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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1: 모든 미국에서 적용된다고 일반화하면 안 된다. 메릴랜드의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내용이니 예전 교과서에서 배웠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바란다.

일러두기 2: 개인적으로 글은 재미있게 쓰려고 노력한다 (실제 재미와 떠나서) 그래서 은어/비속어도 종종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뭔가 학문적인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전적으로 믿으시면 곤란하다.

 


 

"학창 시절 제일 생각나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독자의 나이나 처해진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내 연식을 공개하자면 고등학교 때 대학농구가 엄청 유행해서 '마지막 승부' 드라마를 보고, 슬램덩크를 돌려보다가 선생님에게 뺏기고 맞기도 한 그 세대이다. 미국의 학교에 대해 쓰려고 생각하다 보니 전 학년을 걸쳐 매년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에 하나는 새 교과서를 받을 때이다. 요즘은 어떻게 받는지 모르겠는데, 최근 뉴스를 찾아보니 여전히 새로운 교과서를 아직도 붉은 노끈에 묶어 나눠주는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아 맞다! 그랬었지"

 

그놈의 붉은 노끈에 무거운 책을 (지금은 보니 얇아 보이는데 그때는 엄청 두꺼웠다) 가지고 가다 보면 어린 나이에 손가락이 빨갛게 핏물이 고이고 손가락이 저릴 때까지 들고 갔던 (예전에는 30분 정도는 걸어 다녔으니) 기억이 있다. 막상 책을 고를 때는 귀퉁이가 찌그러지지 않았는지 등을 꼼꼼히 찾다가 선생님의 호통을 듣고 제 일위에서 바로 밑에 있는 책(출판사의 묶음 줄 자국이 없는)을 잽싸게 들고 오곤 했는데, 그 새 교과서를 손가락이 저릴 정도로 들다가 머리에 너무 무거워 머리에 이고 가다가 막상 옆길로 빠져서 새 책은 내팽개치고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에 가서 가장 먼저 한쪽면 귀퉁이에 검은색 사인펜으로 이름을 정자로 써놓은 경험.. 아마 이 글을 보고 공감을 하셨다면, 이제 건강을 챙기셔야 할 때입니다.

 

그렇게 새롭게 잘 접어지지도 않는 교과서가 시간이 흐를수록 교과서를 던지고 싸우기도 하고, 넓은 면 한쪽에 구멍을 파서 볼펜을 꽂아 돌리기도 해보고, 동전을 쌓아놓고 '퍽치기'를 하다가 선생님한테 걸려서 교과서 들고 복도에서 무릎 꿇고 손들고 있으면, 지나가는 선생님들이 출석부나 심지어 교과서 모서리로!!! 머리통을 쥐어 박기도 한 게 교과서이다. 그게 지겨울 즈음이면 교과서 제목에 덧대어 재미있는 창의력 테스트를 해보기도 한다. 거기에 각 담당 과목 선생님께 느끼는 한을 담아서 제목 튜닝 놀이를 하곤 했다.

 

(출처: 나무위키 - 교과서 튜닝)

길게 추억을 곱씹어 보았는데, 교과서는 예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표준전과, 동아전과와 더불어 꼭 있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이민을 오면서, 딸이 한국에서 초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미국의 초등학교 1학년의 1학기(미국은 가을부터 시작하니)로 입학을 하게 되었다. 입학을 위해서는 다양한 서류가 필요한데,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다만, 한국처럼 주민등록을 관리하는 건 아닌지라 자동으로 입학통지서가 오고 그러진 않고, 가서 거주지 증명을 하면 필요한 접송기록과 기본 정보를 작성하는 폼을 작성하면 크게 무리 없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

 

미국 초등학교는 생각보다 길다. (이게 교육의 목적과 보육의 목적을 동시에 갖기 때문인 것 같은데) 딸아이는 영어 한마디도 못하고 (준비는 조금 했지만 뭐.. 오기 얼마 전부터 잠시 영어 들은 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만)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그냥 못 알아듣고 앉아 있다 온 것이다. 이 애절하고 극적인 상황은 이번 화의 포인트는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고, 어쨌든 그리고 조금 있다가 아무래도 교과서를 주지 않길래 학교를 찾아갔다.

 

"혹시~ 교과서는 없나요?"

 

라고 물어보니, 뭔가 당연히 없다는 식의 황당한 반응(물론 굉장히 친절하게 답변해 주었다). 사실 이럴 수밖에 없는 건 일단 대부분 Local이 학교를 가고 외부인력의 유입이 없는 시골이라, 시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도 받아본 적도 거의 없을 것 같은데, 집으로 돌아와 와이프에게 이야기했다.

 

나: "교과서 없다는데?" @.@..

와이프: "그럼 어떻게 공부를 시켜?"

나: "몰라"

 

이 이야기를 나누고 이제 7년이 지났다. 딸아이는 이제 중학교에서 7학년을 다니고 있다. 그리고 둘째는 이제 같은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갔다. 물론 7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교과서는 없다. 물론 중학생 아이는 5학년부터 교과서 같은 책을 바탕으로 공부를 하긴 한다.

 


공립학교 시스템을 전혀 모르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학기가 끝날 때마다 선생님을 집에 초대했다. 감사의 의미도 있고 그간 궁금했던 (바빠서 할 수 없는 소소한 질문들) 질문을 하고자 했던 의미도 있다. 그러면서 '왜 교과서는 없는지?'를 몇 번 물은 적이 있는데, 대부분의 반응은 '아 교과서가 있으면 좋긴 하겠지만 굳이 필요가 있나요?'라는 질문으로 돌아왔다.

 

뭔가 원초적 질문을 당한 기분, 우리는 왜 교과서가 필요할까?

 

특히나 필자가 어릴 때는 인터넷 등이 발전하지 않아서 더욱이 교과서는 기본적 소양을 교육하기에는 아주 효과적인 툴이 되겠으나 지금 사교육 교재가 판을 치고, 인터넛에 교육 자료가 넘쳐나는 시점에서 한번 해볼 만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교과서는 장점이 있다. 교육 편차를 줄여주고, 학교나 학생들이 부담 없이 기본적이며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 것. 그렇지만, 우리가 여러 번 경험을 했든 누구든 일괄적인 것인 Gatekeeper의 영향력이 너무 커지게 된다. 만일 하나의 제품만 쓴다면 그 제품의 품질과 방향성을 결정하는 누군가(Gatekeeper)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쟁이 필요한 것이기도 하고 물론 그런 의미에서인지 다양한 교과서 옵션이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럼 교과서가 없어서 좋은 장점은 무엇일까? 교실에서 선생님이나 학교의 처해진 상황에 따라서 교육 내용을 구성하고 가르칠 수 있는 자유도가 늘어난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아이가 다녔던 학교에서 아주 다양한 교육 서비스를 하는 제품들을 가져와 (아마도 라이센스 하는 듯)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었으며, 이는 비즈니스적인 측면으로 보면 미국의 교육보조재 시장을 엄청나게 늘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시도로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제품을 제공하고 학교/선생님은 그중에서 필요한 프로그램을 사다 쓰는 형태이다.

 

물론 그러다 보면, 각 학교마다/선생님마다 중구난방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럴 방지하기 위해서 주 레벨의 교육위원회에서 각 학년마다 필요한 지식을 정리해 두었고, 다는 아닐 수도 있지만 표준화된 시험을 통해서 학생들의 발달사항이나 개선점을 파악하는 장치는 마련해 두었다.

 

이러한 사안은 아마 절대 몰랐을 텐데 우연한 기회로 학교에서 SIAC(School Improvement Advisory Committee)에 들어가게 되면서 선생님들과 학부모 대표들과 학교의 방향과 현재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였다. 이곳에서 활동하면서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은 초등학교들 / 중학교들 / 고등학교들만이 아니라 카운티 내에서 모든 공교육 학교들이 함께 모여서 서로의 방향성과 현재 상황에 대해서 설명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공교육이 단계마다 끊어지는 게 아니고 연결된다는 점에서 의미 있겠구나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한국도 학교체계를 운영해 본 경험은 없어 한국이 그런지 안 그런지 코멘트 하기는 어렵다).

 

아직 어색하고, 가끔 아이는 그 주에 배울 것들(혹은 숙제를)을 종이에 프린트해서 학교에서 가져온다. 이럴 거면 교과서가 있는 게 나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다른 하나의 장점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목할 수 있다는 것인데, 커리큘럼이 큰 틀에서 정해져 있고 세부는 선생님과 학교에서 정하는 것 같으니 아무래도 관련된 프로그램 개발 업체들이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 대학교도 사실 각 출판사에서 학기마다 찾아오는 형국인데, 공교육 시스템은 더 하지 싶은 생각도 든다. 교과서가 없다 보니 학교마다 '독서'를 강조한다던지 '수학'을 강조한다던지 하는 게 가능해지는 것 같고, 사실 이는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특히나 저학년의 경우에는 이렇게 자유도를 높여주는 것은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특히나 선행학습이 어떻게 보면 익숙한 우리의 문화에서 이거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그럼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시면? Khan Academy와 같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무료로 교육콘텐츠를 제공하는 업체들도 많아서 그것을 바탕으로 각 학년에 맞추어 함께 공부한다.

 

아! 그리고 또 물어보실 것 같아서, 서점에 가보면 학년별로 참고서 (표준전과, 동아전과 같은)는

당연히 있다 (선행학습 방지 실패!).

 

적어도 교과서가 없어서 가방이 무겁진 않겠다.

그래봤자 종이 몇 장이니.. (거기다 과목수도 적어서).

이해가 될 듯 말 듯 미국의 교육 공교육 환경.

 

다음 이야기는..

"이 반 선생님은 왜 반에 불을 안 켜지? 애들 눈 나빠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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