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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을렀다. 학기 마무리가 되면 항상 일이 많아지는데 그렇다고 핑계를 대자니 너무 당연한 것 같아서, 이실직고를 하고 이번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게을렀다. 인정한다. 다음글 예고하는 것도 생각 좀 해봐야겠다. 그때그때 느끼는걸 써야 할 텐데 그래야 나도 재미있고 독자들도 더 따끈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싶다. 결국 이번에도 지난번 예고와는 다른 글을 쓰겠다는 이야기를 이런식으로 표현한다. 핑계쟁이.


어린 시절부터 참 재미있다고 생각한 표현이 "옆집 밥숟가락 개수도 안다"는 표현이었다. 그 내밀한 정보를 알만큼 친하다는 의미일텐데 이렇게 표현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과거 한국에서는 이웃과 친밀한 관계를 강조하기도 하였고, 전통적인 개념의 '두레'와 같이 함께 농사를 지으며 조직적으로 작업하는 것을 미덕 같이 배웠던것 같다. 상부상조(서로서로 도움) 이라는 개념도 많이 쓰이는 것을 보면 참 공통체를 중시했던 사회였던 것 같고, 거기에 급속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Totalitarianism (전체주의)가 작용하는 과정에서 집단/커뮤니티/사회가 강조된 부분이 있으면서 목적성을 떠나서 공통체를 엄청나게 강조했던 사회였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학교 다닐 때나 클 때만 하더라도, 하지만 지금은 우리는? 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제 우연히 유투브를 보다가 슈카월드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가치있게 여기는 것은?" 에피소드 (https://www.youtube.com/watch?v=ftZ3scdRelk&t=260s) 를 보면서, 그리고 오늘 동네에서 하는 아이들 농구교실 수업장면을 지켜보면서, 중요한 차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주제를 써보게 되었다. 

 

'사랑하며 살고 계십니까?' 라는 질문을 한다면, 그 대상이 가족이 되었던, 직업이 되었던, 취미생활이 되었던, 사회가 되었던, 연인이 되었던 간에 다들 무조건 반사처럼 '그렇다'고 답하실 것 같다. 다시 한번,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보자 '사랑하며 살고 계십니까?' 현대 사회에서 과연 그럴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조건 반사처럼 '그렇다'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아마 지난주도, 어제도, 오늘도 가족 들에게 틱틱대며 불평하고, 내 직장이 얼마나 빡세기만하고 재미없고 월급이 작은지 투덜대고, 여유없이 장시간의 근무로 제대로 할 취미생활이 없고, 연인과의 관계도 밀당을 하며 고민을 하는 것이 당연한 마냥 이야기 하는 것이 우리들의 생활인 것 같다. 거기에 더해 이웃이라면 더더욱 이제는 엘리베이터에서 더이상 인사도 안하고 그저 핸드폰을 묵묵히 바라보며 혹시나 서로의 기분이 나쁠까 조심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니던가.

 


'우리는 사랑하는 방법을 잊고 있는게 아닌가?' 

 

슈카월드에서 다룬 리포트에는 비교이긴 하지만, 한국의 현실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우면서도 놀라웠다. (https://www.pewresearch.org/global/2021/11/18/what-makes-life-meaningful-views-from-17-advanced-economies/) 한국 사회가 이제는 돈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고, 이것 하나에 목숨을 거는 경향성이 있다고 하니, 정말 진정한 물질만능주의를 지향하는 사회가 되어 버리고 만듯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사실 이 연구센터의 신뢰성을 잘 몰라서 함부로 이 결과를 믿기는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생각했던 것과 다르지 않아서 더 섭섭하다고 해야하나..

(출처:Pew Research Center, https://www.pewresearch.org)

 

시골에서 자라나면서 미국을 배울때 개인주의가 판치는 나라나고 들었던 것 같다. 그 근거는 전혀 모르겠다. 그렇지만 문화를 6가지 측면에서 평가하는 Hofstede 지표를 살펴보면, Individualism에서 미국은 60, 한국은 18로 미국이 훨씬 더 개인주의 성향이 더 큰 것은 틀리지 않는 것 같다. (https://www.hofstede-insights.com/country-comparison-tool?countries=south+korea%2Cunited+states). 개인주의라고 한다면, 남에 대한 신경 안쓰고 나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인데, 사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건 미국이 높은 개인주의를 가진 만큼의 높은 집단주의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짧게 살면서 이런 경험을 종종 느끼게 되는데, 미국은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함께 집단의 가치를 지키는, 즉 미국의 국방에 그렇게 신경을 쓰고, 군인들의 정신을 높게 사는 것이 개개인의 자유 극대화를 위해 미국 (혹은 지역)이라는 집단의 가치를 함께 높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 집을 사면서 HOA (Homeowners Association)에 속하게 되는데 각 동네마다 이 HOA에서 정하는 규칙이 다양하고 이 집단의 관리를 위해서 HOA(한국으로 치면 반상회)의 활동과 이를 관리하기 위한 비용 (한국의 아파트 관리비)을 내게 되는데 이것들이 천차만별이다. 자신의 자유와 재산이 중요하지만, 커뮤니티에 들어오면 아주 엄격한 규율을 받는다는 것도 작은 스케일에서 경험해볼 수 있는 높은 개인주의와 높은 집단주의가 함께 공존하는 예가 아닐까 싶다. 

 

오늘 아이들의 동네 농구교실에 가니 어떤 나이든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계셨다. 내가 아무리 슬램덩크를 좋아했다고 하더라도 정식 농구교육을 받은 적은 없기에 잘은 모르지만, 언뜻봐도 젊었을 때 좀 하셨던것 같은 슛품이었다. (물론 슛도 100% 정확도..존경!). 이 할아버지를 보면서, 물론 동네에서 선수로 (미국은 워낙 스포츠 리그가 다양하고, 선수 풀이 넓은 것도 있겠지만) 한 경험이 있는 분일텐데, 그렇게 많지 않은 돈을 받고 매주 아이들과 즐겁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가르치며 시간을 보내고 계신점이 눈에 띄었다. 지난 가을에는 동네에 제법 큰 어린이 축구 리그가 있는데 거기도 아빠들이 자원봉사로 코치가 되기도 하고 한다. 이런 자원봉사는 사실 열정도 분명하지만,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하기 힘들다. 그런의미에서 자원봉사의 나라인 미국은 개인/집단의식이 모두 높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미국에서도 좋은 선생님을 찾아서 맹모삼천지교 하는 부모도 많이 있다. 인종을 떠나서.. 그렇지만, 이러한 솔직히 프로가 아닌 사람들에게 돈을 주고 배운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그런 이유가 뭐든 남들보다 뛰어나고 잘해야한다는 경쟁심과 압박감이 기본적으로 깔린 전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언제부터 경쟁이 미덕이 된것일까? 예전에 집단이 중요했던 농경사회에서 동네, 부락, 이웃의 가치가 점차 사라지고 좁은 국토에 부족한 자원, 그러나 상대적으로 많은 인구에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리적인 문제점까지 여러 문제들이 겹치면서, 경제가 근대화됨에 따라서 이제 '우리'보다는 '나'로 변해온게 아닌가 싶고, 그러다 보니 '이해'와 '포용'보다는 '경쟁'과 '목표달성' 이라는 것이 우리 인생에 최우선순위가 된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돈 이라는 목적 하나에 목숨을 거는 안타까운 사회가 되어 버린게 아닌가 싶어 씁쓸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심지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찾고 그에 맞는 일을하면서 만족감을 얻어야할 직업에 대한 인생의 의미도 선진국에 비해 훨씬 더 떨어진 것을 보면, 우리는 그 어디에도 정을 붙이고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친구/가족도).

 

어느 순간부터, 어디를 봐도 비교를 하고 가슴 따듯해 지는 글을 찾기 힘들며, 서로를 더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글들이 SNS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급속도로 늘어난 것 같다. 극단적 이분법이 만연해 지고, 정치적 지형, 젠더 문제, 지역주의, 수도권 집중 문제 등이 더욱더 첨예하게 대립되며, 대화를 통한 합의보다는 서로 공격에 매몰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가끔씩 찾아보는 눈물 찡한 사연들이 있긴하지만, 이제 우리는 '우리'라는 가치를 위해 서로를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하지 않을까? 한국이 더이상 '사랑'할 줄 모르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었다. 하물며, 우리가 아주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가족관계에서도 사랑을 점차 찾기 힘든 사회가 되는 것 같아서 돌이킬 수 없기 전에 우리는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하지 않나는 생각을 해본다. 

 

세계 60여개국을 넘게 여행을 하기도 했고, 현재는 미국에 살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고 가능하면 그것을 통해 직업을 만들게 되고 그것이 크던 작던 그 자체를 즐기면서 가끔 내가 잘 하는 분야를 다른 이웃에게 자원봉사를 통해서 전달하기도 하는 그런 인생, 모두다 부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돈보다는 사람과 가족 그리고 이웃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 현재의 미국을 만들지 않았나 싶다. (물론 모두 그렇다는 건 아니다 - 빈부격차는 또 미국이 세계최고 수준이 아니던가).

 

나도 인생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산 터라 처음 미국에 이민을 왔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죄악시 느껴졌다. 뒤쳐지는 것 같고, 그렇지만 그런 마음의 여유는 더 혁신적이며, 더 생산적이며, 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는데 필수적인 요소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가족은 물론 이웃, 동네, 나아가 내가 속한 집단을 사랑하는 그 이면에 이러한 여유가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그런 여유를 잃어가면서 점차 '우리'에서 '나'로 변해가는 사회가 되고 그 자체도 안타깝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잃는 사회가 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사랑은 당연히 먹는게 아니다. 

우리는 과연 사랑하면서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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