Enhanced Display for Grocery Environment) shelf의 경우 Kroger Technology Team이 개발하였다고 하는 것을 보면, Microsoft는 Cloud computing Service인 Azure와 그 데이터를 처리하는 Azure AI를 제공하고 Kroger가 나머지 기능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 Smart self 일까?

- 아마존이 No casher 형태를 실험 중에 있다면, Kroger의 경우 이미 전국적으로 구축되어 있는 2,758개의 슈퍼마켓을 이용하는 방법을 고민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Amazon Go를 방문해 본 적이 없고, Kroger의 경우도 방문해 본 적이 없어서 전체 사이즈를 알기 어려우나 아마도 Amazon Go는 아주 큰 사이즈는 아닐 것이며, 이에 비해 Kroger의 경우 상당히 큰 규모의 매장일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전체 스토어의 No casher 형태의 기술을 접목하기보다는 큰 틀에서 기존의 스토어에서 접목이 가능한 접근이 효율적이라 생각이 된다. 실제 Walmart의 경우도 전체 매장에 Juct pick up and go 형태를 추구하기보다는 계산원이 없이 본인이 직접 스캔에서 나가는 형태를 지향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Sam's의 경우는 App으로 바로 스캔해서 결제하고 그냥 나가는 형태). 따라서 이 EDGE Shelf를 도입하면서 단순히 가격이나 promotion정보를 실시간 제공하는 것도 소비자 입장에서 괜찮을 것이지만, 회사 입장에서도 재고 관리나 전체 제품의 가격정보를 일일이 손으로 수정하는 것에 비해 훨씬 더 효율성 (인건비나 오류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보다 더 적극적인 형태의 마케팅이 가능할 수 있다. 

 

왜 Microsoft?

- 아마존에 뒤이어 Microsoft의 Azure가 최근 몇 년간 급속도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데, 이 중에 하나가 Amazon 같은 경우는 Amazon이 직접 서버를 관리하는 형태라면 MS의 경우는 서버를 해당 Client 사이트에 위치하고 관리를 지원하는 형태가 가능해 기업 Client의 입장에서는 축적된 데이터를 본인들이 훨씬 더 원활하게 관리하는 장점이 있다. Kroger의 경우 Amazon은 직접적 경쟁관계이기에 Amazon이 아닌 회사가 적합하다는 것은 당연한 선택일 것으로 보인다.

 

왜 Kroger?

- MS 입장에서도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소비자의 행동 패턴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한데, 소프트웨어 등 대부분의 주력 분야가 B2B 형태의 계약이라 각 개인의 행동 데이터를 수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Apple, Amazon, Facebook, Google 등에 비해서). 하지만, 앞으로 이러한 다른 Tech 기업과 경쟁을 위해서는 MS 역시 각 개개인의 행동 데이터를 어떤 식으로든 수집을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고, 그러기에 Kroger는 미국 최대의 식료품 판매점이기 때문에 좋은 선택으로 보인다. 

 

Synergy 가 일어날까?

- 일단 1차적으로는 두 회사의 협력이 꽤나 매력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까지 소비자나 투자자 들의 구미를 확 끌어올 만큼의 서비스가 불확신 한 부분이 있어 2020년 1월 6일 현재 두 회사의 주식은 특별한 반응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이란 공격 여파도 있을 걸로 보인다). 조금은 더 지켜봐야 어떠한 시너지가 일어날지 확신이 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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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글을 쭉 읽어온 독자들은 나에 대해 약간의 배경지식이 생겼을 테지만, 그렇지 않을 독자를 위해 간단하게 설명하면 학부 때 나는 경영학을 전공하고, 석사 때 IT Business를 전공하였다. 그리고 한국기계연구원에서 연구기획, 평가 등의 일을 하였다. 이 배경을 다시금 설명하는 이유는 이 글에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 박사과정을 지원할 대학을 찾고 지원했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함인데, 이것이 주어진 상황이나 전공분야에 따라 상이하기에 다시 한번 정보를 제공하려고 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경영학으로 박사를 하길 원했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미국의 경우 잡을 잡았을 때 학과별로 연봉이 다르고 (경영학과의 경우 다른 학과보다 연봉이 높은 편이다.) 지금까지 쭉 경영을 전공하였으므로 박사과정도 그 연장선 상에서 다른 과를 노려보는 것 보다는 나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박사과정의 경우 경영학과가 다른 과에 비해 좀 다른 면은 수요가 공급에 비해서 많거나 유사한 정도라 포닥(Post Doc)을 대부분 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도 있었다. 

 

많은 유학 지원자 들이 바로 학생 신분(학부나 석사 신분에서)에서 박사과정을 지원하거나, 직장을 다니다가 지원을 하는데 학생 신분일 경우 지도교수님의 도움을 많이 받게 된다. 그러므로 직장인들과는 보다 나은 정보를 찾아볼 가능성이 높기에 (주로) 박사과정을 지원하는 시점에서 본인이 처해 있는 상황에 맞출 필요가 있다. 나의 경우는 석사 때 IT Business를 하였으나 당시 지도교수님이 산업공학 전공* (이공계)을 하셨던 터라 경영학 분야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전반적인 유학에는 조언을 해주셨으나 지원에 직접적인 지원을 해주시기는 어려웠다. 

 

*미국도 마찬가지인 경우도 있지만, 한국의 경영학과의 교수님들의 경우는 산업공학과 출신들이 많이 계시는데, 생산관리나 SCM과 같은 그 접점에 있는 학문분야가 있어 그렇다. 미국에서 교수로 있어보니 아주 가끔 산업공학과 출신이 경영대학으로 임용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아주 드문 경우이다. 이것이 중요할 수가 있는게 교수는 각 연구분야별로 자신의 전공분야에 특화된 학회 활동을 하는데 그 학회 활동을 통해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학문의 트렌드를 따라가는 경우가 많기에 생산관리나 SCM과 같이 산업공학과 접점이 있는 분야라고 하더라도 그 기반이 되고 접근하는 이론적 기반이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최근 논문의 경쟁이 높아지고 학제 간의 융합이 강조되면서 이러한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에 돌이켜 보건데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의 경우는 학교를 먼저 생각하기보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과 관심 분야를 바탕으로 대략 어떠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정리했다. 이것이 다른 것보다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먼저 박사과정은 적어도 인생의 4년 이상을 투자하는 외롭고 고통스럽고 긴 과정이기 때문에 그 긴 과정을 버티려면 적어도 그 공부가 내가 흥미 있고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다음은 박사과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어 원하는 교수가 된다면 아마도 남은 인생 수십 년을 그 분야에 몰두하고 연구하여야 한다는 것 때문이고, 마지막은 그 분야가 그나마 아주 생소한 분야보다 나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도 한 몫했다고 본다. 석사를 IT Business를 한 것도 프로그래밍을 심하게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컴퓨터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대략의 관심 분야를 정리할 때 Information System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석사과정 동안 쓴 맛(?)을 보기도 했고 그것보다 한국기계연구원을 다니면서 연구기획/평가를 하면서 기업의 기술전략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어 'Management of Technology', 'Technology Management', '(Technology) Innovation', 'National Innovation System' 정도로 몇 가지 키워드를 정리하였다. 그 당시 생각에는 이 분야쪽으로 전공을 한 사람이 많이 없다는 생각도 크게 작용했다. 

 

* 당시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이 시점에서 관심있는 논문을 리스트업 해보고 그 저자들의 프로파일을 찾아보는 것도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효율적인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국에서도 당시 이 분야로 아주 명확하게 강조하고 있는 학교가 많지 않아서 박사과정을 가지고 경영학과에 기술이 중심으로 되는 학교로 검색해서 대략 15개의 리스트를 정리했다. 사실 미국에 있는 친구들의 경우는 이렇게 많이 지원하지 않는데, 일단 지원하는 학교당 전형료도 만만치가 않고 (당시 $150 정도로 기억한다 학교당), 아무래도 미국에 있으므로 필요한 경우 교수를 컨택해서 바로 방문이 가능하기에 저렇게 무식하게(?) 지원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당시 박사과정을 한국에서 지원하는 다양한 커뮤니티에서의 일반적인 경우는 꽤 많은 학교를 리스트업 해서 지원을 하는데, 대략 정말 가고 싶은(좋은) 대학, 괜찮은 대학, (자신의 기준으로) 입학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대학 정도로 그룹을 나눠 각 그룹당 5개 정도의 학교를 고르면 15개가 된다. (* 아쉽지만 정확한 리스트가 없다. 10여 년이 지나서 그런 것 같다).

 

아무래도 나 역시 한국에서 교육을 받고 한국문화가 익숙한터라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아는 학교들 (내가 알 정도면 다 좋은 학교)에 좋은 위치의 학교를 고르다 보니 다 아주 좋은 학교들이 리스트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사실 미국에는 학위를 제공하는 postsecondary 학교가 2019년 기준 4,298개가 있다 (https://www.usnews.com/education/best-colleges/articles/2019-02-15/how-many-universities-are-in-the-us-and-why-that-number-is-changing). 이중에 경영학 박사과정이 있는 학교는 대략 200여 개가 된다고 한다. 최근에 online doctorates 프로그램이 늘어나는 추세이긴 하다. Online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아직 얼마나 좋은 프로그램인지 평가할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의견이다) 일단 박사과정이 있다면 나쁘진 않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대략의 학교가 정리가 되고 난 후, 각 학교마다 내가 관심이 있는 분야에 관련된 교수님들을 다시 리스트업하고 그 교수님들의 논문 Abstract를 정리하였다. 이 시점에서 동시에 진행하여야 할 것이 추천서를 써주실 추천인을 선정하고 컨택하는 부분이다.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보통 학교당 3개 혹은 그 이상을 요구하기 때문에 15개의 학교를 지원한다면 15*3=45개의 추천서를 받아야 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한 분이 일반적이 추천서를 써 주시면 학교 이름을 바꾸어 제출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내가 지원할 당시에도 이미 많은 학교들이 온라인으로 추천서를 받고 있고 간혹 Sealed 된 추천서를 별도로 추천인이 직접 보내라는 요청을 하는 경우가 있어서 미리 준비해 놓았다. 이 과정에서 참으로 교수님들께 (예전에 공부도 별로 안 하고 연락도 안 드렸었는데) 요청하는 게 민망하기도 하고 어려웠다. (평소에 잘합시다.) 이를 바탕으로 SOP(Statement of Purpose)를 작성하고, Cover letter를 작성하고, 기타 영어성적, 학부성적표, 대학원성적표, 졸업증명서 등등의 각 학교마다 필요한 서류를 정리하고 각 폴더에 담아서 Deadline에 맞게 제출하였다. 그리고 전형료도 내고... 아. 내 돈..

 

지난 편에 이야기를 나눈 바와 같이 나의 경우는 GRE와 TOEFL이 턱걸이 수준이었기에 연구활동에 중점을 두었다. 다행히 연구원이어서 논문을 한 두 개 정도 작업을 하고 있었고 학회 활동이나 논문이 저널에 리뷰 중인 것들이 있어 이러한 것들을 강조하였었다.

 

일반적으로 지원 시점은 11~12월에 대부분 마감을 하고 리뷰를 한 다음 대략 다음 해 4월 중순 즈음까지 합격자/불합격자(모든 경우에 불합격자를 통보하지는 않았음)를 통보하고 합격을 하고 수락을 하면 I-20등의 학생비자를 받기 위한 서류 작업 및 미국 대사관 인터뷰를 하고, 대략 7월이나 8월 즈음에 미국으로 넘어가 보통 8월 마지막 주부터 시작하는 가을학기부터 수업을 듣게 된다. (아주 해피한 경우에..)

 

내 기억으로는 15개의 학교를 대략 1월 달까지 지원을 마쳤으며, 그때부터 4월 말 정도까지는 피 말리는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된다. 그 전에도 도움을 많이 받지만 Gohackers 같은 사이트에서 매 분 refresh를 하며 다른 분들이 어디서 소식을 받지 않았는지 노심초사하며 정보를 확인하게 된다 (다른 사이트도 있고, 해외에도 유사한 admission posting 사이트가 있긴 하지만 나는 Gohackers 사이트를 주로 이용하였음) 이때 학교에 따라서 (대부분 좋은 학교들의 경우는) Skype 인터뷰 요청을 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진행사항이나 어떤 질문을 주고받았는지에 대해서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고 준비할 수 있다. 어드미션을 받은 분들이 자신의 스펙과 Admission을 받는 상황을 정리해서 올려주는데 참고가 많이 된다. (그리고 부러워 죽는다.).

 

* 결론적인 이야기 이겠지만 이러한 스펙이 일반적으로는 상관관계를 보이나 절대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학점이나 영어점수가 조금 모자라더라도 자신의 연구활동에 중점을 둔다거나 하여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보통 결과는 우편으로 오는데 당시에도 조금 의아해했는데 사실 미국의 경우 10여 년이 지난 아직도 주요한 서류나 일들이 우편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Liability 이슈가 있어서 그런 거 일 수도 있으나 솔직히 미국 생활한 지가 좀 되었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2월부터 하나둘 편지가 날아오기 시작하는데, 보통은 첫 줄을 보면 결과를 유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Dear XXX, Thank you for... "로 시작하면 불합격이고 (지원해줘서 고맙다. 너의 자격은 훌륭하나 올해 몇 명을 안 뽑았는데 아주 경쟁력 있는 친구들이 많이 지원했다. 함께 하지 못해 아쉽고 앞으로 너의 앞길이 잘되길 빈다 - 정도의 아주 예의 바른 형식적인 편지를 받는다), 반면에 "Dear XXX, Congratulation!..."로 시작하면 합격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그렇게 주말을 영어학원을 다니고 야근하고 돌아와 새벽까지 단어 외우고,  논문 작업을 하고 15군데에 비싼 전형료를 내고 교수님들을 괴롭혀 가면서 추천서를 받아 지원해서 어떻게 되었어?라고 많은 독자들이 물어보시리라 생각한다. 

 

결론은 0.5승 14패.

 

0.5승이라고 쓴 이유는 2월 경으로 기억하는데 SUNY Buffalo에서 Admission을 받았는데 '네 돈 내고 올 거면 우리가 받아줄게!'였다.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대부분의 박사과정은 등록금 면제에 생활비를 지원하는데, 내가 준비한 것이 부족한 것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기쁘지만 기쁘지 않은... 당시에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었고, 집에서는 네가 그렇게 고생해서 준비했고 꿈꾼 건데 가라고 하셨는데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부담이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당시 ICU에 막 부임하셨던 SUNY Buffalo 교수님이 계셔서 찾아가서 물어보기도 했는데 안타깝다고 하시며 금전적 부담이 클 거라고 말씀을 해주셨다. 이때가 2007년.

 

군대를 제대하고 1999년에 편입을 생각하며 미국에서 공부하는걸 꿈꿨고 시간이 흘러 엄청나게 노력을 했는데도 2007년에 받아 든 결과가 이렇다니, 아마 그 날 소주를 꽤 많이 마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면서 결국 그 Admission을 포기한다 (1차 실패).

 

그래서 어떻게 된 건가? 하면서 독자들이 물으실 것 같다. 

 

그 이후 2008년에 다시 준비하게 되는데 GRE는 유효기간이 5년이라 괜찮았으니 TOEFL의 경우 2년이라 다시 영어시험부터 위의 과정을 다시 거치게 된다. 그래도 한번 경험을 해봤다고 2008년에 준비할 때는 연구 쪽으로 더 정밀하게 준비를 하고 학교도 막연히 이름을 따르기보다는 내 분야에 맞게 micro targeting을 하게 된다. 지원한 학교의 수도 훨씬 줄이고..

 

그러면서 찾았던 학교가 Resselaer Polytechnic Insitute 지금은 경영대의 이름이 바뀌었지만 당시 Entrepreneurship을 강조하면서 경영대의 이름이 Lally School of Management and Technology 였고 혁신 쪽으로 연구하시는 교수님이 몇 분 계셨다. 그리고 또 새롭게 지원한 학교가 Stevens Institute of Technology, 그리고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의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 프로그램 (당시에는 이런 이름이었던 것 같다. 현재는 Science, Technology & Innovation Policy)을 포함한 몇 학교에 다시 지원을 하게 되었다. (2차 시도)

 

영어점수는 비슷했고, 학점도 변화가 없었으나 연구 부분을 좀 더 정밀하게 준비를 해서 지원을 했었는데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1. 제일 처음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의 S&T Policy에서 합격증을 받았으나 여기에서도 펀딩을 찾아보려고 할 텐데 일단은 펀딩을 줄 수 없다고 했다. 2년 전의 악몽이 떠오르는 순간이 아닐 수가 없었다. 

   2. 그렇게 좌절하고 있을 때 4월 즈음 Stevens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학비 면제와 약 $20,000불의 생활비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처음으로 제대로 된 합격증을 받게 된다. 

 

그러나! 당시에 나는 결혼을 한 상태였고, Stevens Institute of Technology가 위치한 뉴저지의 Hoboken은 맨해튼이 내려다 보니는 허드슨 강 바로 옆으로 집값을 포함한 물가가 어마어마 한 곳이었다. 조그만 방을 얻으면 월세가 당시 월 $2,000 불이 넘어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학비 면제와 생활비를 받는다 하더라도 부부가 살아야 하는 생활비와 혹시나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리고 의료보험은?이라고 계산을 해보니 답이 안 나오는 곳이었다. (보통 Stipend 산정은 학생 홀로 빠듯하게 살 정도로 지원한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Admission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못 갈 것 같다는 답을 받아 들곤 다시 좌절하며 소주를 마셨다. 

 

다시 한번 1999년부터 10년을 준비했는데 결국 못 가는 건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음) 하는 마음에 쓰디쓴 소주를 마시며, 상실감을 달랠 때 당시 신혼집으로 있던 전셋집 주인이 전셋값을 말도 안되게 올려 달라고 했다. 10년의 꿈이 날아가 열 받은 상황이었기에 투덜대며 바로 일주일 만에 집을 사버렸다. (내 인생에 첫 내 집이자 가장 큰 지름 물론, 대부분은 은행 돈). 잔금 정리와 이사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며 그 상실감을 털고 있던 어느 날 현충일을 맞이하여 6월 6일 할아버지를 맞이 하러 가서 (한국전쟁 때 전사하시어 서울 국립묘지에 계심) 아마 미국은 못 가고 한국에서 자주 뵙겠네요 하고 인사하고 온 다음날 회사에서 띵하니 이메일을 받게 되는데 Rensselaer Polytechnic Institute에서 학비 면제에 Stipend를 지원받는 조건으로 Admission을 받게 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보통은 4월 말이 되면 대부분은 합격자가 정해지고 정리가 되는데 아마도 그전에 합격을 시켰던 학생이 나중에 다른 학교로 가버렸던지 하는 등의 이슈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6월 7일에 합격자 통보를 받게 된다. 

 

그렇게 1999년부터 꾸었던 꿈이 2009년에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물론, 야심 차게 질렀던 나의 첫 집은 결국 한 달만 살아보고 미국행을 하게 된 건 또 웃긴 사실 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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