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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학교에서 교환학생 프로그램도 많기도 하고, 어학연수나 이런 기회가 많지만 (물론 모든 청년들이 그런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대학교를 시작한 95년도만 하더라도 해외연수나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많은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고, 사실 있긴 했지만 그런 것을 잘 찾는 친구들의 몫이었지, 수업도 건성건성 듣고 끝나면 동아리 방에서 죽치다가, 마음에 맞으면 나가서 소주를 마시던 날라리 대학생의 눈에 그것들이 들어올 일이 없다. 그래서 지금 대학을 다니는 분들과 느끼는 감정은 아주 많이 다를 것 같다.

 

학기가 다가오면 오리엔테이션을 통해서 (지난 편에서 가능하면 참석하길 추천 드린바 있다) 학교가 있는 곳의 주변 상황이나 고려해야 할 것들을 잘 정리해서 알려준다. 그 시점이 되면 첫 학기 수업을 듣게 되는데, 각 학기 수업을 박사과정 코디네이터와 상의를 해서 결정을 한다. 특히 처음 1년에 대한 커리큘럼은 거의 정해져 있기에 특별하게 선택할 것들은 없다. 경영학 1년 차는 방법론과 아주 기본적인 경영이론 수업을 듣는다. 그래서 첫 학기의 과목은 다음과 같이 다섯 과목을 듣게 되었다.

 

내가 1년차를 시작했을 때 전체 9 명의 박사과정이 프로그램에 들어와 함께 시작했는데, 한국은 나 혼자, 중국 2명, 터키 1명, 미국 2명, 인도 1명, 루마니아 1명, 영국 1명이었다. RPI의 경영대는 프로그램이 크지가 않고 크게 경영(Management)과 재무(Finance)로 크게 구성이 되어 있다. 스쿨 자체 프로그램이 크지 않기 때문에 전체 박사과정 수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Oral Communication for TA 1 (이건 스피킹 시험에서 떨어져서 들어야 하는 영어수업 ㅜ.ㅜ)

Advanced Quantitative Analysis

Doctoral Research Method #1

Foundations of Management Thought

Seminar in Economic Theory

 

이 중에서 내가 제일 처음 듣게된 수업은 Advanced Quantitative Analysis 였다. by Dr. Kenneth Simons. 캠퍼스를 미리 돌아가면서 강의실을 알아뒀는데, 이 수업의 경우는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같이 듣다가 대학원생 같은 경우는 몇 챕터를 더 공부해야 하는 (시험 범위가 다르다) 형태의 수업이었는데, Dr. Simons (나의 지도교수가 된) 수업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책을 들고 태어나 처음으로 미국인이 가르치는 영어로 된 수업을 듣게 된 것이다.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 스스로도 걱정이 많아 사실 전날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 

 

첫 수업은 강의계획서를 설명하고,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다. 교수가 먼저 자기를 소개하고 학생 한명 한 명 인사를 한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젊은 대학생들이었고 몇 명 대학원생의 얼굴만 알았기에 나는 겨우 이름만 소개하는 정도로 마무리해야 했다. (아.. 나도 영어를 잘하고 싶다). 강의계획서 설명이 다 끝나자, 교수님은 OHP를 켜더니 (얼마 만에 보는 OHP 이던가.. 내가 대학교 1~2학년 때 썼었는데,..) 거기다 깨알같이 수식을 쓰면서 설명을 시작한다. '아이고 이런 이제 시작이구나...'

 

고등학교 때 인문계이기는 했지만, 수학을 꽤 좋아해서 미적분 푸는 걸 좋아했는데 자세히 보니 그 정도 수준인 것 같았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면 열심히 연습문제를 다 풀고 숙제를 열심히 했다. 이런 식의 공부는 학부를 졸업하면서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는데, 2003년 졸업 이후 6년 만에 다시 교과서를 보고 풀었다. 나이 들어서 영어가 딸리지만 많은 시간을 들여서 복습을 했다. 같이 수업을 듣는 미국 친구가 숙제를 물어보기도 했고, 그걸 안 되는 영어로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막히는 문제는 교수님께 물어봤더니 가을로 넘어가는 캠퍼스 벤치에 "여기 앉자"라고 하시더니 종이와 연필을 꺼내서 일일이 풀어주시는 게 아닌가! (이게 사실 첫 번째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래서 더욱더 열심히 했더니 학기가 끝날 무렵 수업에서 1등을 하게 되었다. 'Yay!... 나도 가능하구나' (<- 요것이 의미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수업에서 잘 할 수는 없다. 다른 박사과정 수업에 Foundations of Management Thought라는 게 있는데 이 수업은 일주일에 경영 관련 고전 들을 한 권씩 읽고 그것을 요약하여 리포트를 제출하고 수업에는 토론을 하는 방식인데, 전체 9명만 듣는 수업이라 교수랑 너무도 가까운 곳에서 토론을 진행하는데 첫 시간부터 멘붕이었다. 그 이유는 일단 경영의 고전을 접한 적이 없었고 (학부 때 공부를 안 한 티가 여지없이 났다), 두 번째 책을 구해서 읽었는데 일주일에 한 권을 볼리 만무했고, 첫 챕터만이라도 읽으면 다행이었는데 일단 전혀 이해를 못한 데다가 겨우겨우 인터넷을 뒤져서 대략의 내용을 읽고 그것을 바탕으로 요약 리포트를 쓰는데 영작이 형편없었으니 10번을 고쳐 써도 내가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학기 중간 즈음 교수에게 별도의 메일을 썼다. '교수님, 미안하지만 제가 밤을 새워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리포트를 쓰고 자료를 찾고 했지만 너무나 벅차다. 나의 모자란 영어 때문인데, 앞으로 최대한 노력은 하겠지만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라고 애걸복걸하는 메일을 썼다. 그랬더니 다음 시간에 '학생 중에 누가 영어의 어려움으로 책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물론 누군지 다들 알았다. 내가 제일 영어를 못함). 다른 학생들이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라고 웃으며 말씀해 주셨다. 그렇게 해주신 말씀에도 불구하고 이 수업은 나에게 정말 힘든 수업이었다. 지금처럼 Ridibooks라도 있고 전자책이 활성화되었으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갑자기 리디북스 1승)... 노력이 가상했던지 교수님은 A-를 끝에 주셨다. (사실 제가 무엇을 읽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ㅜ.ㅜ).

 

첫 학기는 정말 울고 웃음의 반복이었다. 한 수업은 일등을 하고 다른 한 수업은 꼴등을 하고,.. 나도 내가 종잡을 수 없다. '과연 내가 올바른 길을 선택한 건가?' 온지 며칠 되었다고 벌써 고민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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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학교에서 과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화하기는 힘들지만, 수업에 대한 질문이 있으면 대부분 교수님들이 굉장히 친절하고 답변하게 답변도 해주시고 관련 자료를 찾는 방법까지 설명해 주신다. 내 느낌에는 어른을 대하는 게 아니라 마치 어린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듯 하나하나 굉장히 디테일하게 설명을 해주신다. 따라서 어려움이 있다면 교수님을 찾아가서 어려움을 이야기하라, 머릿속에 지식을 넣어주실 수 없으나 공부하려고 하는 의지를 꺽지 않고 응원해 주신다. 지금 반대로 교수에 입장이 되어 보니, 수업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하려고 하는 학생들이 찾아오면 정말 반갑다. 그래서 없는 것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예뻐 보인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않고 교수님 방 문을 두드려라. (물론 Office Hours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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