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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을렀다. 학기 마무리가 되면 항상 일이 많아지는데 그렇다고 핑계를 대자니 너무 당연한 것 같아서, 이실직고를 하고 이번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게을렀다. 인정한다. 다음글 예고하는 것도 생각 좀 해봐야겠다. 그때그때 느끼는걸 써야 할 텐데 그래야 나도 재미있고 독자들도 더 따끈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싶다. 결국 이번에도 지난번 예고와는 다른 글을 쓰겠다는 이야기를 이런식으로 표현한다. 핑계쟁이.


어린 시절부터 참 재미있다고 생각한 표현이 "옆집 밥숟가락 개수도 안다"는 표현이었다. 그 내밀한 정보를 알만큼 친하다는 의미일텐데 이렇게 표현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과거 한국에서는 이웃과 친밀한 관계를 강조하기도 하였고, 전통적인 개념의 '두레'와 같이 함께 농사를 지으며 조직적으로 작업하는 것을 미덕 같이 배웠던것 같다. 상부상조(서로서로 도움) 이라는 개념도 많이 쓰이는 것을 보면 참 공통체를 중시했던 사회였던 것 같고, 거기에 급속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Totalitarianism (전체주의)가 작용하는 과정에서 집단/커뮤니티/사회가 강조된 부분이 있으면서 목적성을 떠나서 공통체를 엄청나게 강조했던 사회였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학교 다닐 때나 클 때만 하더라도, 하지만 지금은 우리는? 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제 우연히 유투브를 보다가 슈카월드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가치있게 여기는 것은?" 에피소드 (https://www.youtube.com/watch?v=ftZ3scdRelk&t=260s) 를 보면서, 그리고 오늘 동네에서 하는 아이들 농구교실 수업장면을 지켜보면서, 중요한 차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주제를 써보게 되었다. 

 

'사랑하며 살고 계십니까?' 라는 질문을 한다면, 그 대상이 가족이 되었던, 직업이 되었던, 취미생활이 되었던, 사회가 되었던, 연인이 되었던 간에 다들 무조건 반사처럼 '그렇다'고 답하실 것 같다. 다시 한번,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보자 '사랑하며 살고 계십니까?' 현대 사회에서 과연 그럴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조건 반사처럼 '그렇다'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아마 지난주도, 어제도, 오늘도 가족 들에게 틱틱대며 불평하고, 내 직장이 얼마나 빡세기만하고 재미없고 월급이 작은지 투덜대고, 여유없이 장시간의 근무로 제대로 할 취미생활이 없고, 연인과의 관계도 밀당을 하며 고민을 하는 것이 당연한 마냥 이야기 하는 것이 우리들의 생활인 것 같다. 거기에 더해 이웃이라면 더더욱 이제는 엘리베이터에서 더이상 인사도 안하고 그저 핸드폰을 묵묵히 바라보며 혹시나 서로의 기분이 나쁠까 조심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니던가.

 


'우리는 사랑하는 방법을 잊고 있는게 아닌가?' 

 

슈카월드에서 다룬 리포트에는 비교이긴 하지만, 한국의 현실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우면서도 놀라웠다. (https://www.pewresearch.org/global/2021/11/18/what-makes-life-meaningful-views-from-17-advanced-economies/) 한국 사회가 이제는 돈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고, 이것 하나에 목숨을 거는 경향성이 있다고 하니, 정말 진정한 물질만능주의를 지향하는 사회가 되어 버리고 만듯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사실 이 연구센터의 신뢰성을 잘 몰라서 함부로 이 결과를 믿기는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생각했던 것과 다르지 않아서 더 섭섭하다고 해야하나..

(출처:Pew Research Center, https://www.pewresearch.org)

 

시골에서 자라나면서 미국을 배울때 개인주의가 판치는 나라나고 들었던 것 같다. 그 근거는 전혀 모르겠다. 그렇지만 문화를 6가지 측면에서 평가하는 Hofstede 지표를 살펴보면, Individualism에서 미국은 60, 한국은 18로 미국이 훨씬 더 개인주의 성향이 더 큰 것은 틀리지 않는 것 같다. (https://www.hofstede-insights.com/country-comparison-tool?countries=south+korea%2Cunited+states). 개인주의라고 한다면, 남에 대한 신경 안쓰고 나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인데, 사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건 미국이 높은 개인주의를 가진 만큼의 높은 집단주의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짧게 살면서 이런 경험을 종종 느끼게 되는데, 미국은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함께 집단의 가치를 지키는, 즉 미국의 국방에 그렇게 신경을 쓰고, 군인들의 정신을 높게 사는 것이 개개인의 자유 극대화를 위해 미국 (혹은 지역)이라는 집단의 가치를 함께 높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 집을 사면서 HOA (Homeowners Association)에 속하게 되는데 각 동네마다 이 HOA에서 정하는 규칙이 다양하고 이 집단의 관리를 위해서 HOA(한국으로 치면 반상회)의 활동과 이를 관리하기 위한 비용 (한국의 아파트 관리비)을 내게 되는데 이것들이 천차만별이다. 자신의 자유와 재산이 중요하지만, 커뮤니티에 들어오면 아주 엄격한 규율을 받는다는 것도 작은 스케일에서 경험해볼 수 있는 높은 개인주의와 높은 집단주의가 함께 공존하는 예가 아닐까 싶다. 

 

오늘 아이들의 동네 농구교실에 가니 어떤 나이든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계셨다. 내가 아무리 슬램덩크를 좋아했다고 하더라도 정식 농구교육을 받은 적은 없기에 잘은 모르지만, 언뜻봐도 젊었을 때 좀 하셨던것 같은 슛품이었다. (물론 슛도 100% 정확도..존경!). 이 할아버지를 보면서, 물론 동네에서 선수로 (미국은 워낙 스포츠 리그가 다양하고, 선수 풀이 넓은 것도 있겠지만) 한 경험이 있는 분일텐데, 그렇게 많지 않은 돈을 받고 매주 아이들과 즐겁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가르치며 시간을 보내고 계신점이 눈에 띄었다. 지난 가을에는 동네에 제법 큰 어린이 축구 리그가 있는데 거기도 아빠들이 자원봉사로 코치가 되기도 하고 한다. 이런 자원봉사는 사실 열정도 분명하지만,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하기 힘들다. 그런의미에서 자원봉사의 나라인 미국은 개인/집단의식이 모두 높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미국에서도 좋은 선생님을 찾아서 맹모삼천지교 하는 부모도 많이 있다. 인종을 떠나서.. 그렇지만, 이러한 솔직히 프로가 아닌 사람들에게 돈을 주고 배운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그런 이유가 뭐든 남들보다 뛰어나고 잘해야한다는 경쟁심과 압박감이 기본적으로 깔린 전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언제부터 경쟁이 미덕이 된것일까? 예전에 집단이 중요했던 농경사회에서 동네, 부락, 이웃의 가치가 점차 사라지고 좁은 국토에 부족한 자원, 그러나 상대적으로 많은 인구에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리적인 문제점까지 여러 문제들이 겹치면서, 경제가 근대화됨에 따라서 이제 '우리'보다는 '나'로 변해온게 아닌가 싶고, 그러다 보니 '이해'와 '포용'보다는 '경쟁'과 '목표달성' 이라는 것이 우리 인생에 최우선순위가 된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돈 이라는 목적 하나에 목숨을 거는 안타까운 사회가 되어 버린게 아닌가 싶어 씁쓸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심지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찾고 그에 맞는 일을하면서 만족감을 얻어야할 직업에 대한 인생의 의미도 선진국에 비해 훨씬 더 떨어진 것을 보면, 우리는 그 어디에도 정을 붙이고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친구/가족도).

 

어느 순간부터, 어디를 봐도 비교를 하고 가슴 따듯해 지는 글을 찾기 힘들며, 서로를 더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글들이 SNS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급속도로 늘어난 것 같다. 극단적 이분법이 만연해 지고, 정치적 지형, 젠더 문제, 지역주의, 수도권 집중 문제 등이 더욱더 첨예하게 대립되며, 대화를 통한 합의보다는 서로 공격에 매몰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가끔씩 찾아보는 눈물 찡한 사연들이 있긴하지만, 이제 우리는 '우리'라는 가치를 위해 서로를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하지 않을까? 한국이 더이상 '사랑'할 줄 모르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었다. 하물며, 우리가 아주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가족관계에서도 사랑을 점차 찾기 힘든 사회가 되는 것 같아서 돌이킬 수 없기 전에 우리는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하지 않나는 생각을 해본다. 

 

세계 60여개국을 넘게 여행을 하기도 했고, 현재는 미국에 살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고 가능하면 그것을 통해 직업을 만들게 되고 그것이 크던 작던 그 자체를 즐기면서 가끔 내가 잘 하는 분야를 다른 이웃에게 자원봉사를 통해서 전달하기도 하는 그런 인생, 모두다 부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돈보다는 사람과 가족 그리고 이웃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 현재의 미국을 만들지 않았나 싶다. (물론 모두 그렇다는 건 아니다 - 빈부격차는 또 미국이 세계최고 수준이 아니던가).

 

나도 인생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산 터라 처음 미국에 이민을 왔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죄악시 느껴졌다. 뒤쳐지는 것 같고, 그렇지만 그런 마음의 여유는 더 혁신적이며, 더 생산적이며, 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는데 필수적인 요소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가족은 물론 이웃, 동네, 나아가 내가 속한 집단을 사랑하는 그 이면에 이러한 여유가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그런 여유를 잃어가면서 점차 '우리'에서 '나'로 변해가는 사회가 되고 그 자체도 안타깝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잃는 사회가 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사랑은 당연히 먹는게 아니다. 

우리는 과연 사랑하면서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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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메릴랜드의 Worcester county는 메릴랜드의 25개 학군 중에서 꽤나 괜찮은 학군 중에 하나이다. 사실 랭킹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어떻게 메기는지 애매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를 명시적으로 표현하지 않겠지만, 구글에 school district ranking을 검색해 보면 여러 사이트가 나오니 참조하면 좋을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중간/기말고사, 모의시험 칠 때마다 교무실 앞에 커다란 칠판에 전교 1등부터 순서대로 이름과 성적을 적어놓았던 야만의 시대(?)를 살았던지라 순위와 랭킹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나라서 미국으로 이민을 올 때도 이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가는 곳의 정보를 모르면 오히려 더 이런 표준화된 점수 혹은 랭킹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것도 있긴 하다. 그래서 Worcester county를 선택한 것도 큰 이유 중에 하나였고 특히나 아이가 영어를 잘 못했으니 County 차원에서 지원하는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프로그램*이 절실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 ESL 프로그램은 대학생들 어학연수 등으로 아마 많이 들어보셨을 것 같은데, 미국 공립학교에 이민자들 (영어가 익숙지 않은 사람들)의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학교차원이 아닌 학군차원(County level)에서 별도의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학교에 관련 교사를 파견한다던지 등의 방법으로 지원한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이민자가 거의 없는 곳이라 매년 3~5명 정도를 교육하는 것으로 보이며, 일과 시간에 잠시 짬을 내어 별도의 세션을 갖도록 하고 학년 수준의 영어를 한다고 평가가 되면 프로그램에서 졸업시키는 형태이다. 하지만, 이게 들쑥날쑥하기도 하고 정규 프로그램이 아닌 터라 카운티의 재정역량이나 상황에 따라서 지원이 조금씩은 다르다.

 

그렇게 아이는 학교에서 눈물겨운 과정을 통해서 적응을 해나가게 되고, 나름의 아픈 기억으로 남았을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은 정말 빨리 (불과 한 달도 안 걸려) 친구도 사귀고 수업도 따라가는 모습에서 또 한 번 부모를 놀라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어른들도 애들처럼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가도 왜 안될까 싶기도 한다.. 언제 한번 이 부분에 대해서도 글을 정리해 보겠다).

 


학기 초의 혼란한 모습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면, 학교는 수업시간에 학부모를 초대를 한다. Parent-teacher conference라고 일 년에 3번 정도 선생님과 아이들의 학습상황이나 여러 가지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기도 하나, 이는 방과 후 이야기고 일 년에 한 번 정도 아이들의 수업하는 수업시간에 함께 참여하는 참관 수업의 기회가 있다 (저학년일 경우 더 자주 갔던 것 같기도). 예전에 나의 기억에서는 참관수업을 하면 일단 교실 청소를 엄청 열심히 하고, 선생님과 어떻게 보면 짜인 각본대로 '약속대련'을 했던 것 같고, 부모님들도 한껏 차려입고 교실 뒤에 서서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래도 미국 학교의 수업이 어떤지 궁금하기도 했고, 아이가 잘 지내는지 궁금도 해서 시간에 맞추어 학교를 찾아갔다. 일단 반에 들어가니 조명을 다 끈 상태에서 모니터와 최소한의 조명으로 수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거 원래 이렇게 하는 건지 오늘만 이렇게 하는 건가?' 하며 혼자 생각을 하는 순간 와이프가 조용하게 이야기한다.

 

"왜 불을 끄고 수업을 하지? 애들 눈 나빠질 텐데 "

 

그러나 수업이 한창 진행 중이라 우리도 뒤에 의자에 앉아서 조용히 20여분을 지켜보다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당최 왜 그랬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며 대화를 나눴다.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물어보니 원래 그렇게 수업을 한단다. @.@ 나중에 선생님을 집에 초대해서 식사를 하면서 그 점도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자신이 읽은 자료에 따르면 어두울수록 아이들이 집중력이 커지고 학습능력이 좋아진다는 글을 보고 자신도 그렇게 직접 해보았다는 것이다. 

 

!!!

 

그러면서 학교를 둘러보며 우리와는 조금 다른 교실의 모습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2023년 봄, 여름을 지나고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에는 교사들의 인권과 교권에 대해 아주 아픈 과정을 겪고 있다. 안타까운 일들이 너무도 많아서 나 역시 가족에 교사들이 많아서 마음 졸이며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 차이점들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교사들의 높은 자유도. 전 화에서 이야기했듯이 교과서가 없는 부분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건물 자체의 구조를 바꿀 수는 없지만 주어진 교실 내에서는 각 교사들의 개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아마 한번 즈음은 미국 교실을 비추는 영상을 보신 적이 있겠지만 한국의 그것과는 엄청 다르다. 뭔가 굉장히 정돈된 느낌을 주는 한국의 교실이라면 미국의 교실은 아주 자유스럽다. 그렇다고 원래 이 사람들이 이런 어지러운 환경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대학의 교실을 보면 또 너무 심플하다),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긴 한다. 아무튼, 학년이 높아지면서 조금씩 정돈되긴 하지만 각 교실마다 선생님의 스타일 그대로 드러난다. 그게 교실 환경, 무 교과서, 그리고 수업 스타일까지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물론 불을 끄고 (창문도 심지어 다 가렸음) 수업을 하는 분은 그분밖에 못 봤지만, 어디까지 수업의 자유도를 주는지 상당히 궁금할 정도이면서도, 교사가 직업적 만족도를 느낄 수 있고 교육을 전공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그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지 부분에서도 이런 높은 자유도를 주는 건 좋은 측면이 있다고 생각이 든다. 

 

 

이를 좀 더 해석해 보면, 행정업무와 교육업무의 분리가 명확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각 교사들의 교실 환경과 수업형태의 자유도가 있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자면, 학교장의 간섭이 그만큼 적다는 말일 수도 있다. 최근에 일어난 한국의 학교 관련 사건에 대한 글을 보면서 다른 나라와 비교를 하거나 현재 상황을 기술한 내용을 보았는데,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학교행정에서 바뀐 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학생들이 반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각 반 선생님이 일단 가능한 처리를 해보고, 심하다 싶으면 (이건 내 기준에는 충분히 핸들 할 수도 있을 듯한 상황도) Front office로 보낸다. 이거야 말로 Uh~oh! 하는 상황이다. 학생들도 그것을 알고 있고 그러면 교장이나 교감 선생님과의 상담을 하게 되고 이걸로 해결이 안 될 경우는 학교 측에서 학부모를 불러서 교장이나 교감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선생님은 수업에 최대한 방해를 받지 않고 수업을 진행할 수 있고 이는 다른 말로 해보자면 교사의 자유도를 지켜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절차에 대해서도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소개가 되는 글들을 보긴 했는데, 제도적인 도입만으로 끝날일이 아니라 훨씬 더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을 가져와야 하기에 단기적으로 끝낼 일은 아니라고 본다. 조금 다른 예를 들어보면, 지금 아이들의 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매일 아침 등/하교 시간에 아이들과 인사를 나눈다. 물론 한국에도 그런 교장 선생님도 계시겠지만, 적어도 내 경험에서는 없다. 이는 미국에서는 스쿨버스와 승용차로 등/하교가 일어나는데 실제 여기서 사고가 많이 일어날 개연성이 높기도 하고 따라서 이를 책임지는 교장이 그곳에 직접 나온 이유기도 할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교장선생님은 고정값이고 등/하교 지도 선생님들은 돌아가시면서 하는 것 같다. 등/학교 지도 선생님들은 대부분 담당반이 없는 Special 교사 분들이 하는 경우가 많다. 담임을 맡게 되는 선생님들은 수업준비를 해야 하니 그럴 수도).

 


오늘은 글이 좀 길게 되었는데, 그러면 교사들의 자유도가 왜 중요한가? 이건 교육적 목적 말고도 교사의 처우 문제도 있는 것으로 본다. 미국의 National Educator Association (https://nea.org)에 따르면 미국 전체 공립학교 교사들의 평균 연봉은 $66,745라고 한다. 내가 속한 메릴랜드는 그나마 나은 편이긴 한데, Starting salary가 $49,451이며 평균 연봉은 $75,766으로 미국에서 9번째라고 한다. 사실 평균 연봉이 $

75,766이면 오늘 $1=1360원(10/3/2023 기준)으로 하면 1억 3백만 원 정도 된다. 

 

* 한국은 'OECD 교육지표 2023' 보고서에 따르면, 초임 교사 급여(Starting salary)는 $33,615 이였으며, 15년 차 기준은 약 $59,350 정도라고 한다. 초봉은 OECD 밑, 평균은 웃돈다고 볼 수 있는데 미국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nea.org)

사실 한국에 비해서 절대적으로 많긴 하지만, 세금 내고 어쩌고 하다 보면 결코 풍족한 금액은 아니다. 미국 2021년의 Census 자료 (https://www.census.gov/library/publications/2022/demo/p60-276.html)에 따르면, 미국 가계소득의 중간 값은 2021년 $70,784로 메릴랜드의 경우 가계소득의 평균을 약간 넘지만 전미 평균으로 따지만 교사들의 소득은 중간 값에 한창 못 미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나오는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의 많은 교사들이 투잡을 뛰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만나본 많은 교사들이 학교가 끝나면 저녁에 Ocean city (해운대 같은 느낌의 바닷가 도시 - 관광객이 많이 옴)의 바에서 일하거나 다른 일을 한다고 이야기를 들어서 '저게 되는 건가?'는 생각에 신기해했다. 자료를 찾다 보니 Maryland의 경우 2022년에 약 44%에 달하는 교사들이 2nd job을 가졌다는 설문 결과를 받았다고 한다 (https://www.marylandmatters.org/2023/08/28/educators-working-second-jobs-to-make-ends-meet-new-teachers-union-poll-suggests/).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의 직업 만족도는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고 이는 필수적으로 교사들의 자유도와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게 하나로 만족시킬 수 없는 어려운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건 전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다음 이야기는 

탈을 쓴 교장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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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1: 모든 미국에서 적용된다고 일반화하면 안 된다. 메릴랜드의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내용이니 예전 교과서에서 배웠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바란다.

일러두기 2: 개인적으로 글은 재미있게 쓰려고 노력한다 (실제 재미와 떠나서) 그래서 은어/비속어도 종종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뭔가 학문적인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전적으로 믿으시면 곤란하다.

 


 

"학창 시절 제일 생각나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독자의 나이나 처해진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내 연식을 공개하자면 고등학교 때 대학농구가 엄청 유행해서 '마지막 승부' 드라마를 보고, 슬램덩크를 돌려보다가 선생님에게 뺏기고 맞기도 한 그 세대이다. 미국의 학교에 대해 쓰려고 생각하다 보니 전 학년을 걸쳐 매년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에 하나는 새 교과서를 받을 때이다. 요즘은 어떻게 받는지 모르겠는데, 최근 뉴스를 찾아보니 여전히 새로운 교과서를 아직도 붉은 노끈에 묶어 나눠주는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아 맞다! 그랬었지"

 

그놈의 붉은 노끈에 무거운 책을 (지금은 보니 얇아 보이는데 그때는 엄청 두꺼웠다) 가지고 가다 보면 어린 나이에 손가락이 빨갛게 핏물이 고이고 손가락이 저릴 때까지 들고 갔던 (예전에는 30분 정도는 걸어 다녔으니) 기억이 있다. 막상 책을 고를 때는 귀퉁이가 찌그러지지 않았는지 등을 꼼꼼히 찾다가 선생님의 호통을 듣고 제 일위에서 바로 밑에 있는 책(출판사의 묶음 줄 자국이 없는)을 잽싸게 들고 오곤 했는데, 그 새 교과서를 손가락이 저릴 정도로 들다가 머리에 너무 무거워 머리에 이고 가다가 막상 옆길로 빠져서 새 책은 내팽개치고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에 가서 가장 먼저 한쪽면 귀퉁이에 검은색 사인펜으로 이름을 정자로 써놓은 경험.. 아마 이 글을 보고 공감을 하셨다면, 이제 건강을 챙기셔야 할 때입니다.

 

그렇게 새롭게 잘 접어지지도 않는 교과서가 시간이 흐를수록 교과서를 던지고 싸우기도 하고, 넓은 면 한쪽에 구멍을 파서 볼펜을 꽂아 돌리기도 해보고, 동전을 쌓아놓고 '퍽치기'를 하다가 선생님한테 걸려서 교과서 들고 복도에서 무릎 꿇고 손들고 있으면, 지나가는 선생님들이 출석부나 심지어 교과서 모서리로!!! 머리통을 쥐어 박기도 한 게 교과서이다. 그게 지겨울 즈음이면 교과서 제목에 덧대어 재미있는 창의력 테스트를 해보기도 한다. 거기에 각 담당 과목 선생님께 느끼는 한을 담아서 제목 튜닝 놀이를 하곤 했다.

 

(출처: 나무위키 - 교과서 튜닝)

길게 추억을 곱씹어 보았는데, 교과서는 예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표준전과, 동아전과와 더불어 꼭 있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이민을 오면서, 딸이 한국에서 초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미국의 초등학교 1학년의 1학기(미국은 가을부터 시작하니)로 입학을 하게 되었다. 입학을 위해서는 다양한 서류가 필요한데,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다만, 한국처럼 주민등록을 관리하는 건 아닌지라 자동으로 입학통지서가 오고 그러진 않고, 가서 거주지 증명을 하면 필요한 접송기록과 기본 정보를 작성하는 폼을 작성하면 크게 무리 없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

 

미국 초등학교는 생각보다 길다. (이게 교육의 목적과 보육의 목적을 동시에 갖기 때문인 것 같은데) 딸아이는 영어 한마디도 못하고 (준비는 조금 했지만 뭐.. 오기 얼마 전부터 잠시 영어 들은 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만)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그냥 못 알아듣고 앉아 있다 온 것이다. 이 애절하고 극적인 상황은 이번 화의 포인트는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고, 어쨌든 그리고 조금 있다가 아무래도 교과서를 주지 않길래 학교를 찾아갔다.

 

"혹시~ 교과서는 없나요?"

 

라고 물어보니, 뭔가 당연히 없다는 식의 황당한 반응(물론 굉장히 친절하게 답변해 주었다). 사실 이럴 수밖에 없는 건 일단 대부분 Local이 학교를 가고 외부인력의 유입이 없는 시골이라, 시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도 받아본 적도 거의 없을 것 같은데, 집으로 돌아와 와이프에게 이야기했다.

 

나: "교과서 없다는데?" @.@..

와이프: "그럼 어떻게 공부를 시켜?"

나: "몰라"

 

이 이야기를 나누고 이제 7년이 지났다. 딸아이는 이제 중학교에서 7학년을 다니고 있다. 그리고 둘째는 이제 같은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갔다. 물론 7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교과서는 없다. 물론 중학생 아이는 5학년부터 교과서 같은 책을 바탕으로 공부를 하긴 한다.

 


공립학교 시스템을 전혀 모르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학기가 끝날 때마다 선생님을 집에 초대했다. 감사의 의미도 있고 그간 궁금했던 (바빠서 할 수 없는 소소한 질문들) 질문을 하고자 했던 의미도 있다. 그러면서 '왜 교과서는 없는지?'를 몇 번 물은 적이 있는데, 대부분의 반응은 '아 교과서가 있으면 좋긴 하겠지만 굳이 필요가 있나요?'라는 질문으로 돌아왔다.

 

뭔가 원초적 질문을 당한 기분, 우리는 왜 교과서가 필요할까?

 

특히나 필자가 어릴 때는 인터넷 등이 발전하지 않아서 더욱이 교과서는 기본적 소양을 교육하기에는 아주 효과적인 툴이 되겠으나 지금 사교육 교재가 판을 치고, 인터넛에 교육 자료가 넘쳐나는 시점에서 한번 해볼 만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교과서는 장점이 있다. 교육 편차를 줄여주고, 학교나 학생들이 부담 없이 기본적이며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 것. 그렇지만, 우리가 여러 번 경험을 했든 누구든 일괄적인 것인 Gatekeeper의 영향력이 너무 커지게 된다. 만일 하나의 제품만 쓴다면 그 제품의 품질과 방향성을 결정하는 누군가(Gatekeeper)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쟁이 필요한 것이기도 하고 물론 그런 의미에서인지 다양한 교과서 옵션이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럼 교과서가 없어서 좋은 장점은 무엇일까? 교실에서 선생님이나 학교의 처해진 상황에 따라서 교육 내용을 구성하고 가르칠 수 있는 자유도가 늘어난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아이가 다녔던 학교에서 아주 다양한 교육 서비스를 하는 제품들을 가져와 (아마도 라이센스 하는 듯)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었으며, 이는 비즈니스적인 측면으로 보면 미국의 교육보조재 시장을 엄청나게 늘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시도로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제품을 제공하고 학교/선생님은 그중에서 필요한 프로그램을 사다 쓰는 형태이다.

 

물론 그러다 보면, 각 학교마다/선생님마다 중구난방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럴 방지하기 위해서 주 레벨의 교육위원회에서 각 학년마다 필요한 지식을 정리해 두었고, 다는 아닐 수도 있지만 표준화된 시험을 통해서 학생들의 발달사항이나 개선점을 파악하는 장치는 마련해 두었다.

 

이러한 사안은 아마 절대 몰랐을 텐데 우연한 기회로 학교에서 SIAC(School Improvement Advisory Committee)에 들어가게 되면서 선생님들과 학부모 대표들과 학교의 방향과 현재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였다. 이곳에서 활동하면서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은 초등학교들 / 중학교들 / 고등학교들만이 아니라 카운티 내에서 모든 공교육 학교들이 함께 모여서 서로의 방향성과 현재 상황에 대해서 설명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공교육이 단계마다 끊어지는 게 아니고 연결된다는 점에서 의미 있겠구나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한국도 학교체계를 운영해 본 경험은 없어 한국이 그런지 안 그런지 코멘트 하기는 어렵다).

 

아직 어색하고, 가끔 아이는 그 주에 배울 것들(혹은 숙제를)을 종이에 프린트해서 학교에서 가져온다. 이럴 거면 교과서가 있는 게 나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다른 하나의 장점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목할 수 있다는 것인데, 커리큘럼이 큰 틀에서 정해져 있고 세부는 선생님과 학교에서 정하는 것 같으니 아무래도 관련된 프로그램 개발 업체들이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 대학교도 사실 각 출판사에서 학기마다 찾아오는 형국인데, 공교육 시스템은 더 하지 싶은 생각도 든다. 교과서가 없다 보니 학교마다 '독서'를 강조한다던지 '수학'을 강조한다던지 하는 게 가능해지는 것 같고, 사실 이는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특히나 저학년의 경우에는 이렇게 자유도를 높여주는 것은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특히나 선행학습이 어떻게 보면 익숙한 우리의 문화에서 이거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그럼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시면? Khan Academy와 같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무료로 교육콘텐츠를 제공하는 업체들도 많아서 그것을 바탕으로 각 학년에 맞추어 함께 공부한다.

 

아! 그리고 또 물어보실 것 같아서, 서점에 가보면 학년별로 참고서 (표준전과, 동아전과 같은)는

당연히 있다 (선행학습 방지 실패!).

 

적어도 교과서가 없어서 가방이 무겁진 않겠다.

그래봤자 종이 몇 장이니.. (거기다 과목수도 적어서).

이해가 될 듯 말 듯 미국의 교육 공교육 환경.

 

다음 이야기는..

"이 반 선생님은 왜 반에 불을 안 켜지? 애들 눈 나빠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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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은 여러 의미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이건 비록 한 번도 미국에 오지 못한 국민들이 대부분이더라도 할리우드 영화, 팝뮤직, 미드(미국드라마)로 인해서 그 콘텐츠를 접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에, 흘러나오는 뉴스, 정보, 자료 등에서 미국을 빼면 허전할 정도이니 만큼 나도 모르게 미국을 아는 척하는 건 어떻게 보면 국민스포츠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럼 우리는 미국을 잘 알고 있는가? 그나마 다른 나라에 비해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렇다고 이야기하실 것 같다. 나 역시 그랬고...

 

미국에 이민을 오고 나서 아주 많은 걸 새롭게 겪게 된다. 내 나라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적응한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기도 하고 새롭기도 하다. 미국을 이민의 목적지로 생각하는 많은 이유 중에 하나는 그나마 우리가 익숙하지 않을까?라는 착각에서 이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물론, 실제로 미국에 이민을 오기는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 호주/뉴질랜드/캐나다 등 상대적으로 영어권이긴 하지만 이민문호가 쉬운 나라는 선택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한국의 국적 포기자 통계를 외교부 자료를 통해 살펴보면, 2020년 기준으로 총 1,729명  중 미국 833명, 캐나다 238명, 호주 156명, 뉴질랜드 85명, 기타 417 명으로 미국이 제일 높다).

 

자. 그러면 우리는 얼마나 미국을 알고 있을까? 천조국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가 있고, 캘리포니아의 따사로운 햇볕과, 경제 중심의 뉴욕, 요세미티, 그랜드 캐년 등 훌륭한 자연환경의 나라.. 등등 다 맞다. 그러기에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걸로 우리가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는 생각이 어느 날 출근하는 가을의 문턱 도로에서 생각이 들었다.

 

한국(남한)의 면적은 100,200 km²이지만, 전체 면적이 9,834,000 km²로 한국의 98배에 달하는 나라, 최근 뉴스기사에서 땅을 팠더니 기름이 뿐만이 아니라 세계 최대 수준으로 '추정'되는 리튬 점토층이 발견되어 1.5조 달러 (2000조 원이 넘는 가치)를 땅을 팠더니 벌게 될(수도 있는?) 나라. 이곳에서 하루하루 좌충우돌 새로운 것을 배우며 살고 있는 내 나름의 이야기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물론, 나의 해석과 생각들이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독자들이 내 생각의 접근법을 함께 따라가 주면 좋겠고, '이럴 수도 있겠구나!' 하며 본인이 자신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해석을 덧붙여 보길 바란다. 가능한 객관적인 자료를 찾아보도록 노력하겠지만, 인터넷 시대의 단점이자 플랫폼 비즈니스의 장점인 'No gatekeeper'의 문제로 인해서 가짜 정보들이 판치는 형국이라 더더우기 글을 의존하기보다는 자신 나름의 자료조사와 연구를 하길 바란다.

 

이 글을 미국을 알려주거나 이민생활을 알려주는 지침서가 아니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인생을 살았고, 이제 겨우 숨돌릴만큼 여유가 생긴 미국이민생활을 하면서 작가가 느끼는 다름(혹은 신기함)의 이유에 질문을 던져보고 함께 고민해 보자는 의미에서 이다. 좋은 차이 혹은 나쁜 차이도 있기에 무조건 배우자는 시대는 아닌지라 그저 차이를 고민해 보고, 우리가 가져올 게 있으면 이해해 보자는 의도에서 이다. 아울러 타이틀에서는 막상 이 글을 읽으면 미국을 잘 아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져오게 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사실 '잘'이라는 건 상대적인 것이라 그저 조금 더 이해해보고 싶다는 의도이다. (맞다! 제목장사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많은 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스스로도 좀 더 익숙해지길 (이미 이민 왔으니)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그저 대다수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관심이 있는 미국을 재미있게 알아보고자 한다. 이번화 타이틀에 먼저 스스로 답하자면, '저는 정말 잘 몰랐어요'의 자기 고백을 먼저하고 말이다. 예전에 대한항공의 광고의 문구 중에서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 시리즈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참 재미있고 좋아하는 시리즈였는데, '미국 어디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정도로 포지셔닝해보겠다. 요즘 여행 유투브가 뜨던데 묻어가시나요? 라고 물으신다면 아니라고 답할 수는 없다라고 이야기 하겠다. 트렌드를 떠나서 사람들이 가지는 기본 욕구 중에 하나이니 말이다.

 

그럼 (내 기준에) 제일 충격적이었던 그리고 독자 분들(특히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이 관심을 가지실 만한 공교육 이야기부터 해보도록 하겠다.

 

교과서는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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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수, 미국 교수되기 편에서 이야기했지만, 나는 지방에서 자라서 서울로 그리고 미국으로 넘어왔다. 사실 그만큼 미국을 몰랐던 말도 된다. 막연히 알게 된 미국은 형식보다는 실리를 중히 여긴다고 알고 있었다. 실제로 연구소 다닐 때 제일 힘든 것 중에 하나는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예쁘게(!) 만드는 것인데, 그 예쁘다는 것이 무척이나 주관적인 개념이라, 한 사람이 마음에 들어도 다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고 그래서 꽤나 고생을 했는데, 이곳에서는 그냥 흰 바탕에 검은 글씨, 끝! 물론 중에는 예쁘게 꾸민 슬라이도 볼 수 있지만, 그걸 크게 중요시 여기지 않는 인상을 받는다. (물론 빨간색 바탕이라면 조금 문제가 있겠지만).

 

UNIST 그리고 SU에서도 하나 지키고 있는 것이 수업시간에는 가능하면 정장 혹은 비지니스 케쥬얼을 입는다는 것인데, 스스로도 옷을 잘 차려입으면 자신감도 더 나는 것 같고 일도 잘되는 것 같은 착각이 있기도 하지만, 비즈니스 스쿨이니 학생들에게도 비즈니스 환경에 맞추어야 한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있었다. 한국은 아무래도 '보여지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그래도 신경 써서 옷을 입는 친구도 많았지만, 삼선 슬리퍼에 체육복인지 잠옷인지 입고 오는 친구가 가끔 있긴 했고,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후드티에 늘어진 체육복이 무슨 대학 교복처럼 입고 다니지만, 적어도 앞에서는 나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게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길 바랬다. (강요하진 않았다).

 

미국에 오고나서 다른 동료 교수님을 보니, 이곳의 교수님들도 수업시간에는 항상 정장이나 비즈니스 케쥬얼을 입고 하신다. 물론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평균 이상의 교수님들이 정장을 갖추어 입으신다. 그래서 한번 물어봤더니 "우리는 프로페셔널 스쿨로, 비즈니스 환경에서 일하는 학생을 교육하는 사람이 아니냐. 정장을 입고 격식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한 노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이 꽤나 나에게는 충격적이었는데, UNIST가 다소 젊은 교수들이 많아서 더 그럴 수도 있는데, 한국보다 오히려 더 격식을 차린다는 생각이 들어 나에게는 재미있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곳에 오자마자 부터 신규채용을 담당하여 Hiring committee에 몇 학기 연속해서 들어가 있었는데 (앞서 이야기했지만, 지금 내가 소속한 학교는 노교수님들이 은퇴하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을 뽑고 있었다), 거기에서 미국인 교수님 2분, 중국계 교수님 1분, 그리고 나 이렇게 4명 정도가 채용 심사를 담당했는데, 서류 검토를 하고 Skype 인터뷰를 하고 최종 Campus visit을 하게 되는데, Skype interview 그리고 Campus visit을 할 때, 어떻게 옷차람을 하는지 중국계 교수와 나보다 훨씬 더 보수적으로 깐깐하게 살펴보시는 거다. 그래서 중국계 교수와 "우리가 아시아인인데 오히려 미국 사람들이 옷차림도 더 신경 쓰는구나"하면서 웃었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Skype Interview는 보통 연구실이나 지원자의 집에서 하게 되는데 그럴 때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배경이 좋지, 무엇인가 시야를 방해할 만한 것들이 있는 것을 캐주얼한 옷차림만큼이나 상당히 싫어하셨다.

 

그러고 돌이켜 보니 미국 동부는 서부와는 그 분위기가 다르고, 오히려 그런 Formality를 중시 여긴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진짜 그렇다. 

 

오늘도 나는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출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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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글을 쭉 읽어온 독자들은 나에 대해 약간의 배경지식이 생겼을 테지만, 그렇지 않을 독자를 위해 간단하게 설명하면 학부 때 나는 경영학을 전공하고, 석사 때 IT Business를 전공하였다. 그리고 한국기계연구원에서 연구기획, 평가 등의 일을 하였다. 이 배경을 다시금 설명하는 이유는 이 글에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 박사과정을 지원할 대학을 찾고 지원했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함인데, 이것이 주어진 상황이나 전공분야에 따라 상이하기에 다시 한번 정보를 제공하려고 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경영학으로 박사를 하길 원했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미국의 경우 잡을 잡았을 때 학과별로 연봉이 다르고 (경영학과의 경우 다른 학과보다 연봉이 높은 편이다.) 지금까지 쭉 경영을 전공하였으므로 박사과정도 그 연장선 상에서 다른 과를 노려보는 것 보다는 나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박사과정의 경우 경영학과가 다른 과에 비해 좀 다른 면은 수요가 공급에 비해서 많거나 유사한 정도라 포닥(Post Doc)을 대부분 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도 있었다. 

 

많은 유학 지원자 들이 바로 학생 신분(학부나 석사 신분에서)에서 박사과정을 지원하거나, 직장을 다니다가 지원을 하는데 학생 신분일 경우 지도교수님의 도움을 많이 받게 된다. 그러므로 직장인들과는 보다 나은 정보를 찾아볼 가능성이 높기에 (주로) 박사과정을 지원하는 시점에서 본인이 처해 있는 상황에 맞출 필요가 있다. 나의 경우는 석사 때 IT Business를 하였으나 당시 지도교수님이 산업공학 전공* (이공계)을 하셨던 터라 경영학 분야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전반적인 유학에는 조언을 해주셨으나 지원에 직접적인 지원을 해주시기는 어려웠다. 

 

*미국도 마찬가지인 경우도 있지만, 한국의 경영학과의 교수님들의 경우는 산업공학과 출신들이 많이 계시는데, 생산관리나 SCM과 같은 그 접점에 있는 학문분야가 있어 그렇다. 미국에서 교수로 있어보니 아주 가끔 산업공학과 출신이 경영대학으로 임용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아주 드문 경우이다. 이것이 중요할 수가 있는게 교수는 각 연구분야별로 자신의 전공분야에 특화된 학회 활동을 하는데 그 학회 활동을 통해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학문의 트렌드를 따라가는 경우가 많기에 생산관리나 SCM과 같이 산업공학과 접점이 있는 분야라고 하더라도 그 기반이 되고 접근하는 이론적 기반이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최근 논문의 경쟁이 높아지고 학제 간의 융합이 강조되면서 이러한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에 돌이켜 보건데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의 경우는 학교를 먼저 생각하기보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과 관심 분야를 바탕으로 대략 어떠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정리했다. 이것이 다른 것보다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먼저 박사과정은 적어도 인생의 4년 이상을 투자하는 외롭고 고통스럽고 긴 과정이기 때문에 그 긴 과정을 버티려면 적어도 그 공부가 내가 흥미 있고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다음은 박사과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어 원하는 교수가 된다면 아마도 남은 인생 수십 년을 그 분야에 몰두하고 연구하여야 한다는 것 때문이고, 마지막은 그 분야가 그나마 아주 생소한 분야보다 나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도 한 몫했다고 본다. 석사를 IT Business를 한 것도 프로그래밍을 심하게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컴퓨터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대략의 관심 분야를 정리할 때 Information System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석사과정 동안 쓴 맛(?)을 보기도 했고 그것보다 한국기계연구원을 다니면서 연구기획/평가를 하면서 기업의 기술전략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어 'Management of Technology', 'Technology Management', '(Technology) Innovation', 'National Innovation System' 정도로 몇 가지 키워드를 정리하였다. 그 당시 생각에는 이 분야쪽으로 전공을 한 사람이 많이 없다는 생각도 크게 작용했다. 

 

* 당시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이 시점에서 관심있는 논문을 리스트업 해보고 그 저자들의 프로파일을 찾아보는 것도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효율적인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국에서도 당시 이 분야로 아주 명확하게 강조하고 있는 학교가 많지 않아서 박사과정을 가지고 경영학과에 기술이 중심으로 되는 학교로 검색해서 대략 15개의 리스트를 정리했다. 사실 미국에 있는 친구들의 경우는 이렇게 많이 지원하지 않는데, 일단 지원하는 학교당 전형료도 만만치가 않고 (당시 $150 정도로 기억한다 학교당), 아무래도 미국에 있으므로 필요한 경우 교수를 컨택해서 바로 방문이 가능하기에 저렇게 무식하게(?) 지원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당시 박사과정을 한국에서 지원하는 다양한 커뮤니티에서의 일반적인 경우는 꽤 많은 학교를 리스트업 해서 지원을 하는데, 대략 정말 가고 싶은(좋은) 대학, 괜찮은 대학, (자신의 기준으로) 입학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대학 정도로 그룹을 나눠 각 그룹당 5개 정도의 학교를 고르면 15개가 된다. (* 아쉽지만 정확한 리스트가 없다. 10여 년이 지나서 그런 것 같다).

 

아무래도 나 역시 한국에서 교육을 받고 한국문화가 익숙한터라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아는 학교들 (내가 알 정도면 다 좋은 학교)에 좋은 위치의 학교를 고르다 보니 다 아주 좋은 학교들이 리스트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사실 미국에는 학위를 제공하는 postsecondary 학교가 2019년 기준 4,298개가 있다 (https://www.usnews.com/education/best-colleges/articles/2019-02-15/how-many-universities-are-in-the-us-and-why-that-number-is-changing). 이중에 경영학 박사과정이 있는 학교는 대략 200여 개가 된다고 한다. 최근에 online doctorates 프로그램이 늘어나는 추세이긴 하다. Online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아직 얼마나 좋은 프로그램인지 평가할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의견이다) 일단 박사과정이 있다면 나쁘진 않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대략의 학교가 정리가 되고 난 후, 각 학교마다 내가 관심이 있는 분야에 관련된 교수님들을 다시 리스트업하고 그 교수님들의 논문 Abstract를 정리하였다. 이 시점에서 동시에 진행하여야 할 것이 추천서를 써주실 추천인을 선정하고 컨택하는 부분이다.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보통 학교당 3개 혹은 그 이상을 요구하기 때문에 15개의 학교를 지원한다면 15*3=45개의 추천서를 받아야 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한 분이 일반적이 추천서를 써 주시면 학교 이름을 바꾸어 제출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내가 지원할 당시에도 이미 많은 학교들이 온라인으로 추천서를 받고 있고 간혹 Sealed 된 추천서를 별도로 추천인이 직접 보내라는 요청을 하는 경우가 있어서 미리 준비해 놓았다. 이 과정에서 참으로 교수님들께 (예전에 공부도 별로 안 하고 연락도 안 드렸었는데) 요청하는 게 민망하기도 하고 어려웠다. (평소에 잘합시다.) 이를 바탕으로 SOP(Statement of Purpose)를 작성하고, Cover letter를 작성하고, 기타 영어성적, 학부성적표, 대학원성적표, 졸업증명서 등등의 각 학교마다 필요한 서류를 정리하고 각 폴더에 담아서 Deadline에 맞게 제출하였다. 그리고 전형료도 내고... 아. 내 돈..

 

지난 편에 이야기를 나눈 바와 같이 나의 경우는 GRE와 TOEFL이 턱걸이 수준이었기에 연구활동에 중점을 두었다. 다행히 연구원이어서 논문을 한 두 개 정도 작업을 하고 있었고 학회 활동이나 논문이 저널에 리뷰 중인 것들이 있어 이러한 것들을 강조하였었다.

 

일반적으로 지원 시점은 11~12월에 대부분 마감을 하고 리뷰를 한 다음 대략 다음 해 4월 중순 즈음까지 합격자/불합격자(모든 경우에 불합격자를 통보하지는 않았음)를 통보하고 합격을 하고 수락을 하면 I-20등의 학생비자를 받기 위한 서류 작업 및 미국 대사관 인터뷰를 하고, 대략 7월이나 8월 즈음에 미국으로 넘어가 보통 8월 마지막 주부터 시작하는 가을학기부터 수업을 듣게 된다. (아주 해피한 경우에..)

 

내 기억으로는 15개의 학교를 대략 1월 달까지 지원을 마쳤으며, 그때부터 4월 말 정도까지는 피 말리는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된다. 그 전에도 도움을 많이 받지만 Gohackers 같은 사이트에서 매 분 refresh를 하며 다른 분들이 어디서 소식을 받지 않았는지 노심초사하며 정보를 확인하게 된다 (다른 사이트도 있고, 해외에도 유사한 admission posting 사이트가 있긴 하지만 나는 Gohackers 사이트를 주로 이용하였음) 이때 학교에 따라서 (대부분 좋은 학교들의 경우는) Skype 인터뷰 요청을 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진행사항이나 어떤 질문을 주고받았는지에 대해서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고 준비할 수 있다. 어드미션을 받은 분들이 자신의 스펙과 Admission을 받는 상황을 정리해서 올려주는데 참고가 많이 된다. (그리고 부러워 죽는다.).

 

* 결론적인 이야기 이겠지만 이러한 스펙이 일반적으로는 상관관계를 보이나 절대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학점이나 영어점수가 조금 모자라더라도 자신의 연구활동에 중점을 둔다거나 하여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보통 결과는 우편으로 오는데 당시에도 조금 의아해했는데 사실 미국의 경우 10여 년이 지난 아직도 주요한 서류나 일들이 우편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Liability 이슈가 있어서 그런 거 일 수도 있으나 솔직히 미국 생활한 지가 좀 되었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2월부터 하나둘 편지가 날아오기 시작하는데, 보통은 첫 줄을 보면 결과를 유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Dear XXX, Thank you for... "로 시작하면 불합격이고 (지원해줘서 고맙다. 너의 자격은 훌륭하나 올해 몇 명을 안 뽑았는데 아주 경쟁력 있는 친구들이 많이 지원했다. 함께 하지 못해 아쉽고 앞으로 너의 앞길이 잘되길 빈다 - 정도의 아주 예의 바른 형식적인 편지를 받는다), 반면에 "Dear XXX, Congratulation!..."로 시작하면 합격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그렇게 주말을 영어학원을 다니고 야근하고 돌아와 새벽까지 단어 외우고,  논문 작업을 하고 15군데에 비싼 전형료를 내고 교수님들을 괴롭혀 가면서 추천서를 받아 지원해서 어떻게 되었어?라고 많은 독자들이 물어보시리라 생각한다. 

 

결론은 0.5승 14패.

 

0.5승이라고 쓴 이유는 2월 경으로 기억하는데 SUNY Buffalo에서 Admission을 받았는데 '네 돈 내고 올 거면 우리가 받아줄게!'였다.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대부분의 박사과정은 등록금 면제에 생활비를 지원하는데, 내가 준비한 것이 부족한 것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기쁘지만 기쁘지 않은... 당시에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었고, 집에서는 네가 그렇게 고생해서 준비했고 꿈꾼 건데 가라고 하셨는데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부담이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당시 ICU에 막 부임하셨던 SUNY Buffalo 교수님이 계셔서 찾아가서 물어보기도 했는데 안타깝다고 하시며 금전적 부담이 클 거라고 말씀을 해주셨다. 이때가 2007년.

 

군대를 제대하고 1999년에 편입을 생각하며 미국에서 공부하는걸 꿈꿨고 시간이 흘러 엄청나게 노력을 했는데도 2007년에 받아 든 결과가 이렇다니, 아마 그 날 소주를 꽤 많이 마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면서 결국 그 Admission을 포기한다 (1차 실패).

 

그래서 어떻게 된 건가? 하면서 독자들이 물으실 것 같다. 

 

그 이후 2008년에 다시 준비하게 되는데 GRE는 유효기간이 5년이라 괜찮았으니 TOEFL의 경우 2년이라 다시 영어시험부터 위의 과정을 다시 거치게 된다. 그래도 한번 경험을 해봤다고 2008년에 준비할 때는 연구 쪽으로 더 정밀하게 준비를 하고 학교도 막연히 이름을 따르기보다는 내 분야에 맞게 micro targeting을 하게 된다. 지원한 학교의 수도 훨씬 줄이고..

 

그러면서 찾았던 학교가 Resselaer Polytechnic Insitute 지금은 경영대의 이름이 바뀌었지만 당시 Entrepreneurship을 강조하면서 경영대의 이름이 Lally School of Management and Technology 였고 혁신 쪽으로 연구하시는 교수님이 몇 분 계셨다. 그리고 또 새롭게 지원한 학교가 Stevens Institute of Technology, 그리고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의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 프로그램 (당시에는 이런 이름이었던 것 같다. 현재는 Science, Technology & Innovation Policy)을 포함한 몇 학교에 다시 지원을 하게 되었다. (2차 시도)

 

영어점수는 비슷했고, 학점도 변화가 없었으나 연구 부분을 좀 더 정밀하게 준비를 해서 지원을 했었는데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1. 제일 처음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의 S&T Policy에서 합격증을 받았으나 여기에서도 펀딩을 찾아보려고 할 텐데 일단은 펀딩을 줄 수 없다고 했다. 2년 전의 악몽이 떠오르는 순간이 아닐 수가 없었다. 

   2. 그렇게 좌절하고 있을 때 4월 즈음 Stevens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학비 면제와 약 $20,000불의 생활비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처음으로 제대로 된 합격증을 받게 된다. 

 

그러나! 당시에 나는 결혼을 한 상태였고, Stevens Institute of Technology가 위치한 뉴저지의 Hoboken은 맨해튼이 내려다 보니는 허드슨 강 바로 옆으로 집값을 포함한 물가가 어마어마 한 곳이었다. 조그만 방을 얻으면 월세가 당시 월 $2,000 불이 넘어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학비 면제와 생활비를 받는다 하더라도 부부가 살아야 하는 생활비와 혹시나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리고 의료보험은?이라고 계산을 해보니 답이 안 나오는 곳이었다. (보통 Stipend 산정은 학생 홀로 빠듯하게 살 정도로 지원한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Admission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못 갈 것 같다는 답을 받아 들곤 다시 좌절하며 소주를 마셨다. 

 

다시 한번 1999년부터 10년을 준비했는데 결국 못 가는 건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음) 하는 마음에 쓰디쓴 소주를 마시며, 상실감을 달랠 때 당시 신혼집으로 있던 전셋집 주인이 전셋값을 말도 안되게 올려 달라고 했다. 10년의 꿈이 날아가 열 받은 상황이었기에 투덜대며 바로 일주일 만에 집을 사버렸다. (내 인생에 첫 내 집이자 가장 큰 지름 물론, 대부분은 은행 돈). 잔금 정리와 이사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며 그 상실감을 털고 있던 어느 날 현충일을 맞이하여 6월 6일 할아버지를 맞이 하러 가서 (한국전쟁 때 전사하시어 서울 국립묘지에 계심) 아마 미국은 못 가고 한국에서 자주 뵙겠네요 하고 인사하고 온 다음날 회사에서 띵하니 이메일을 받게 되는데 Rensselaer Polytechnic Institute에서 학비 면제에 Stipend를 지원받는 조건으로 Admission을 받게 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보통은 4월 말이 되면 대부분은 합격자가 정해지고 정리가 되는데 아마도 그전에 합격을 시켰던 학생이 나중에 다른 학교로 가버렸던지 하는 등의 이슈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6월 7일에 합격자 통보를 받게 된다. 

 

그렇게 1999년부터 꾸었던 꿈이 2009년에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물론, 야심 차게 질렀던 나의 첫 집은 결국 한 달만 살아보고 미국행을 하게 된 건 또 웃긴 사실 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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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곳에 온 이후로, 정말로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서,
드디어 New York State의 Legal driver가 되었다.

뉴욕주에서의 면허는,
1. 필기시험 (local DMV)
2. 5-hours driving education
3. road test
로 구성되어 있는데,

1,2,번이야 별 문제가 없었는데,
그놈의 Stop sign과 조금 운전자 중심의 판단이 필요한 신호체계로
한번 떨어졌었다.

뭐 10년 운전해도 떨어진다니,
그냥 위안을 해보지만, 그래도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운전실력과는 별개의 문제라.

1. Parallel Parking : 좌측, blind spot을 살피고 (고개를 돌려서) 그리고 보조석에 손을 올리고,
                             몸을 완전히 틀어 뒷 창문을 주시하면서 파킹을 해야하고, 조금 전진후 정지.
2. Left and Right turn : 이런게 있는지도 몰랐는데, 우회전시는 인도에 바짝 붙어서 회전을 해야함 (회전반경을 최소화)
                                좌회전시는 자신의 차선에서 죽 진진을 하여 좌회전 진입하는 차선까지 도달하여 좌회전 해야함 (회전반경을 최대화)
                                - 좀 애매한 부분이지만, 신호등이 있던 없던 생각하면서 시험에 임해야함
3. Stop sign : 제일 황당한 부분이었음.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서는 Stop sign이 없으면 속도를 줄이거나 서면 안됨 (직진시)
                    회전시는 서서 확인 하지말고 속도를 줄이면서 바로 진입 해야함
                    (아마도 가로지는 차선 line이 stop 사인이 있을 듯.) - all way stop이 아닌경우.
                    Stop sign시는 듣기로는 stop sign전에서 서야한다고 들었지만, 실제로는 stop sign이 있는 인도 전에서 서야함.
                    (횡단 보도의 경우는 그전에).
4. 3 point turn : 정지 상태에서 (우회전 깜빡이 켜고 정지한 후) 다시 좌회전 깜박이 켜고 blind spot 확인 후, 서서히 좌회전 진입, 
                      후진시, 다시 뒷쪽 윈도우를 통해서 후진하고, 끝까지 차를 후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앞에 회전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정도 확인 후 turn 함.

Troy에서 봤던 면허 검사관은 2명이었는데, 첫번째 아저씨는 너무 tight 했던 것 같다.
그분이 걸리지 않기를 바랬는데 더 무시무시한 흑인 아저씨가 와서 괜시리 긴장했는데,
오히려 하나하나 내 실수를 바로 잡아 주워서 주위사항을 잘 기억할 수 있었다.
회전의 경우 첫번째 지적을 한후, 그 다음 부터 그것을 상기하면서 하니깐 연신 "Good Good"하면서,
운전면허를 알려주는 강사처럼 잘 설명을 해주었음.

나도 잘 알겠다고, 오히려 묻기도 하고,
내가 잘못알고 있는 사항들을 교정하였다.

결국 25점 감점으로 (30점 탈락) 합격~!!
지난번 85점 감점 받았는데, stop sign없는 곳에서 정지 2회 (아저씨가 버럭! 함) ,
그리고 보행자가 먼저 지나가라고 손짓하는 걸 그냥 쭉 따라 갔더니,
보행자가 어떠한 신호를 해도 그걸 따라가면 안된다고 감점.

뭐, 국제면허증 expire도 되어가고, 보험 갱신도 다가와 나름 긴장했는데,
좋은 사람을 만나서 잘 마무리 지을수 있어,
미국 생활 적응에 다시 한걸음 다가갈 수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운전면허지만,
꽤나 힘드네,

한국에서 그러더니.^_^;;
다시 또 시험을 위해 화이팅.

p.s. 그리고 완연한 봄이 정말 웃통 벗고, 조깅하고 싶은..그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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