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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 스테잇 뉴욕의 가을

 

미국의 '업스테잇 NY'이라고 불리는 뉴욕의 북부는 캐나다에 접하고 있기에 가을이 빨리 온다. 우리가 한 번 즘은 들었던 '뉴욕(맨해튼)의 가을'도 멋있지만, 나는 업스테잇 NY을 몰랐으니 그 가을을 알 리가 없었다. 뉴욕주의 중북부 - 동쪽으로 매사추세츠와 붙어 있다 - 는 산과 나무가 많아 가을이 참 아름답다. 최근에 뉴욕주에서 가장 오래된 숲을 발견했다고 하니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33080) 우리가 일반적으로 뉴욕하면 맨해튼(혹은 뉴욕시티)을 뉴욕이라고 칭하기에는 뉴욕주는 정말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정신없이 여름을 보내고 맞이한 가을은 참 아름다웠는데 캠퍼스도 온갖 낙엽들로 각종 색깔이 물들고, 뒤에 Frear Park를 끼고 있는 아파트도 온갖 낙엽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런 광경을 바라보며, 커피 한잔을 마시며 멍하니 사색(멍 때리기)하기 참 좋았다. 그래서 주변을 걸으면서 한 주에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기도 하였다.

 

봄에도 이쁘지만, 가을이 예쁜 Lally 건물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기 딱 좋았던 가을

화룡점정 자동차 구입

그 즈음, 차를 구매하기로 한다. 룸메이트 차로 연명하고는 있었지만, 언젠가 나도 차가 필요할 테고 특히 연말이 되면 와이프가 미국으로 넘어오니 더 이상 버스를 타고 다니기에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마다 조금 다를 수는 있지만, 보통은 필기시험을 치고 나면 임시운전면허증이 나오고 그 이후에 강의를 한번 듣고, 실기시험을 치고 정식 운전면허증을 갖게 된다. 국제면허증이 있긴 했지만, 어차피 유효기간이 1년이라 신분증을 위해서 매일 여권을 들고 다닐 수 없는 관계로 필수적이라 생각해서 오자마자 한 일 중에 하나는 바로 필기시험을 쳐서 임시면허증을 받는 것이다. 필기시험은 까다롭지 않았고 DMV (Department of Motor Vehicles, 혹은 MVA - Motor Vehicle Administration) 웹사이트를 통해 필기시험 문제를 보고 공부를 할 수 있다. 몇 가지 헷갈리는 게 있는데 큰 문제는 없다. Troy에 있는 DMV는 그리 붐비는 편이 아니라서 바로 사진을 찍고 (이 사진이 운전면허증에 쓰이는 사진임) 시험을 칠 수 있었고 한쪽 구석에 아주 오래된 칸막이 책상에 앉아서 금방 시험을 칠 수 있다. 얼마 안 되어 임시면허증이 나왔다.

 

학기가 정신없이 흘러가고 조금 미국생활이 적응이 되었을 때 즈음 차를 구매하기로 한다. 미국에서 차량을 구매할 때는 보통 중고차를 살 것인지 새 차를 살 것인지부터 고민을 하는데, 나의 경우는 와이프가 오게 되면 대부분 몰 것이라 수리비며 기타 발생할 불확실성을 제거하고자 그냥 새 차를 사기로 한다. 지금까지도 중고차를 사본 적은 없지만 구매해 본 사람들은 또 꽤 괜찮다고 들었다.

 

룸메이트는 차를 참 좋아해서 신중하게 고르고 이 때를 이용하여 자신이 타고 싶었던 차 브랜드 딜러샵에 가서 타보고 싶은 차를 실컷 타보기도 했다고 했다. 그리고 전화를 하면 픽업하러 오기도 그리고 끝나면 집 앞에 내려주기도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어디 전화해서 통화를 할 자신이 없었기에, 같이 수업을 듣는 미국 친구 Tracy에게 함께 해줄 수 있냐며 부탁했다. 이 친구는 미국 정착에 참 도움을 많이 주었는데, 내가 안 되는 영어로 수학을 가르쳐 주고 그 친구는 나의 정착을 도와주었다. 박사과정에 진학하기 전에 지역 케이블 회사에서 광고영업을 했던 경력이라 아는 사람이 많았고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카쇼핑을 하기로 한 날 아침에 룸메이트에게 "오늘 차 사러 갈 거야" 했더니 "많이 타보세요"라며 학교를 향했고, 수업이 끝나고 나서 Tracy와 함께 먼저 현대로 갔다. 현대로 간 이유는 소위 가성비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는데, 실제 가보니 가격 흥정이 잘 안되었다. (Tracy가 아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다른 현대와 몇 군데 딜러를 돌았는데 몸만 피곤하고 소득이 없었다. 그러던 그 친구가 "다른 브랜드는 안돼?"라고 하는 것이다. "아니 뭐 특별히 선호하는 건 없다"라고 하니 혼다 딜러를 알고 있다며, 괜찮냐고 물어본다. 이미 좀 지친 상태라 그러자고 하니 전화를 해보더니 제법 할인을 해줄 것 같다며 가보잔다. 그리고 실제로 갔더니 전년도 모델을 꽤나 할인을 해준다고 하기에 테스트 드라이브를 해본다. 괜찮다. Tracy가 단도직입적으로 너의 best offer를 달라고 하자 그 딜러는 제법 할인된 가격이라며 더 이상 해줄 수 없다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잠시 자리를 비켜 달라더니 Tracy가 나에게 "괜찮은 딜인 것 같다"라고 말하며 인터넷을 확인할 수 없었기에 (스마트폰 없었음) 룸메이트에게 전화를 걸어서 가격을 한번 봐달라고 했다. 잠시 후 수화기 너머로 "형 괜찮은 것 같은데요" 하기에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을 해버린다. 그렇게 얼떨결에 구매한 Honda Accord. 집에 돌아가니,

 

룸메이트: "형 그래서 그 차 샀어요?"

나: "응"

룸메이트: "반나절 만에? 하며 웃는다."

 

그렇다. 나는 차의 디자인이 예쁘기만 하면 그렇게 까다로운 편은 아니라서 반나절 만에 사버린다. 물론 한국에서 저축한 돈의 반이 한꺼번에 날라가 버렸다. 리스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냥 현금으로 사버렸다. (신용점수도 거의 없었기에 옵션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거금을 보내야 했기에 일주일 후에 차를 픽업했다. 

 

이제 내 발이 생겼다.

 

이제는 이름도 기억안나지만 감격적인 순간이라 딜러로부터 차를 인수하는 날

김연아

한인 대학원생 수가 많지 않았던 RPI의 대학원생 (석사, 박사) 동기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나의 학생들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특히 박사과정의 경우는 적어도 4년 이상이 걸리는 긴 시간을 공부해야 하므로 육체적 건강은 물론 심리적 안정도 필요하다. 더군다나 익숙하지 않은 미국 생활이니 더욱더 그럴 수도 있고, 하루하루가 언어소통의 문제에서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으니 계속해서 긴장의 연속이다. 그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주말이면 한인 학생들끼리 모여서 같이 밥도 해 먹고 끝나면 맥주 한잔에 이런저런 한 주 동안 자신이 했던 바보짓(외국인으로서 당연히 실수가 많다)을 공유하고 웃고 떠들며 스트레스를 보냈는데, 

 

그러다가 한 명이 정보를 공유한다. "김연아가 온다는데요?" 웅성웅성... 남학생이 대부분이었던 주말모임에서 한 명이 김연아가 경기를 위해서 Lake Placid에서 열리는 2009 Skate America (2009년 11월 13일 ~ 15일) 정보를 공유한 것이다. Troy에서 Lake Placid는 2시간가량 떨어져 있었는데, 룸메이트가 "형 새 차로 한번 가시죠" 한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김연아의 연기를 보러 가게 된 것이다. 미국에 와서 처음 학교가 있는 동네 바깥을 나가보기로 한 것이다. 

 

이 편을 쓰면서 당시에 연기를 유투브에서 찾아보았는데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당시 김연아가 19살이라고 하니 기량이 한창 오르고 있을 때였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연기라 더욱더 좋았다. 둘째 날 Long 프로그램 시작할 때 '김연아 파이팅!'을 혼자 외치는 소리가 장내에 쩌렁쩌렁 울려 함께 갔던 친구들에게 '왜 혼자면 파이팅하냐'며 구박을 받기도 했던.. 아래 동영상 링크에서 32분 10초 경에 나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bRCPgHhtcYg)

 

여기서 부터는 당시에 썼던 블로그에서 가져온다.

 

=====

 

11월 13~15일까지 NY주 Lake Placid에서 열린 2009 Skate America 경기

김연아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좌석을 알아보고 가게 된 곳,

가는 길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자연을 마음껏 느낄 수 있었던 곳

그동안 3달동안 한 번도 나가보지 못했던 Troy를 벗어나 오랜만에 머리를 식히러 잠시 외도를 했고,

그동안 시내주행만 하던 차도 한번 쌩쌩 밟아줘야 하고 

이런저런 핑계로 떠난 1박 2일 여행

 

일단 김연아 선수는 정말 너무 이뻐 보였고 역시 국민동생으로 칭호를 받을만한,

연기도 정말 일품인, 첫날 세계신기록이 부담스러웠던지, 

둘째 날 연기가 아쉽긴 했지만, 연습 때부터 컨디션이 좀 나 빠보였는데,

그래도 잘한 듯, 앞으로 조금만 가다듬으면 정말 "perfect"이 될 듯,

여기저기 멀리서 김연아 선수를 응원하러 온 관광객들로 북적북적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던

잠시 머리 식힌 경험치 고는 너무나 값졌던 여행

 

내년에 또 하게 되거든,

부인과 손잡고 가봐야 할 필수 코스~!!

 

출처: https://07701.tistory.com/category/My life in Troy? page=2 [강박의 2 cents]

 

Troy에서 Lake Placid까지.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가는 여행

올리가는 I-87 이길로 쭉 올라가면 캐나다 몬트리올이 나온다. 아침부터 비가 억수같이 내려주시고

동형 군이 찍어준 나의 운전 샷, 나의 애마와 함께

온갖 잡다한 버튼이 많은 나의 애마와 함께,

2시간 좀 넘게 걸려 도착한 Lake Placid는 1932년, 1980년 동계올림픽을 치른 곳으로, 상당히 오래되었지만, 나름 고풍스러운 작은 도시

여기는 오늘 김연아가 경기할 경기장 좌석배치도

도시가 아기자기 한 집들로 시내가 이루어져 있고, 걸어서 10분이면 다 돌아볼 만큼, 작으나 옆에 호수를 끼고 있어 아름다운 도시

관광도시이다 보니 기념품 샵들이 많긴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서 그냥 패스.

이 시골에도 있는 스타벅스가 왜 우리 동네에는 없단 말이냐.

저녁 먹으러 임의로 고른 피자집, 엄청나게 큰 피자 2개 시켜서 4명이나 나눠먹었다. 뒤에 보이시는 분은 아마 김연아 보러 오신 분이신 듯

오늘 구경하게 될 김연아 표. 사실은 내일 표긴 하지만, 그거나 그거나

밥 먹고 간단하게 스타벅스 한잔, 뭐 돈은 없고 춥지만 그래도 커피 한잔이 아니면 공부도 집중도 안 되는 나는 이제 미국 사람?

같이 동행했던 룸메 동형 군, 카이스트 천재소녀 미지 양, 기계과 신랑감 후보 1순위 준규 씨.

이곳은 곧 김연아가 나올 경기장 모습

언제 와서 저렇게 김연아 플래카드를 많이도 붙여 놨더라. 대부분 김연아..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물론 한국사람들이 붙였겠지만

심사 위원석, 한국 분도 한분 계시고

 

세계기록을 세우고, 인터뷰하는 김연아.

 

이번에 가서 새롭게 부각된 인물, 오서 코치 정말 매너 좋고, 인상 좋고 저 아이스 차 나간다고 손수 문 열어주고, 정말 멋진 코치인 듯

 

다음날 아침 모텔 앞 풍경

뉴욕 북쪽에서 볼 수 있는 산세.. 저 멀리 스키장도 보이고,

아침 공기가 너무너무 상쾌하였던

다음날 아침은 샌드위치 46가지의 샌드위치, 정말 시키기 힘들다 ㅡ.ㅡ;;

나가는 길에 한컷.

발이 되어주고 처음으로 장거리를 운행한 내차

동형 군이 아침에 일어나서 여러 각도에서 찍어주었네

 

우리가 묵었던 모텔, 그냥 막 찾아간 것 치고 깔끔하고, 저렴한 가격에 잘 쉴 수 있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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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학기는 물론 드라마로 가득하지만 생각보다는 잘 따라가고 있었다. 매일 수업을 하고 도서관을 전전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이 반복되어 사실 학교 외에 다른 걸 경험하고 그럴 여유가 없었다. 더욱이 나는 나이 들어서 온 게 아닌가. 여기서 돌릴 수 없기에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한국에서 와이프는 집을 정리하고 있었다. 집의 판매는 부동산에게 부탁을 했고, 문제는 나머지 신혼가구 들을 비롯한 기타의 것들을 처분하고 이사를 직장을 다니면서 준비한다고 매일 힘들어 했기에 나도 여기서 힘들다고 말을 전할 수는 없었다. 그저 한 발짝 한 발짝 가자고 생각을 하고 있으나 정작 심장과 머릿속은 오만가지 생각들로 가득하다. 

 

학기가 시작할 즈음에 갑자기 메일을 하나 받았다. 다른 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포닥을 찾고 있었는데 RPI에서 오퍼를 받았다고 집을 구하러 잠시 들리는데 혹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냐는 메일이었다. 나는 속으로 '미국에 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내가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니 멋진걸?' 하는 생각이 제일 처음 들었다. 그래서 그분에게 물론이죠 하면서 짧지만 그간 동네를 돌아보면서 알게 된 정보들을 공유하였는데, 얼마 후 자신이 아파트 오피스에 연락해서 몇 군데를 보기로 했는데 혹시 하루 묵을 수 있냐는 연락이 왔다. 알고 보니 나이도 동갑이었고 얼마 전 내가 어려웠을 때 도움을 받았던 우연한 인연들 기억이 나 그러시라고 했고, 룸 에이트도 Okay 하였다. 

 

그 날이 다가왔고 그 분은 미국에서 오래 사신 분이라 그런지 능숙하게 아파트를 다 봤다며 다시 한번 감사하다며 연신 인사를 한다. 그러면서 '하루 묵게 해 주시는 것도 고마운데 저녁에 맥주 한 잔 하실까요?' 한다. 그래서 알게 된 몇몇 대학원생 들을 불러서 함께 정말 아무것도 없는 빈 거실 바닥에 신문을 깔고 앉아 윙과 피자를 사고 맥주를 사서 조촐한 식사를 한다. 

 

알고 보니 그분은 나와 같은 출연연구원 출신에 스위스 등에서 공부도 하고, 미국에 와서 박사를 끝낸 아주 재미있는 입담을 가진 분이었다. 나도 준비하느라 정신없었고, 하루하루 겨우겨우 수업을 따라가다 오랜만에 수다를 떠니 기분이 확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미국 박사과정에서 유의할 점 (전공은 달랐지만), 미국 생활의 어려움, 내가 했던 미국에서 했던 실수 들 이야기를 하면서 밤이 깊어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미국 박사과정을 하면서 아주 달콤한 정보를 제공했던 '마일모아' 홈페이지(www.milemoa.com)를 알려주며 꼭 해보라고 미국에서 크레디트 카드를 만드는 방법을 강의까지 하고 가셨다. 재미있는 사연과 유용한 정보가 가득했던 그 분과 한참을 이야기하던 중,

 

내가 나도 결혼을 했고, 지금은 와이프가 한국에서 집을 정리하고 있는데 겨울에 올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할 말이 많은지 가만히 듣고 있다가 "아! 제가 돌싱이거든요" 하시는거다. 당시 나는 TV를 본 지도 오래되었고 한국에서 '돌싱'이라는 단어가 있는지도 모를 때 여서 대략 말은 안 되지만 '멋진 싱글' 같은 표현으로 생각하고 무던히 넘겼다. 근데 아무리 들어봐도 이야기가 이상한 거다. 그래서 조심히 물어봤다. "근데 돌싱이 뭐예요?" 그랬더니 그분이 "아 모르셨구나 요즘 유행하는 말인데 '돌아온 싱글'이요". 설명을 해줘도 내가 못 알아듣는다 "돌아온 싱글이요?" 했더니 웃으며 "아 저 이혼했어요" 하는 거다. 순간 정막이.......

 

곧 그 분은 괜찮다고 오래전 일이라고 하시면서 내가 결혼해서 와이프가 온다고 하니, 와이프에게 잘해주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본인의 목표를 위해서 오면 환경이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데, 결혼해서 무작정 따라오는 경우는 남편이든 와이프든 학교를 가지 않는 다른 한쪽은 극심한 우울증을 겪는다고 했다. 그분의 와이프도 미국에 온 지 6개월 만에 여기서 못살겠다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결국 이혼을 하셨다고 했다. '둥!' 동공 지진....

 

그렇다, 내 꿈인 박사과정을 한다고 그렇게 준비하고 결국 여기까지 왔는데 진짜 그 생각은 진지하게 하지 못한 것이다. 그날 저녁 자주 가는 Gohackers의 게시판을 뒤지다 보니 '배우자 생생 일기'라는 게시판이 있었고 거기에는 온갖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이야기과 푸념들로 가득한 것이다. '아.. 어쩌지?'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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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를 한 바 있지만, 결혼을 하고 유학을 오느냐 마느냐는 개인의 선택이고 각 선택에 따라서 장단점이 있기에 무엇이 정답이다라고 이야기 하기는 어렵다. 다만, 결혼을 하고 유학을 나오는 분들의 경우는 단순히 자신 만의 박사과정에 대한 계획도 중요하지만 배우자가 유학생활 기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미리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하는 것을 추천드린다. 별 준비 없이 오신다면 어려움이 많을 것이고, 종종 포닥이라던지 박사과정생 중에서 결혼한 다른 커플 들과 잘 지내면서 이겨내는 방법도 있긴 하나, 자칫 공부를 하지 않는 배우자의 경우에는 쉽게 자신이 뒤쳐지는 느낌과 향수병, 우울증 등이 겹쳐 오는 경우가 흔하고 배우자가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본인의 공부에도 지장을 줄 수도 있으니 특히, 외국생활 경험이 없는 부부의 경우에는 많은 준비와 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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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독자분들이 '웬 호들갑'이냐고 할 수는 있겠지만, 제대로 된 외국 생활을 해본 적도 없고 젊은 나이도 아닌데 (33살에 미국으로 오게 됨) 혼자가 아니라 와이프가 올 때까지 준비해하고 알아야 할 것들이 나에게는 참 많았다. 이제 겨우 집을 마련하고 학교를 왔다 갔다 하고 필요한 것들을 살 수 있을 정도로 적응이 되었다 (곧 학생증으로 버스를 공짜로 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겨우 첫걸음마를 뗐을 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온지 일주일이 지났는데 밥 한 끼 제대로 차려먹지 못했다. (계속해서 라면만 먹고 있었다). 아! 일단 밥솥과 쌀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검색해보니 Hmart에서 전기밥솥과 쌀을 배송해주는 걸 알게 되어 재빨리 주문을 완료하였다. 한국에는 다양한 브랜드의 밥솥도 있고 가격도 다양하지만 일단 미국에서 한국기업의 밥솥은 비싸서, 선뜻 결제를 하지 못하다가 이러다 굶어 죽을 것 같아서 주문 쌀과 함께 완료한다. 며칠 후, 드디어 밥솥과 쌀이 배송이 되었다.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마주하듯이 학교를 마치고 오자 집 앞에 큰 박스가 떡하니 놓여 있다. (나는 입맛이 완전 한국식이다. 그래서 부모님도 미국에 간다니 제일 처음 하신 말씀이 "어떻게 먹고사느냐?"였다). 몸을 휘날려 박스를 뜯고 쌀을 씻어 처음 밥을 짓는다. 반찬이 당연히 있을 리가 없다. 와이프가 싸준 볶음 고추장과 계란 프라이를 하나 하여 정말 개눈 감추듯 두 그릇을 비워버린다. 생각해보라, 해외 출장을 가도 하루에 한 끼는 쌀과 고춧가루가 들어가야 하는 사람이 거의 10일 동안 쌀을 먹지 못하였다니.. (실제로 첫 10일 만에 몸무게가 7 Kg 정도 빠졌었다). 이제 겨우 사람다운 삶을 살겠구나.

 

내 인생에 이보다 기다린 택배 박스가 없었다. (박스 뒤로 당시 나의 모든 살림이 보인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니 왜 이거 딸랑 두 개만 샀을까 싶다. 반찬도 사지..(밥솥이 300불이 넘어서 선뜻 살 수가 없었음) 
(급속) 밥이 되는 10여 분이 마치 10일 같이 느껴지는

 

이렇게 급하게 밥을 지어먹고 해결하긴 했지만,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밥을 먹자 곧 김치를 먹고 싶다. 아직 뭐가 뭔지도 모르는데 주변에 한국사람 (한국 유학생 포함)과 가게는 물론 아무런 정보가 없다. 그런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또 다른 인연을 만난다.

 

우연한 만남 2 ,한국사람이다!, 그리고 김치다!.

지난 편에서 집을 계약하고 돌아가는 방법을 찾지 못하다가 우연히 만난 외국인 친구를 만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썼다. 인생을 가만히 돌이켜보면 조금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게 항상 어떠한 길이 생기는 것 같다. 그렇게 김치를 그리워하며 학교를 갔더니 박사과정 담당 스텝 할머니가 나를 부른다. "여기 한국 방문 연구원이 왔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교수님이 안식년을 오셨나?' , '이 곳 시골까지 오셨네'라는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러 갔더니 그 할머니가 생각보다 젊은(?) 학생같이 보이는 한 한국사람을 데리고 나온다. 

 

나: "어.. 안녕하세요. 한국분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어디 교수님이신가요?" 하며 너무 젊어보여 긴가민가 하는 마음에 인사를 청했다.

P: "안녕하세요. 네 저 교수는 아니구요. 지금 석사과정에 있는데 방문 연구원으로 왔습니다." 하는 것이다.

 

그렇게 박승호 연구원을 만났다. 당시 박 연구원은 석사과정에 있었는데 학교에서 방문 연구하는 기회를 줘서 기술경영/혁신 쪽에 관심이 있어 Dr. Susan Sanderson 교수를 컨택해서 미국에 오게 된 것이다. 어쨌든 '첫 생각이 한국사람이다. 정말 반갑다' 그렇다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 되는 게 맞다. 그렇게 잠시 통성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니 박 연구원이 "형, 그럼 오늘 저녁에 밥 먹으러 오실래요?" 하면서 "제가 김치찌개 끓여드릴게요"하는 것이다. 0.5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가 '김치찌개'라는 말에 무너져 버렸다. "근데 제가 차가 없는데 어떻게 갈까요?" 했더니 직접 라이드를 하러 오겠단다. 김치찌개도 감지덕지인데 라이드까지! 마음속에서 감동의 도가니다. 

 

알고 보니 박 연구원은 이곳으로 오게 되면서 당시 박사과정이었던 다른 한국분과 연락이 되었는데 그 박사과정 분이 한국에 잠시 방문하는 관계로 Sublet(렌트한 방을 다시 렌트함)을 받아서 다른 한국분과 함께 아파트를 쓰고 있었다. 동기가 될 대학원생을 한국에서 잠시 만났지만 미국에서 이미 대학원을 다니는 분들을 만난다는 마음에 너무나 궁금한 것도 많고 하여 나에게는 기쁨이 배가 되었다. 서글서글한 성격이 좋았던 박 연구원은 능숙한 솜씨로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어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내 동공에 지진이 나기 시작했다. '김치다!'.

 

그렇게 둘은 갓지은 밥과 김치찌개에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반찬 몇 가지를 꺼내어 마치 최후의 만찬 같은 최초의 만찬을 가졌다. 1인당 수 십만 원 하는 Fine dining의 밥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그러면서 미국에 왜 왔는데,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비슷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곧 친해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형 자주 봬요' 하면서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날 밤은 아마 내 생애 손꼽을 만큼 행복한 얼굴로 잠에 들지 않았을까.

 

룸메이트가 오다.

박 연구원을 알게되어 진짜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 일단 누군가 물어볼 사람이 있어 좋았고, 필요하면 장 보러 가자며 차로 데려다 주니 기동력이 생겨 더 좋았다. 그즈음 출국 모임에서 만나 함께 지내기로 했던 룸메이트가 Texas에서 차를 끌고 Troy로 오고 있었다. 이 친구는 당시 Texas Austin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기계과 석사과정으로 입학하여 와이프가 올 때까지 잠시 같이 지내기로 하였다. 어차피 나 역시 돈을 아껴야 하고 미국을 좀 아는 사람이 필요했다. 

 

꼬박 이틀을 운전하여 나타난 룸메이트를 뒤가 안보일만큼 한 차 가득 살림살이를 싣고 도착했다. 그러면서 집을 둘러보더니 "형! 필요한게 많을 것 같은데요" 한다. 그날부터 바로 인터넷을 뒤져 필요한 중고 가구를 구매하고, 부엌에 필요한 집기들도 사기 시작한다. 마침 한 한국분이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어 가진 가구를 내어놓기에 U-Haul (트럭)을 빌려 그 집의 모든 가구를 가져온다. 그러면서 방안이 하나둘 정리가 되기 시작한다. 이제 제법 사람 사는 것 같군.

 

전..

그리고

후, 이제 뭔가 사람사는 것 같고 안정되어 보인다.
중고로 산 가구들, 의자는 샀는데 책상은 아직 없다.
곧 어디서 책상도 구해와 이제 뭔가 사람사는 것 같다.

미국 생활을 해본 룸메이트가 생기자 살림도 하나둘 늘어나고 이것저것 조언을 많이 해준다. 나는 그냥 따라다니며 필요한 것들을 사다보니 어느새 제법 사람이 살만한 집을 꾸밀 수 있었고, 그때 즈음부터 학교에서도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된다. 학교 오리엔테이션은 많이들 별 신경을 안 쓰는 분들도 많을 테지만 외국생활이 전무할 경우는 시간을 쓰실 것을 추천드린다. 아울러 박사과정의 경우 Teaching Assistantship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즈음에 스피킹 시험을 치게 된다. RPI 경영학과의 경우는 TA를 제공하지 않는데 일괄적으로 스피킹 시험을 치게 했고, 점수를 받아 들자 또 현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 이게 내 영어실력이구나. 그 창피한 점수로 인해서 첫 일 년 동안 영어수업을 들어야 했다. RPI는 학교가 크지 않아 외부에 제공하는 ESL 프로그램이 없고 TA를 지원하기 위한 수업을 몇 개 개설하여 제공하였는데, 결론적으로는 이때 들었던 수업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제 기다리던 첫 "영어"수업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뭔가 적응된 내 모습
박사과정 라운지에서 바라본 전경

 

나 같은 경우는 워낙 배경지식이 없어 하나하나 해나가는데 급급해 제대로 생각을 못했는데, 지금에서 돌이켜 보건데 이 기간에 중요한 것이 Primary care를 받을 수 있는 Family Doctor를 선정하면 좋다. 한국은 이 Family Doctor 제도가 익숙지 않은데 미국의 경우는 Family Doctor를 두면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된다 (물론 의료보험에 따라서 부담해야 하는 Co-pay가 만만치 않긴 하다). 특히, 결혼을 해서 가족이 오는 경우와 출산을 생각하고 있는 경우라면 이 부분을 알아두면 여러모로 많이 도움이 된다. 동네에 따라서 Family Doctor가 새로운 환자를 받지 않은 경우도 많고, 아주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럴 경우 Urgent care나 Emergency room를 이용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둘 중에 차이는 Urgent care는 즉시 목숨에 영향이 없는 경우, Emergency room의 경우는 목숨에 영향이 갈 정도로 구분하면 편하리라 생각한다. 본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서 한국에서 미리 검진을 받아 오면 좋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오자마자 병원을 알아보고 예약을 미리 해놓는 편이 좋다. 이것도 학교마다 다르지만, 학교에서 의료보험을 들게 하는데 보통 학생들이 드는 의료보험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고 한다 - 나의 경우는 큰 문제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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