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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에서 진보는 다양한 체제를 새롭게 바꾸려는 성향이나 태도를 의미하고, 보수는 그것을 지키려고 하는 성향이나 태도로 아주 간단히 정의해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이 보수적 성향을 가진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 것이 이미 경험하고 가진 것이 많기 때문에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기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전공하는 경영학적으로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미 오랜 기간 성장을 해온 기업과 스타트업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이미 성장한 기업의 경우는 기존에 가진 것들 (이건 단순히 제품이나 기업의 크기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 프로세스든 Tangible / Intangible 자원을 포함한다) 때문에 소위 '관성(Organizational Inertia)'라는 것이 생기는데 그러한 관성이나 지식이나 자원의 stickiness (이동하지 않으려는 경향)으로 인해 스타트업에 비해서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이 어려운 면이 있다. 

 

오늘은 재미없는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2009년 8월 유학생활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었다. 사실 첫걸음부터 만만치가 않았는데, 오늘은 그 처음 좌충우돌 초기 적응기를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나이 들어서 영어를 배우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당연히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은 만만치 않았다. (여기서 하나의 메시지는 이왕 마음을 먹었으면 하루라도 일찍 오시는 게 낳지 않을까 싶다.). 지금 나의 아이들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영어를 배우는 과정을 가만히 보니, 어른과 아이들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호기심 이런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은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이다 (소위 '쪽팔림'이 없다). 그래서 실수를 해도 본인도 크게 개의치 않고 주변에서도 그렇다고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더해서 시너지 효과를 나타냄을 알 수 있었다. 어른의 가장 큰 문제점은 '너무 부끄러워'한다는 점인데, 소위 '쪽 팔리'는게 제일 싫은 것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이불 킥!' 같은 신조어도 나오지 않았겠는가. 나 역시 그랬다... 영어를 잘 못한다는 것도, 미국 문화를 모른다는 것도 모든 게 부끄러웠다. 그래서 늦게 배우나 보다. 

 

이 정도로 서론을 정리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첫날 저녁으로 돌아가 보자.

 

윤성호 박사의 오랜 기다림과 도움 덕분에 그날 밤늦게 지친 몸을 이끌고 윤성호 박사의 집으로 들어갔다. 윤성호 박사는 본가가 플러싱(NY주의 한인타운 지역)이고 홀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뭔가 갖춰져 있다기보다는 집에서 정말 잠만 자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나름 신경 써서 에어매트리스도 깔아주었다. 짐을 제대로 풀지도 못하고 (어차피 바로 집을 구해서 나갈 예정이었기에) 바로 골아 떯어졌다. 당시 윤성호 박사는 Albany 다운타운이었는데 여기서 Troy까지는 차로 대략 20여분 정도 떨어져 있었다.

 

다음날 일어나서 겨우 몸을 정리를 하고 내가 꿈에도 그리던 박사과정을 하는 교정을 같이 가기로 했다. 윤성호 박사도 당연히 연구실로 출근하는 길이니 차를 얻어 타고 가기로 했다. 지금 돌이켜 봐도 참으로 착했던 윤 박사는 연신 어떻게 돌아다니시려고 그러나, 나중에 갈 때 본인 실험이 언제 끝날지 몰라 어떻게 라이드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등의 말을 하였는데 더 이상 피해를 주기 싫어 내가 알아서 해보겠다고 했다.(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가자마자 학생증을 만들고 (일단 학교시설을 들어가려면 필요하기 때문에) 윤 박사와는 저녁에 만나기로 한다. 학생증을 찍을 때 어찌나 좋았던지 미소가 만연했다. (생각해 보라 10여 년의 꿈이 이루어지니 얼마나 좋았겠는지). HSBC에서 은행 계좌도 만든다. 은행 계좌 만드는 것도 얼마나 까다로운지 하루 만에 한국과 미국의 차이점이 확 느껴진다. 그리고 바로 학생 Email 등의 신청을 위해 VCC에서 아이디 신청을 한다.

 

*RPI는 1824년에 설립이 되어 곧 200년이 되는 미국에서 제일 오래된 공과대학이다 (물론 경영, 미술 등의 다른 과들도 있다). 뉴욕 허드슨 강과 5 대호를 잇는 이리(Erie) 운하를 지으면서 필요한 많은 엔지니어 들을 제대로 교육하기 위해 설립했다고 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2차 대전 직전 RPI는 원자력공학이 아주 강했는데 미국 국방부에서 원자폭탄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주었으나 당시 총장이 이를 거부하고 이 프로젝트가 MIT로 가게 되면서 MIT는 급성장을 하게 되고 RPI는 잘 모르는 그런 학교가 되어 버린 재미있는 역사가 있는 학교다. RPI는 허드슨강이 내려다 보이는 Troy 도시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데 캠퍼스가 크진 않지만 아담하고 역사만큼 건물이 아름답다. 

 

학교를 일단 한 바퀴 둘러보기로 한다. 위에서 소개한 바대로 학교는 오래된 건물과 새로운 건물이 잘 조화를 이루고 아직까지는 방학이라 캠퍼를 정리하는 잔디깍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그 캠퍼스를 둘러보는데 어찌나 감동이 밀려 오던지, 전체적으로 한 바퀴를 둘러보고 앞으로 내가 오랜시간 보내게 될 경영대 건물도 가본다. 방학이라 스텝분들만 몇 명 있어서, 박사과정 담당 스텝할머니께 인사를 했다. 이런저런 말씀을 하셨는데 아마 금방 '아 이녀석 영어 잘 하는구나! (반어법이다)'라고 느끼셨을 것 같다. 그래서 쭉 둘러보고 도망치듯 나왔는데.. 경영대 프로그램이 크지 않아서 건물이 조그마하고 한국처럼 대학원 생을 위한 별도의 책상이 있다던지 공간이 있는게 아니라 박사과정 라운지에 책상 5개 정도가 끝인 건물이라 조금 실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이것이 오히려 장점이 되었는데 나중에 이야기를 하겠다).

 

학생증 어찌나 좋았던지.. (감동의 도가니였음)
캠퍼스 중간에 자리잡은 고풍스러운 VCC 건물 (교회같이 보이나 컴퓨터 센터임)
투박해 보이나 전망이 끝내주는 중앙도서관 나의 최애장소
도서관 옆에 달걀을 품에 앉은 유리로된 건물은 실험공연장임 저기에 앉아서 트로이 시내를 바라보면 마음이 탁! 트임
이 건물역시 독특한 실내체육관과 Gym
언덕위에서 바라보는 경영대 건물, 작고 소박하니 참 정감이 가는.. 입구 바로 옆에 목련꽃이 예뻤던

캠퍼스를 한바퀴 돌자 허기가 진다. 마지막으로 둘러본 체육관 옆 학생회관에서 미국에서 처음 먹는 식사를 하기로 한다. 내가 먹고 싶은걸 담으면 그걸 무게로 재서 계산을 하는 형식인데 배가 고파서 이것저것 담아 본다. 그런데! 이놈 짜기만 하고 엄청 비싸다. 물 하나랑 집었을 뿐인데 $16불이 넘게 나왔다. (그 다음부터 저기서 밥을 먹은 적이 거의 없다... 4년 동안 다섯번이 될까)

 

실망감이 가득하고 비쌌던 RPI 학생식당에서 첫 끼 (아마 졸업할때까지 가본 적이 다섯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미국 도착 첫날 아파트를 계약하다

 

이렇게 돌아봤는데도 아직 12시를 막 넘기는 시간이라 다음 숙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바로 집 구하기 주변 사람들이 Troy는 겨울에 추위가 무시무시하다고 가능하면 Heat included 된 아파트를 추천하였다. 그래서 찾아간 것이 학교 캠퍼스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떨어진 Troy Gardens. 일단 와이프도 겨울에 올 예정이라 2 bed로 된 집을 찾았는데 Troy Gardens은 방이 언제 날지 모른다는 매니저의 말을 들었다. 그래서 또 아파트가 근처에 있냐고 물어보니 바로 위에 'Park Ridge'라는 아파트가 또 있다고 거기 가보라고 한다. 일단은 윤박사의 집이 Albany에 위치에 있어 통학도 불편하고 매번 라이드를 요청하기도 미안한 마음에 가능하면 오늘 아파트를 구하기로 마음을 먹은 터라 거기도 가보기로 한다. 

 

두리번거리며 오피스를 찾고 더듬거리는 영어로 "I'm looking for a 2-beds apartment"라고 매니저에게 말하니 여자 매니저가 마침 비어 있는 방이 하나 있는데 보겠냐며 물어봐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Okay를 한다. 마침 또 3층 건물에 3층 코너 방이라고 하니 한국에서 층간 소음에 시달렸던 나로서는 아주 좋은 옵션이 아닐 수 없었다. (미국 아파트의 경우 대부분 목조 건물이 많아 층간 소음이 아주아주 심각하다. 처음 집을 구하시는 분들은 참조를 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보자마자 나름 깔끔한 집이라 바로 계약하기로 한다. 한국에서 들어갈 때 환전으로 조금의 여유자금을 들고 갔는데 그걸로 한 달치를 미리 Deposit을 걸고 Social Security Number도 없었던 나는 내 사정을 설명하자 학생들이 많은 캠퍼스 주변이라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던지 그렇게 하자고 하고 열쇠를 받는다. (실질적으로 도착 첫날에 바로 집을 계약하다 - 지금 생각하면 아주 무모했으나 차도 없고 정보도 없었던 나에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첫날바로 계약해 버린 나의 Park Ridge 아파트 보이는 코너 3층이 그 집
오래된 집이긴 하나 3층에 정리가 깔끔히 되어 있었다 2 beds

우연한 만남 1

 

일단 제일 큰 숙제를 마쳤는데, 아까 윤 박사와 내리면서 새벽에야 들어온다는 그 친구의 말을 듣고 키를 받아 놓긴 했는데, 문제는 Troy에서 Albany까지 가는 길이 문제였다. 집 계약을 하고 큰 돈을 지불한다고 (지금 기억에 한 달에 $750불 정도였던 듯) 안 되는 영어로 혹시나 사기 당하지 않을까 온 정신을 집중한데가 밥도 제대로 못먹고 시차적응이 안되는 몸이라 이미 피곤이 몰려왔다. 아파트에서 아까 처음 들렀던 Troy Gardens으로 내려오는 (학교 방향) 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즈음 누군가가 또 나같이 방을 찾는 한 외국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여기 오피스 어디 있는지 아니?"라고 묻길래 아까 방금 전에 와봤던 터라 "알려주겠다"라고 하니 차에 타라고 한다. 그 차를 타고 오피스에 도착하기까지 짧은 시간 동안 너는 어디서 왔고 이번 학기에 새로운 학생이냐 무슨 과정이냐 이런 이야기를 속사포처럼 물어보기에 답변을 해줬는데, 그렇게 갑작스레 통성명을 하고 나니 이 친구한테 부탁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밑져야 본전인데) 당시 오피스는 방을 구하는 학생들로 가득 차 매니저가 다른 학생 방을 보여준다고 30여분 뒤에 온다고 하자 나도 같이 기다려 주겠다고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눠봤다. 지금은 기억이 가물하지만 미국 다른 주에서 넘어왔는데, 공대 쪽에 박사과정을 왔다고 했다. 그렇게 20여분을 더 떠들고 나의 본심을 드러냈다. "저기 미안한데, 내가 친구 집에서 임시로 묶고 있는데 하필 알바니 쪽이야. 내가 어제 미국에 와서 길도 모르고 하는데 혹시 라이드 해줄 수 있겠어?"라며 물어봤더니 그 짧은 순간에 같은 박사과정으로의 동질감을 느꼈던지 "Of course!" 한다. 휴.... 그렇게 그 친구가 방을 구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Albany까지 데려다주며 "Good luck!"이라고 외쳐준다. 그리고 혹시 또 라이드가 필요하면 전화하라고 전화번호까지 알려준다. 그 친구에게 호의를 베풀었더니 그 호의가 곱절이 되어 돌아왔다... 이렇게 미국에서의 첫날이 마무리되었다. 

 

윤 박사는 밤늦게 들어왔는데 걱정이 많이 되었었나 보다. 나 역시 피곤했지만 시차 적응을 못해 잠 못 이루다 오늘 한 일들과 집으로 돌아온 과정을 이야기하니, "형! 대단하신데요?" 하면서 웃겨 죽는다. ㅎ 내가 볼 때 나도 내 막무가내 정신이 웃겼다. 다음날 방 하나인 윤 박사에게 민폐를 줄 수 없고 나도 하루빨리 적응하고 싶은 마음에 계약한 집으로 오늘 가겠다고 한번만 라이드를 해달라고 했다. 정말 괜찮겠냐고 몇 번을 물어보는 윤박사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득 가진채 다음날 나는 앞으로 내가 살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윤 박사 정말 감사해. 내가 항상 이야기 하지만 너는 은인이야 :)

 

아파트의 첫날에 느끼는 '아 집에 가고 싶다'

 

윤 박사는 내가 싸온 짐을 즉흥적으로 계약한 집에 데려다주면서, "집 좋은데요?" 하고 돌아갔다. 이제 정말 혼자이다. 가서 잠은 자야 하지 않겠냐고 라면 이과 이불 몇 가지를 와이프가 싸줬는데 바닥에 잘 수는 없어서 윤 박사에게 에어매트리스를 당분간 빌려달라고 했다. 이제 내 집이 생겼으니 짐을 정리를 한다. 그리고 삼일 동안 제대로 밥을 먹지도 못해서 와이프가 싸준 라면을 끓여 먹기로 한다. 그래서 집 앞 RideAid에서 이것저것 당장 필요한 것들을 구매한다. 

첫 쇼핑으로 내가 구입한 것들... 첫 쇼핑치고 샴푸는 좋은걸 샀네. ㅎ

라면을 끓이려고 생각해보니, 그릇, 냄비, 수저 아무것도 없다. 다시 RideAid로 가서 큰 머그컵을 가지고 와서 전자레인지에 라면을 끓이려고 보니, 전자레인지가 없는게 아닌가. 생각해 보니 어제 매니저가 이야기할 때 여기 전자렌지가 고장 나 당분간 사용할 수 없다고 했던 말이 계약서를 쓰면서 했던 수많은 대화 중에서 살짝 스쳐 지나갔던 게 생각난다. 어쩌지.. 그러면서 혹시나 해서 앞에 집을 가보니 1 bed방이 빈방으로 문도 열린 채 있었다. 그 컵에 물을 넣고 봉지라면을 뜯고 앞에 집에 몰래 들어가 전자레인지로 라면을 돌린다 (혹시나 집에 냄새가 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배고픔은 이성적 생각을 이기게 마련이다). 그렇게 집을 떠난 지 3일 만에 매콤한 라면을 먹는다. 근심 걱정 덩어리 와이프는 그런 남편을 위해서 볶음 고추장을 넣어주는 센스도 잊지 않는다. 얼마나 맛있던지,

 

짐을 대충 풀고 라면을 먹고 나니 아직 점심도 전이다. 이제 곧 학교가 개강할 텐데 미시경제학 교수가 이미 숙제를 나어주셨다. (개강도 훨씬 전인데) 그래서 도서관을 가기로 한다. 이제 내 집도 있고 걸어서 학교를 간다. 그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운 줄 모른다. 생각보다 잘 적응한 내 스스로도 대견스럽다 (앞으로 닥칠 일은 모른 채)

 

앞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언덕 위에 자리 잡은 RPI 중앙도서관 3층에서 바라보는 트로이 시내 전경은 멋지기만 하다. 아직 시차적응이 안된 터라 아직까지 이메일 계정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던지 뭔가 제대로 되는 게 하나 없다. 생각해보니 윤박 사네에서 잘 도착했다고 와이프에게 전하긴 했지만 제대로 통화도 못하고 인터넷 사용도 아직 어렵다. 아.. 어쩌지..

 

중앙도서관에서 바라본 Troy 시내 전망이 정말 좋다. 앞으로 4년동안 저 자리에서 많이도 바라봤다.

밤늦게는 아직 돌아다닐 자신이 없어 오후 느즈막히 집으로 돌아온다. 새 집에서 처음으로 맞게 될 밤... 뭔가 잘 된다고 했더니, 가만히 보니 이 아파트는 화장실과 부엌의 등을 제외하고 각 방에는 전등이 없다. ㅡ.ㅡ;; 뭐 이런 일이. 화장실과 부엌 불을 켜고 나머지 책을 보고 또 뭘 해야 할까 생각하며 둘째 날을 정리한다. - 책상 등은 하나 사야겠다는 한 채로,

 

아직 시차 적응 전이다. 새벽이 되었는데 눈이 확 떠진다. 그런 김이 아파트는 어떤지 한 바퀴 돌기로 한다. 아파트 규모가 꽤 컸는데 바로 뒤에 골프장을 겸하고 있는 Frear Park가 있다는 걸 지도로 봤는데 한번 가볼까 욕심을 내어 본다. 아직 여명이 밝지도 않고 겨우 사물만 바라볼 수 있는 정도지만 공기가 상쾌해서 맨손 스트레칭을 하면서 아파트 안쪽을 통해 반대쪽 공원을 향한다. 그런데! 저기 멀리서 시커면 큰 덩어리가 있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사람인 줄 알고 흠칫 놀랐는데, 조금 더 다가가 보니 사람보다 더 크고 뭔가 날카로운 뿔이 있는 시커먼 것이 마치 나를 바라보는 것 같다. 자세히 보니 큰 사슴이었다. 사슴이 항상 예쁘고 선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스름이 낀 새벽에 큰 뿔을 가진 덩치 사슴을 보니 어떠한 공포 영화 보다도 섬찟하다. '저 뿔에 찔리면 찍소리도 못하겠군'이라는 생각에 멀찍이 돌아가는데 이 놈의 시선이 계속해서 나를 주시하며 고개를 돌린다. ㅡ.ㅡ;; 무서울때 뛰고 싶지만 저 놈이 훨씬 더 빠를 것이고 놀래키면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나도 그놈을 계속 바라보며 멀찍히 돌아간다. 휴...

 

공원에 도착했을 때 해가 떴고 그 공기가 너무나 상쾌하고 짙은 푸르름이 너무나 좋았다. 역설적으로...

 

오늘은 아침 일찍 제대로 장을 보기로 한다. 4일째 라면과 물, 콜라, 시리얼, 우유 정도만 먹었더니 풀/과일이 먹고 싶다. 그래서 오늘은 첫 식료품 장을 보기로 한다. 전등과 함께... 걸어서는 2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월마트가 있는데 거기를 가보자고 마음먹는다. 난생처음 미국 버스를 타고 Walmart로 향한다. Walmart에서 냄비, 책상 전등 등을 구매하였는데 아무리 뒤져봐도 풀/과일이 없다. 잉? 그래서 Walmart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Grocery'라는 단어도 몰라 "Fruit 어디 있어?"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점원이 옆 블록에 Price Chopper에 가보라고 한다. 아! Walmart에 다 파는 게 아니구나...

 

냄비, 프라이팬, 책상 전등 등 이미 양손 무거운데 10여분을 걸어서 PriceChopper에 간다. 가서 과일과 계란을 사서 두 손 무겁게 돌아오는 버스에 오른다. 아, 뭐 하나 하는 게 이렇게 힘들다니..

 

정말! 집에 가고 싶다. ㅜ.ㅜ;;

 

그래도 계란 프라이와 함께 과일을 이것저것 먹으니 살 것 같다. 와이프에게 이메일이 왔을 텐데 이메일을 위해서는 학교를 "걸어서" 가야 하는데 이미 오늘의 진은 다 빠진 듯하다. 어쩌지 하며 노트북 놓을 때가 마땅치가 않아 창문틀에 얹어 놓았는데, 가만히 보니 암호가 걸리지 않은 와이파이로 뜨는 게 하나 있는데 한 칸이 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결하니 연결이 된다!, 띵! 메일이 날아온다. 아! 하면서 탄성이 나온다. 이제 학교까지 안 가도 이메일은 확인하겠다.

 

아직 미국에 온 지 일주일도 채 안 지났는데, 벌써 한 달은 된 것 같이 피곤하다. 앞으로는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루하루가 궁금하다.

 

미국에 온지 셋째날 내 방.. 웃음 밖에 안나온다.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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